뜻밖의 장소에서 만난 진짜 멘토

by 무우지렁이

접수 바로 다음 날 오전, 강연자로 선정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강연까지 남은 시간은 4주, 딱 한 달이다.


아직은 당장에 급한 전시 준비에 몰두하며 한편으로는 멘토링 일정을 기다렸다. 선정 소식 1주일 후에 조만간 멘토님께서 멘토링 일정도 잡아주실 거라고 말씀 주셨다. 강연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3주.


하루, 이틀. 설렘 반 기대 반으로 연락을 기다렸다. 3주라면 나의 엉망인 언행을 사람들 앞에서 말할 수 있을 만큼 성장시키기에는 꽤나 모자랄 것이 뻔한 기간. 하지만 결국 전시가 시작될 때까지도 멘토님께 연락이 오지 않았다. 전시가 시작되며 멘토링 관련 설렘과 기대는 초조함으로 바뀌었다.



'선정 소식을 엄청 빨리 주셨잖아? 멘토님 섭외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지. 1주일만 기다려보고 연락드려보자.'




그러나 1주일이 지나도록 멘토님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이제 남은 기간은 단 2주. 마음이 급해진 나는 연락을 주셨던 전화번호로 문의 전화를 드렸다. 그리고 그날 저녁, 멘토님에게 전화가 왔다.


"무지렁 씨 핸드폰인가요?"

"네"

"강연 멘토입니다. 보내주신 영상은 잘 봤습니다. 그런데 내용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군요. 발성도 엉망이고 모든 게 엉망이지만…."


이쪽의 입장은 들을 생각도 없이 무시하는 평가들이 와다다다다 쏟아졌다. 순간 기분이 확 나빠졌다. 하지만 나의 오판일 가능성이 높다. 짧은 기간 동안 폭발적인 성장을 하려면 보통은 스파르타다. 지금의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뜯어고쳐야 하니까. 그때, 멘토의 말이 끝났다.


"특별히 멘토링 받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좀 많아요. 목소리, 억양, 발성, 무대 매너 등등등 내용적인 측면 빼고 전부 다요. 그리고 내용 측면에서도 대중 연설에서 하면 안 될 표현들이 있는지 그 부분들을 체크받고 싶어요. 스토리는 자신 있…."

"아니요. 보내주신 영상만으로는 '기승전결'에서 '기' 부분밖에 없어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 내용부분을 특히 집중적으로 봐드리겠습니다."


당연하다. 강연 시간을 1시간으로 안내받았던 터라, 당연히 인트로만 보내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제안서에 전체 줄거리를 같이 첨부해서 보냈었다.


"스토리는 자신 있어요. 스토리는 제외하고 다른 부분들 전부 부탁해요.“

"아니요. 스토리를 특히 집중적으로 봐드리겠습니다.“


강연까지 남은 기간은 단 2주. 그렇게 첫 통화가 끝이 났다. 잠시 후 공무원 분께서 단체채팅방도 생성해 주셨다.




강연까지 남은 기간은 13일, 강연자로 선정된 사람은 나를 포함해 총 3명.


멘토링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멘토에게 받는 스토리텔링 멘토링이고, 하나는 쇼호스트님에게 받는 스토리 외적 요소들인 발음, 표정, 마이크 쥐는 법 등의 멘토링이다. 나는 쇼호스트님의 멘토링이 우선했으나, 멘토님은 본인의 스토리텔링 멘토링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계신다.


그렇게 각자의 주장을 팽팽하게 이어 가다 보니 멘토는 내게 쇼호스트님의 멘토링은 받지 말라고 유도하셨다가 내가 꼭 받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니, 나의 어투와 어법이 너무 별로라고 하셨다. 하지만 어투나 어법은 단숨에 고쳐지는 것이 아니니 스토리에 집중하자며 또 본인의 멘토링만 받으라고 누차 강요했다.


정말이지 스토리 외적인 컨설팅은 죄다 필요한데 거꾸로 스토리 컨설팅만 받으라고 하니 갑갑하다.


그러면서 청중은 동원서 오는 사람들인데, 연세도 많으신 분들이라 반응이 냉랭할 수 있다, 나 때문에 무대가 폭망하면 책임질 거냐는 등 협박을 서슴지 않고 하시고, 돈 받고 하는 프로라고 생각하라며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내 자랑하려고 강연 나왔냐는 등 나에 대한 오해를 거침없이 말씀하셨다.


또한, 멘토님께서 나의 스토리를 다 들어주지도 않으시면서 본인이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강연은 자기 얘기를 주절거리러 나오는 자리가 아니라며 주제를 바꾸라며 갈아엎는 게 아니라 주제를 바꾸라는 말씀도 하셨다.


그러고도 내가 꺾이지 않으니, 강연을 잘 한다면 자기 소속으로 묶어서 강연 기회를 줄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거는 잘 해야 한다며 상품 보는 거라는 말로 회유도 하셨다.


하지만 끝끝내 협의는 되지 않은 채로 전화를 끊었다.




강연까지 남은 시간은 10일, 아직 대본을 완성하지는 못한 상황. 열심히 대본을 수정하고 있는 오후 늦은 시간, 공무원분께서 단체채팅방에 포스터 초안을 보내주셨다.


'어라?'


포스터 초안을 받고 보니 내가 알고 있던 대로 한 사람당 1시간씩이나 강연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바로 공무원 분께 전화를 걸어 여쭤보니 각 연사당 배정 시간은 20분이라고 정정해 주셨다. 1시간짜리 대본을 20분짜리로 변경해야 한다.


이번 일로 멘토님께서 쇼호스트님에게 연결해 주시는 것을 더이상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 이번에도 멘토님의 도움 없이 준비하기로 했다.


잠시 후 멘토가 전화 했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강연에 도움이 되기는 커녕, 되려 나의 멘탈만 흔들게 뻔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강연 준비는 물론이고 강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인데 혼자 준비하려니 막막하다. 기획 발표들과 전시 준비의 후유증으로 아직 컨디션도 좋지 못하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움직이기 싫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머릿속으로만 고민하기보다는 직접 움직여서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비교적 가장 쉬운 일인 '핸드폰으로 정보 습득하는 것'을 먼저 하기로 했다. 유명한 강연가님들의 강연을 직접 보고 분석해야겠다. 생각해 보니 김창옥 교수님 스타일의 강연을 하고 싶어 김창옥 교수님의 강연을 찾아 분석했다.


분석 결과, 강연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내용적인 것과 외적인 것.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스토리텔링도 물론 중요하지만 역시나 말과 동작이 같이 이루어지는 강연이다 보니 소통과 유머가 멘트에 녹아 있어야 했다.


외적으로는 표정과 제스쳐, 그리고 다리. 손동작의 높이가 허리 아래로 절대로 내려가지 않으시는 점, 발끝과 몸통의 방향이 일치하시는 점, 그리고 한 자리에 꼿꼿이 서서 강연하시는 것이 아니라 무대를 누비시는 점 등을 포착했다.


그러고보니 스피치 수업을 받을 때 분당 적정 언속이 있다는 것도 생각났다. 검색으로 스피치 분당 글자 수 등을 찾아봤다. 이론 공부를 다시 하다 보니 스피치 이론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죽은 지식인 줄 알았던 스피치 이론도 사실 잠자고 있던 씨앗이었다. 정말이지 세상에 쓸모없는 지식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스피치 수업에서 김혜자 선생님께서 시상식 때에 적어 오신 수상 멘트를 읽으셨던 점과 마지막 직장에서 큐카드를 사용하는 것을 본 것도 기억났다. 김창옥 교수님처럼 강연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큐카드를 보지 않아야 하지만, 최악의 경우 보고 읽기 위해서라도 큐카드를 작성하기로 했다.


김창옥 교수님의 강연 덕분에 외적인 부분에 대한 힌트를 많이 얻었지만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중에 모임장님께서 관련된 책을 빌려주셨다.


따로 필기도 다 하고 보니 내 자세가 구부정한 것과 패션에 대한 부분이 또 미흡했던 것 같다. 책을 보고 허리와 어깨를 펴는 자세 교정도 연습하고 코디 고민도 열심히 해 가장 나다우면서도 나름 차려입을 옷 코디를 했다.


딱 하나, 가방만 빼고 말이다. 가방은 다X소 캔버스 백이 전부인데, 한 번의 강연을 위해 가죽 가방을 사기는 아깝다.


그리고 상상해 보니 진짜 그냥 맨몸으로 강연하는 것은 자신이 없다. 간단하게라도 PPT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 공무원분에게 강연장에서 PPT를 틀어줄 수 있냐 여쭤보니 가능하다고 하신다. PPT도 만들어야겠다.




강연 9일 전, 전시장의 캘리도 보충할 겸 전시장에 와서 PPT 작업을 하고 있었다.


6시 쯤에 멘토에게 전화가 와서 한 5분 정도 일차적으로 욕을 먹고 전화를 끊은 후, PPT 작업을 재개했다. 7시 30분 쯤에 멘토에게 또 전화가 왔다. 방금 막 PPT도 다 했고 자료도 보냈겠다, 멘탈이 좀 흔들려도 강연에는 지장이 없을 줄 알았다. 나의 크나큰 실수였다.


멘토는 1시간 동안이나 '내가 자존감이 낮아 컨설팅을 받지 않으려는 것'이고, 나에게 멘토링 받는 것을 강요하기 위해 온갖 편견과 곡해와 거짓말로 나의 멘탈을 흔들어 놓았다. 극한까지 몰아붙여 놓고는, 포기하려 하니 이제와서 또 죄책감을 심어버린다.


결국 연기 컨설팅만 받기로 합의가 됐다. 그러고 나자 이번에는 먼저 보낸 PPT는 보지도 않으신 채, PPT에 대한 기본 상식을 말해주시길래 이미 PPT를 보낸 사실을 알려드렸다. 그제야 PPT를 보신 멘토는 'PPT가 전혀 도움이 될 수 있는 형편이 아닌 것 같다'며 부정적인 평가와 함께 오히려 PPT의 수준을 떨어뜨릴 피드백을 내놓았다.


그리고는 내가 멘토에게 지속적으로 요청했던 멘토링에 또다시 은근슬쩍 스토리 멘토링을 하겠다고 문간에 발 들이기를 시도했고 어든 나의 최종 대본을 보고 멘토링해 주신다 하셨기에 나도 승낙하고 드디어 길고 긴 통화를 마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나의 멘탈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너무 감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하루만 자고 생각해 보자.'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애써 진정시키며 집으로 향했다.




강연 8일 전. 자고 나서 생각해 봐도 이건 아닌 것 같다. 그럴 거면 굳이 내 시간 써가며,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뺏어가며 강연할 필요가 없다. 공무원 분에게 강연 관련으로 체크해 볼 필요한 부분들만 카톡으로 질의를 해놓았다.


나중에 공무원 분께서 전화를 주셨고 30분 정도 그간의 속상함을 토로하기도 하고 질의응답을 했고, 다음날 멘토링을 받기로 약속했다.


강연 1주일 전, 숲해설가 매니저 선생님께서 실물 포스터도 사진으로 찍어 보내주셨다. 홍보 채팅으로 포스터도 날아왔다. 평생학습관 수업 과정 중에 봤던 시니어모델 분들의 워킹도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포스터가 나왔으니 열심히 홍보했으나 부산에 지인들이 거의 없어 모임장님과 모임장님의 아버님께서 와주시기로 하셨다.


약속 시간이 되어 멘토링을 받기로 한 장소로 갔다. 멘토와는 앞으로 잘 해보자는 이야기를 한 시간 넘게 또 하고 쇼호스트님께는 10분 정도 짧게 멘토링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강연 5일 전에는 전시 중인 곳에서 하는 연말 프로그램에 참석했다. 사실 가고 싶지 않았다. 강연 준비할 시간도 모자라는데 하루를 거의 통으로 빼라니. 하지만 거절할 명분이 없어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그램 장소에 도착하자 먼저 온 순서대로 단체복을 받고 자리를 안내받았다. 한참이나 일찍 간 덕에 첫 번째 테이블에 배정되었다. 짐을 풀고 단체복으로 갈아입고 오자, 센터장님께서 내게 전시의 도슨트를 해줄 수 있는지 물어보셨다. 얼떨떨하지만 전시 의도를 직접 전달할 기회이기도 하고 사람들 앞에 서봄으로써 강연 연습도 할 수 있는 기회라고도 생각해 수락했다.


첫 프로그램으로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과 4인 1조로 함께 주먹밥과 잔치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나와 같은 테이블에 앉으신 분들은 파리의 예술가 같으신 분과 맑고 깊은 호수 같으신 분, 그리고 상대적으로 조금은 어수룩해 보이시는 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두 번째 프로그램은 자유롭게 앉아 본 장소 관련 추억을 글과 그림 등으로 창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당연히 그림을 그리기로 했고 바로 밑그림을 그렸다.


두 번째 프로그램의 중간에 막간을 이용한 도슨트가 진행되었다. 준비되어 있던 도슨트는 아니라 긴장했지만, 전시 중인 작품 하나를 가슴 앞에 들어 작품 뒤에 숨어서 도슨트도 무사히 마쳤다. 즉석 도슨트가 끝나고 긴장이 조금 풀렸을 때 센터장님께서 말을 거셨다.


"작가님. 작가님의 전시를 보고 작가님을 엄청 만나보고 싶어 하시는 분께서도 오늘 와주셨는데요. 혹시 소개해 드려도 될까요?"

"아, 네넵."


그렇게 작고 여린 연보랏빛 들꽃 같은 분에게 전시 기획 의도에 대한 심도 깊은 질문을 받았고, 표현에 주의하며 답변을 하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들꽃 님과의 유익한 질의응답이 끝나고 나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채색을 했다. 하지만 시간도 촉박하고 채색도 자꾸 번져 애를 먹고 있었다.


"도와드릴까예?"

"아, 넵. 부탁 좀 드릴게요."


들꽃 님께서 조심스레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셨고 나는 선뜻 그 손을 잡았다. 그날 내가 잡은 재료는 오일파스텔. 손재주도 사람을 따라가는 모양이다. 두 사람 모두 그날 처음 만져보는 재료였는데, 덜렁거리는 나의 지저분하고 칙칙한 채색과는 달리 들꽃 님의 채색은 그 분처럼 너무나도 정갈하고 고왔다.


그래서 사과와 밝은색이 필요한 기린 등 중요한 포인트들은 들꽃 님께 부탁을 드리고 나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덤불 부분들을 색칠해 제한 시간에 딱 맞춰 채색을 마칠 수 있었다. 협업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세 번째 프로그램으로 이 공간과의 추억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앉은 테이블은 마지막 순번이었다. 꽤 많은 사람이 자기소개와 오늘의 소감을 말했고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집중도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노력은 하지만 그래도 방심하고 있던 때, 드디어 우리 테이블의 순서가 되었고 우리 테이블의 선두 주자로 조금은 어수룩해 보이셨던 분께서 입을 떼셨다.


"이 공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등산 프로그램이었어여. 제가 등산을 참 좋아하그등예. 근데 프로그램에 신청해 놓고 막상 진짜 등산 가야 하는 날이 다가오니까 나가기가 너~무 귀찮은 거에여. 그래서 고민을 좀 하고 있었어예. 그런데 눈을 딱 감았다 떠보니까 산 입구데예?"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부분을 과감히 날리고 '눈을 딱 감았다가 떴더니 산 입구'라니. 녹음을 켜야겠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아직 남아있는 게으른 완벽주의 성향에 '처음부터 녹음하지 못했다'며 들었던 핸드폰을 놓고 남은 말씀에 집중하기로 했다.


"새로운 시작은 늘 설레게 하지~"


그 분은 연이어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OST인 가호 님의 '시작'으로 주의를 환기셨다. 배워야 한다! 메모해야 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녹음을 켜야 하나 고민하며 그 분의 말씀을 듣다 보니 순식간에 말씀이 끝났다.


충격이었다. 역시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배웠다. 그 분의 말씀이 끝나고 정신이 드니 늦게라도 녹음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도움받을 부분들을 기억하는 것뿐이다. 손가락을 3개만 펴고 되뇌었다.


'지루할 부분은 과감하게 스킵하기, 눈 감았다 떴더니 입구다, 노래로 환기시키기...'


정말이지 생각지 못한 곳에서 정말 생각지 못했던 진짜 멘토님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었다.




네 번째이자 이 날의 마지막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이 가져온 선물을 교환하는 시간. 감성 무드등, 이국적인 에코백, 탁상용 스탠드... 수많은 선물이 쏟아져나왔다. 교환될 선물들을 구경하다 눈에 불이 켜졌다.


'강연하러 갈 때에 저 가방을 가져가면 참 좋겠는데!'


작고 검은 가죽 가방. 강연하러 간다는데 인형 머리가 붙은 에코백을 메고 가는 것이 조금은 걸리던 차였다. 저 작고 검은 가죽 가방을 가져간다면 완벽한 스타일링이 될 것 같다.


선물을 가져가는 순서는 제비뽑기로 정해졌다. 내 순서는 거의 마지막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사람들이 선물을 고를 때마다 심장이 쿵쾅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를 반복했다.


'제발 저 가방은 제가 가져가게 해주세요.. 저 가방은 제가 가져가게 해주세요..'


간절한 마음으로 나의 차례를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나의 차례가 되었다. 나는 검은 가방을 손에 번쩍 들고 외쳤다.


"이 가방은 이제 제 겁니다!"


그렇게 강의 패션에서 아쉬웠던 가방까지 해결되었다. 가방의 주인은 호수 님이셨다. 호수님은 내가 강연에 들고 갈 계획이라는 말을 듣고 흔쾌히 강연에 와주시겠다고 하셨다.


정말이지 오고 싶지 않았었는데. 초대해 주신 덕분에 긴장으로 초조했던 마음도 리프레쉬 되었고,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해볼 기회도 얻은 덕에 마음에 여유도 다소 생겼다. 무엇보다 진짜 멘토님을 만날 수 있었고 강연 패션도 완성하고 관객 분도 섭외했다.


가히 강연 각 부분의 화룡점정들을 모아올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는 하루였다.




프로그램 다음날인 강연 4일 전, 드디어 지지부진하던 강연 분량의 압축 및 보완이 대폭 이루어질 수 있었다.


멘토님의 첫 번째 스킬, '지루할 부분은 과감하게 스킵하기' 신공으로 여러 직장에서 잘린 일들을 언급할 때, 구체적으로 어떤 직장들을 다녔는지 열거했던 부분들을 과감하게 축약했다.


멘토님의 두 번째 스킬, '눈 감았다 떴더니 입구였다' 신공으로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초코렛을 사 먹는 것을 고민하는 장면도 '눈 감았다 떴더니 입구였다.' 스킬로 갈음해냈다.


멘토님의 마지막 스킬인 '노래로 환기하기' 신공을 응용, 강연 말미에 노래로 집중력을 환기하며 강연 주제를 탈바꿈하고자 체리필터 님의 '오리날다'를 부르기로 했다.


그렇게 강연 준비가 거의 끝났다.




강연 하루 전날, 강연 단톡방에 멘토가 메세지를 하나 남겼다.


'강연 당일에 모두 5시까지 강연장으로 오세요.

리허설 한 번씩 하고 본무대 들어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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