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라는 이름으로

현지인에게만 보이는 오페라하우스의 마법

by 김진빈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페라하우스의 지붕은 하얗지 않다.


시드니에 살면 오페라하우스에서 유명한 오페라를 보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와인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주말을 보낼 줄 알았다. 2013년 8월 25일 여행자 신분으로 처음 시드니를 만난 날 오페라하우스는 유난히 밝았다. 밤늦게 도착하기도 했고 주말 저녁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첫 해외여행이라는 셀렘으로 온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리고 정확히 3개월 후 오페라하우스 지붕이 아이보리색으로 변했다. 정확히 말하면 누런색. 당시는 센트럴 역 근처 집부터 노스 시드니 역까지 하버브릿지를 건너 출퇴근하던 시기였다. 매일 5시간씩 일하고 왕복 3시간을 걸었다. 영어를 못해 파트타임으로 일해야 했고 워낙 미천 없이 호주에 왔기 때문에 돈을 아껴야 했으므로. 점심을 든든히 챙겨 먹고 가게를 나와도 집에 도착하면 항상 배꼽시계가 울렸다.





언제 저렇게 때가 탄 거지?


처음 하버브릿지를 건너 출근하던 날 정말 낭만적이라 생각했다. 외국에서 일을 하는 것도 감격스러운데 호주의 상징 오페라하우스를 보며 출퇴근이라니. 당장이라도 SNS에 이 근황을 업로드하고 싶은 지경이었다. 그러나 너무도 쉽게 그 풍경이 익숙해졌다. 매일 걷는 ‘출근길’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느 날 문득 하버브릿지에서 오페라하우스를 내려다보는데 지붕이 유난히 누렇게 보였다. “언제 저렇게 때가 탄 거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진 속 동경의 대상이었던 시드니는 발바닥에 땀나게 걸어 다니느라 낡아버린 운동화만큼이나 지난 세월의 흔적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제야 눈에 들어온 것이 있다. 누군가 먹다 남긴 빵부스러기를 탐내는 갈매기, 북적이는 관광객들 사이에서 운동복 차림으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호주 사람들. 호주에 온 지 3개월 만에 호주의 삶이 보였다. 한국에서 보던 삶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익숙함이었다.





‘처음’이라는 상황은 마법을 부린다.


처음이라는 상황은 셀렘이라는 탈을 쓰고 눈과 마음에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필터를 장착하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여행에 열광하는 지도 모른다. 평범한 하루하루에는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필터를 사용하기 힘들 테니까. 만약 여행객으로만 시드니를 보고 한국으로 돌아갔다면 나는 지금도 오페라하우스 지붕이 미백치료를 받은 치아처럼 형광빛이 감도는 하얀색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호주에 살았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움 필터를 빼고 사람 냄새나는 온전한 호주의 모습을 담을 수 있어서.



영화 <김종욱 찾기>에서 임수정은 “직접 가보지 않고는 그날의 공기, 거리의 냄새나 사람 사이의 느낌을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꼭 빼놓지 않고 말하는 대사다. 호주에 가보지 않고는 그곳의 공기, 거리의 냄새나 사람 사이의 느낌을 알 수 없다. 시드니 3대 미항이라는 오페라하우스의 명성 뒤에는 그들의 진짜 삶이 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인천의 소래포구, 강릉의 주문진항, 부산항 정도일 테니까. 꽉 조인 넥타이를 매고 숨 막히는 평일을 버틴 회사원이 주말이면 책 한 권과 함께 공원의 잔디를 찾는 곳. 오페라하우스 바에서 모닝커피를 즐기는 곳. 그 사람 냄새나는 곳이 호주다. 고백하건데 호주는 사실 우리네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