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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빈 Feb 12. 2020

야밤의 바르셀로나 산책
; 고딕지구 part 1

TMI아내의 스페인 & 포르투갈 신혼여행 일기 #4 #바셀 #츄레리아




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를 보고 유럽의 밤을 상상했다.


홀로 파리의 밤거리를 배회하던 주인공 '길'처럼 길을 잃은 어느 지점에서부터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이 열리는 그런 마법 같은 유럽의 밤을. 신혼여행을 떠나는 나는 주인공 길처럼 홀로 거리를 걸을 일은 없겠지만 어쩐지 그가 목격했던 밤들과 그날의 분위기라면 유럽과 사랑에 빠지기 충분할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고딕지구(Gothic Quarter)는 주인공 길이 매일 떠났던 밤들과 닮았다. 처음 그곳에 당도했을 때 그는 도통 거기가 어디인지 몰라 어쩔 줄 몰라하는 여행객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딱 스페인에서의 첫날밤, 고딕지구를 헤매던 우리였다. 고딕지구는 좁은 골목이 또 다른 골목으로 이어지고, 막다른 길인가 싶다가도 그 끝에 또 다른 길이 있었다. 좁은 골목 덕에 유달리 높아 보이는 건물에 비해 사람에게 닿으려는 듯 낮은 자세를 취한 가로등. 그리고 상점마다 밝힌 희미한 불빛들. 밤이 깊을수록 이 모든 요소가 제 몸을 다해 이 도시를 밝혔다.


좁다란 골목의 연속인 구시가지.  안에서   길을 잃고 구글 지도에 의지해 겨우 오래된 건물 사이에서   남짓한 츄레리아를 발견했다. 허름한 건물 안에서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가 츄러스를 저울에 달아 팔고 있었다. 스페인에 자주 가는 친구가 줄이 정말 길다고 했는데 오후 5-6시면 해가 지는 11 초순, 해가  모습을 감추자마자 찾았는데도 줄이 그리 길지 않았다. 바르셀로네타 해변 근처로 저녁을 먹으러  생각이라 가볍게(?) 츄러스 100g 뉴텔라 츄러스를 샀다. 주문을 하자마자 주인 할머니는 츄러스를 저울에 올려 무게를 재고 설탕을 묻혀 종이봉투에 넣어주셨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기  상상해왔던 유럽은 어쩌면 2019년의 유럽이 아닌, 오래된 것들을 간직하며 사는 유럽 사람들의 시간과 삶이 아니었나. 돈을 계산하는  찰나의 순간에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미드 나잇 인 파리 주인공 길은 그 후로 몇 번 과거로의 여행을 거듭하며 비로소 그 시대를, 그곳을, 그리고 그곳에 놓인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우리는 바르셀로나에 머무는 2박 3일 동안 매일 같이 고딕지구에 갔다. 두 번의 밤과 한 번의 아침을 고딕지구에서 보내며 첫날 여행객의 모습을 한 우리가 얼마나 작은 곳을 빙빙 돌고 고딕지구를 마스터했다는 뽕에 취해 있었는지 깨달았다. 알고 보니 우리가 첫날 걸은 길은 고딕지구에 있는 오래된 역사적 건축물 근처에도 가지 않은, 람브라스 거리(Ramblas Street)에서 이어진 고딕지구 초입에 불과했다.


우리는 둘째 날과 셋째 날 더 깊숙한 고딕지구를 걸으며 마치 주인공 길처럼 비로소 그 시대를, 그곳을, 그리고 그곳에 놓인 우리를 사랑하게 됐다.


*사진에 등장하는 고딕지구 산책 지도 part 1 츄레리아 정보는 가장 하단에 있습니다.


람브라스 거리에 서서 바다를 등졌을 때 우측에 있는 거리가 바르셀로나의 구시가지, 고딕지구다.
고딕지구는 과거 왕족이나 귀족이 거주했던 지역이라고 한다. 건축물 하나하나가 모두 세월의 흔적이 깃들어 있다. 마치 잘 길들여진 가죽처럼 조금 낡았지만 그대로의 멋이 있다.
고딕지구는 늦은 시각까지 크고 작은 상점들이 붉을 밝히고 있다.
그곳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비단 건축물의 외관뿐 아니라 그 안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오래전 것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L군과 나는 2019년의 유럽이 아닌, 오래된 것들을 간직하며 사는 유럽 사람들의 시간을 유럽이라고 상상해왔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상상 속 장면들을
우리의 첫 유럽 여행지인 바르셀로나가 잘 간직하고 있어 줘서 고맙다고, 이날의 말미에 일기를 적었다.
바르셀로나의 3대 츄러스 맛집이라는 츄레리아. 고딕지구를 돌고 돌아 구글 지도와 씨름한 끝에 만났다. 본고장에서 먹는 츄러스라니!(그 후로도 츄러스 맛집만 찾아다녔다고 한다)
2박 3일을 바르셀로나에 지내고 보니 우리가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첫날밤에 걸었던 길들은
람브라스 거리로부터 시작하는 고딕지구의 완전 초입이었다.
우리는 둘째 날과 셋째 날 더 깊숙한 고딕지구를 걸으며
마치 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 길처럼
비로소 그 시대를, 그곳을, 그리고 그곳에 놓인 우리를 사랑하게 됐다.
*모든 사진은 후지필름 X-Pro 3와 XF 렌즈로 촬영했습니다!




사진 찍는 부부의 우당탕탕

스페인 & 포르투갈 8박 10일 신혼여행



✓ 야밤의 고딕지구 산책 지도, 그리고 츄레리아


: 카탈루냐 광장부터 바르셀로네타 해변 사이를 잇는 람브라스 거리. 그 거리의 한쪽 동네를 이루는 구시가지가 고딕지구다. 고딕지구는 아주 오래된 건축물부터 비교적 근대사에 등장할 법한 건축물까지 바르셀로나의 지나간, 그리고 그 시간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지금의 시간을 담고 있다. 고딕지구를 두 번의 밤, 한 번의 아침에 만났다. 사실 아침의 고딕지구는 살짝 위험해 보일 정도로 인적이 드물다. 가장 산책하기 좋은 시간을 꼽으라고 하면, 해 질 녘부터 천천히 걷기 시작해 밤에 고딕지구의 역사가 담긴 길을 걸어보는 방법을 추천한다.


우리는 늘 그렇듯 바르셀로나에 대한 정보 없이 숙소에 도착했고, 우리가 묵은 오리엔테 아티람 호텔(Oriente Atiram Hotel)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고딕지구를 걷기로 했다. 그리하여 고딕지구 산책 지도 첫 번째는 람브라스 거리에서 시작해 고딕지구의 초입을 걸어보는 코스다. 길을 잃으면 다른 골목으로 다시 걸으면 그만인 곳. 새로운 길에서 새로운 것들을 마주하고, 그런 순간들이 모두 추억으로 남는 곳이다.


골목을 빙빙 돌다 혹은 구글 지도를 검색해서라도 100년이 넘도록 구시가지 풍경을 지키고 선 츄레리아를 꼭 찾아가 보길 바란다. 우리는 여행 첫날이라 초코 라테 세트(3.2 유로)에 대한 개념이 없어 저울에 달아서 파는 일반 츄러스 100g(1.2 유로)과 뉴텔라 츄러스(2 유로)만 시켰다. 지금은 이날 초코 라테 세트를 알지 못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초코 라테를 알았다면 저녁 배를 남겨 놓지 못했을 테니!

*츄레리아는 현금 계산만 가능하며 오후에 브레이크 타임이 있다. 평일에는 8시 15분, 주말에는 8시 30분에 닫으며 수요일은 휴무다,




Written, Photographed by Jimbeeny.

2019년 11월 4일, 오후 5시 ~ 7시의 기록.

CAMERA : FUJIFILM X-Pro 3

LENS : XF 16mm F2.8 R WR, XF 50mm F2 R WR

FILMSIMULATION : CLASSIC CHROME, CLASSIC Neg., AC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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