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박완서 작가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를 읽고 있어. 이 책에 수록된 ‘보통 사람’이라는 산문에서 박완서 작가는 어떤 사위를 얻고 싶으냐 묻는 질문에 우리 가족 정도의 생활 수준인 보통 사람이라면 족하다고 말해. 그러면서도 보통 사람의 조건을 구체적으로 대라면 그때부터 어려워지기 시작한다고 덧붙여. 모두가 저마다 가진 보통의 조건이 있고, 누구나 그걸 기준으로 보통을 헤아리려 할 테니까. 결국 전형적인 보통 사람이란 존재할 수 없는 거지.
결혼 준비의 가장 첫 미션은 각자의 부모님께 결혼에 대한 생각을 고백하는 거였어. L은 내가 결혼을 승낙하자마자 그날로 바로 집에 결혼 이야기를 꺼냈어. 사실 L은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일이고 가족 모두 어느 정도 그려왔던 순간이라 이야기를 꺼내는 게 크게 어렵지 않았다고 해. 대화는 물 흐르듯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L의 부모님께서는 기다렸다는 듯 이듬해 봄이 오기 전에 상견례 날짜를 잡았으면 한다는 말을 바로 하셨다고 하니까. 그 말을 메신저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해 들었는데 내심 걱정이 되더라. 우리 가족은 서로 떨어져 사는 통에 이런 말을 하려면 우선 만날 날을 잡아야 하고, 만남을 위해선 이유가 따라야 했으니까.
더 큰 문제는 보통의 굴레에 갇힌 우리 가족이었어. 그럴 나이지로 입을 뗀 아빠는 자신이 결혼에 필요한 비용을 어느 정도 지원해 줄 수 있는지 말을 이어가며 일사천리로 앞으로의 길을 보여줬어.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돼.”
L의 프러포즈를 승낙하면서 우리는 한 가지 약속을 했어. 각자의 집에서 어떤 지원도 받지 말자고. 자라면서 지금까지 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냐고. 우리의 선언처럼 결혼식 외에 예단 예물 같은 어떠한 것도 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어. 아빠의 반응은 의외였어. 보통의 집들은 그렇지 않다고 타일렀어. 나는 강하게 나가야겠다 싶어 요즘의 보통을 말하며 목소리를 높였지. 요즘 누가 결혼할 때 엄마 아빠한테 손을 빌려. 다들 이렇게 해. 시댁에도 그렇게 말하기로 했고. 그래도 새로운 가족을 들이는 입장에서는 사람 마음이 그런 게 아니라는 말이 돌아왔고, 나는 L과 둘이 천천히 하나씩 이뤄나가고 싶다는 말로 받아쳤어.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했나. 아빠는 단호하게 한 번 더 말했어. 시댁에 다시 한번 상의해 보고 말해라.
엄마는 요즘 세상에 서른도 안 된 애가 벌써 결혼을 하냐는 말로 운을 뗐어.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내가 자라는 내내 입버릇처럼 “결혼은 충분히 고민해 보고 최대한 늦게. 네가 행복하다면 안 해도 괜찮아!”를 외쳐왔거든. 그러고는 혼자 주문을 외듯 결혼 준비 순서를 읊더니 과정부터 비용까지 고민되는 것들을 하나씩 늘어놓았어. 엄마가 정작 묻고 싶은 말을 묻어두고 애꿎은 말들만 빙빙 돌리면서 그 긴 시간을 우회하는 이유를 단박에 알겠더라. 시댁에서 보통의 모습과는 다른 우리 가족의 상황을 아는지, 그게 행여 내 결혼 생활에 흠이 되진 않을지 궁금했던 거야. 나 역시도 L에게 늘 그런 것들을 궁금했으니까.
“상견례는 언제가 좋을까.”
역시나 엄마의 보통도 남들과 달랐어. 현실적인 고민으로 선을 긋더라고. 당장 상견례부터 결혼을 준비하는 내내 어떤 일로든 아빠와 마주할 수밖에 없잖아. 엄마 딴에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난 인연을 정리하기 위해 견고하게 지켜온 자세를 흩트려 트려야 하는 순간을 마주하는 게 어려웠겠지.
“언젠가는 넘어야 할 산이야.”
나는 우선은 한 발 물러나 달래는 방법을 택했어. 속으로는 그 나이가 되도록 어린아이 같은 생각만 하는 엄마에 대한 원망을 하면서 말이야. 엄마는 침묵했고 결국 나는 폭발했어. 보통의 엄마들은 이렇지 않아. 머릿속으로는 부모로서 최소한의 도의적 책임은 지고 살라고 말하는 장면을 수백 번도 되뇌었지. 끝내 자리를 박차고 돌아서면서도 끝까지 내 인생을 책임지라는 말만은 꺼내지 못했어. 그게 우리 가족이 살아온 방식이고, 서로가 그어 놓은 선을 넘으면 마른 낙엽처럼 금방이라도 으스러질 듯 바스락 소리를 냈거든. 카페에서 나와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펑펑 울었어. 나는 이미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우리 가족의 모양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엄마는 그 속을 같이 헤쳐나갈 마음이 없다고 느꼈거든. 오빠와 내가 우려했던 대로 부모석에서는 엄마 아빠가 같이 앉을 수 없겠구나 생각하니까 결혼의 무게가 한층 더 무거워지더라.
외모뿐 아니라 자존심 강한 성격까지 똑같은 엄마와 나는 그 뒤로 한 달 정도 서로 연락을 끊고 살았어. “밥은?” 어느 날 엄마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연락을 해왔어. 나는 대꾸도 않고 기회다 싶어 상견례 날짜 먼저 통보했어. 어떻게 됐냐고? 이상한 결혼 준비가 시작됐어. 우리 가족은 내 결혼을 기준으로 시시각각 모양을 바꿨어. 상견례, 결혼식처럼 엄마 아빠가 모두 참석해야 하는 때에는 그렇게 하기로 했어. 엄마 아빠는 서로 최소한의 말만 하며 부모로서 책임을 다했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형태에 불과하지만 내겐 엄마도 아빠도 모두 존재하니까. 같이 판도라의 상자를 들여다보며 이 관계가 다시 화목으로 이어지진 않더라도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거야. 다만 한복을 예약할 때는 엄마만, 예복을 맞출 때는 아빠만 참석하는 우리만의 보통을 만들었지. 여태까지 살아온 우리의 보통이 그렇게 쉽게 바뀔 리가 없잖아.
흔히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게 아니라 가족과 가족이 만나는 거라고 하지. 우리 가족은 저마다 결혼이라는 무게감 앞에 넘어야 할 보통의 속박들을 먼저 상상했어. 그 후로는 연쇄 작용처럼 결혼의 무게감을 늘려가는 고민을 하느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보지 못했지. 스스로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보통의 존재가 될 생각은 하지 못했던 거지. 어쩌면 우리에겐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우리를 보통의 존재로 바라볼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던 거야.
물론 L의 집에서도 우리 가족의 모양이 자신들의 보통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어. L이 진작에 말해뒀거든. 달라지는 건 없었어. 21세기에 엄마 아빠가 같이 살고 있지 않은 이혼 가정은 너무도 흔하고, 감사하게도 그것 또한 누군가의 보통이라고 생각하는 좋은 시부모님을 만났거든. 지금은 시부모님께서도 아빠와 엄마의 안부를 각각 물으셔. 겪어보고 나면 무언가를 바라보는 관점도 바뀌게 되잖아. 결혼 4년 차인 지금도 친정, 시댁 모두 서로의 다름을 하나씩 알아가며 적응해가고 있는 중이야. 어쩌면 평생 다름을 말할 수도 있어. 그래도 우리에겐 서로의 것을 받아들여줄 마음이 존재한다는 신뢰가 생겼어. 그 단단한 믿음 덕에 이제는 어느 누구도 예전처럼 가족의 모양을 묻지 않는 사람들이 됐지.
PS.
내 결혼의 모든 과정을 함께 겪은 오빠가 비혼주의를 청산했어.
오빠도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보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야. 참 다행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