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워홀러의 호주 살이
표정이 많다는 말을 참 많이 듣고 살았다. 솔직하고 직설적인 성격에서 오는 칭찬 아닌 칭찬이었으리라. 여행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하고 싶은 걸 하고 보고 싶은 걸 보는, 때론 지나치게 솔직하고 주관적인. 거의 모든 여행이 그랬다. 카메라라는 오랜 친구를 종종 잊을 정도였으니.
돌이켜보면 여행에서 집착적으로 그 도시의 표정을 찾았다. 표정이 많아 매일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 같다던 지인의 말처럼 나도 그 ‘오늘따라 색다름’을 오감으로 느끼고 싶었다. 매일 보는 똑같은 길에서 오늘따라 다른 향기가 나더라로 시작되는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처럼 말이다.
특히 호주가 그랬다. 처음으로 한국 땅을 떠나 외국의 향기를 맡은 곳에서 꼬박 1년을 살았다. 처음 한 달은 여행자였으며, 이후에는 취업난에 허덕이는 취준생의 삶을 살다 또 다른 여행의 끝에서 경력직으로 취직에 성공한 평범하디 평범한 외국인 노동자 워홀러로. 그리고 호주 땅을 밟은지 3개월 만에 “여긴 사람 살 곳이 아니야. 한국에 돌아갈래”라며 같이 갔던 친구들을 괴롭혔던 시간이 무색할 만큼 돌이켜보면 지독히도 호주를 사랑했다.
호주는 매일 다른 표정을 보여줬다. 매일 같은 길을 걷는 게 지겨워졌을 때 “혹시 여기가 호주인 것은 알고 있니?”라며 오페라하우스의 낡은 지붕에 화려한 조명을 밝혀주기도 하고, 처음 보는 누군가가 공원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 동양인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주기도 하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호주가 그리운 이유는 사람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매일 똑같은 판매용 영어만 해 누군가 툭 치기라도 하면 ‘How are you’가 입버릇처럼 나왔던 내게 오래 단골이 편지를 내밀어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 만큼.
호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이유는 단순하다. 즐겁다. 소설을 쓰면서 심리학을 배우고 싶었고 시나리오를 쓰고 싶다고 마음먹었을 때 영화 평론의 재미를 알았다. 그런데 막상 글로 밥을 먹고살자니 커서가 깜빡이는 빈 페이지를 보는 게 두려워졌다. 깜빡이는 커서가 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글을 재촉하는 것 같아서.
적어도 여행에 관해 이야기할 때만큼은 그 깜빡임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언젠가 “왜 이렇게 여행을 좋아해?”라는 질문에 “쓰고는 싶은데 쓸 게 없어”라고 할 만큼. 굳이 여행의 이유를 꼽아보자면 당시의 즐거움도, 편안한 휴식도 아닌 누군가에게 떠들고 싶어서다. 당시에 어떤 공기가 흘렀고, 어떤 향기가 났으며, 이런 일들이 눈앞에 펼쳐졌다고.
그렇게 신나게 떠들어대면 기억은 미화된다. “진짜 더럽고 치사해서 못 살겠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던 외국인 노동자로의 1년이 “한국은 사람 살 곳이 아니야. 호주로 떠나버릴까”로 변하기도 하고, 차비를 아끼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왕복 3시간을 걸었던 그 고통의 시간이 “다이어트도 되고 좋았지”로 변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브런치 덕에 하고 싶은 말을 쓸 공간이 생겼다. 호주가 보여줬던 수많은 표정을 전할 수 있는 공간. 문법이 틀렸다거나 객관적이지 않으니 틀린 글이라고 뭐라 하는 이가 없는, 나만의 아지트가 생겼다. 동시에 미화된 지금의 기억을 박제해 기억이 흐릿해질 미래에 추억할 ‘현재형 과거’를 만들 수 있는 창고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 호주의 수많은 기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