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을 만나기 전까지는 겨울을 끌어다 나머지 계절을 났어. 365일 꽁꽁 얼어 있는 마음을 누군가 두드리기라도 하면 겨울잠을 자는 곰 시늉을 하며 빗장을 걸어 잠갔어. 어떤 사이든 사랑이라는 명목 아래 관계가 진전되면 꼭 나의 속을 전부 내어줘야 할 것처럼 되잖아. 꽤 어릴 적부터 곤란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홀로 걸어야 했던 내게는 차라리 겨울이라는 핑계가 편했는지도 몰라.
스무 살의 가을, L이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문을 부수고 들어왔어. 처음엔 그게 당황스러우면서도 점점 싫지가 않은 거야. 아무것도 모른다는 바보 같은 표정을 하고선 사랑만을 말하는 날들이 많았거든. 언제부턴가 L은 내 손을 잡고 세상을 걸으며 봄과 여름, 가을을 보여주기 시작했어. 겨울 말고 다른 계절은 없다고, 내가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속이는 사이에 세상은 온통 아름다움이 내려앉았더라고. L은 그렇게 내가 쳐놓은 안전 경계선을 가뿐히 침범하더니 아예 빗자루를 들고 선을 지워버리더라고. 이 선은 이렇게 한 번에 쓱 쓸어버릴 만큼 별 거 아니라고 말이야.
“그럼 이제 그만 놔줘.”
L의 한 마디에 10월 중순의 차디찬 밤공기가 차 안까지 스몄어. 붉은 비상 깜빡이의 라이트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담벼락을 비췄지. 동시에 내 대답을 재촉하는 소리가 띵-띵- 울려 퍼졌어. 그때까지도 우리의 끝은 늘 같았어. 잠깐 비상 깜빡이를 켜고 차를 멈췄어도 누구 하나 중간에 내리는 일 없이 다시 시동을 걸고 길을 나섰어. 무려 사계절이 8번을 돌 동안. 그리고 우리에겐 몇 번의 계절이 다시 돌아도 쭉 그럴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 우리가 걷는 모든 계절에 사랑이 있었으니까.
L은 늘 성취 가능한 미래의 목표를 세우고 앞을 향해 걷는 사람이야. 목표를 이루면 누구보다 기뻐하고 이내 다시 다음 목표를 위해 행복을 재정비해. 마치 거대한 행복의 여정을 향해 걸음걸음마다 자신만의 보폭으로 거니는, 확신에 찬 사람처럼. 반면 늘 나는 과거에 기대 오늘을 살아왔어. 과거를 돌아보며 그 안에서 동력을 찾느라 오늘의 걸음은 더뎌지기 일쑤였지. 어쩌면 L에게 결혼은 아주 자연스러운 행복의 수순이었을지도 몰라. 좋은 직장에 취직해 자리도 잘 잡았으니 그의 행복을 위한 다음 여정은 '우리 가족'이었을 테니까.
반면 나는 점점 ‘우리 나중에’라는 말이 부담스러워졌어. 그때의 나는 매일의 성취에 도취돼 일에 빠져 살았어. 막차를 타면서도 일을 바리바리 싸들고 퇴근하기 일쑤였고 월급보다는 경험을,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가치를 택한 탓에 통잔 잔고는 늘 허덕임의 연속이었거든. 미래의 나를 그리기엔 현재가 너무 벅찼어. 돈을 좇지 않는 삶의 대가가 어떠한지, 돈이 사랑의 행로를 어떻게 바꾸는지 이미 엄마와 아빠를 보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거든. 어릴 때 내가 가장 싫어하던 엄마, 아빠의 모습이었는데 돌아보니 그 점을 가장 닮았더라고. 과거의 기대 점쳐본 L과 나의 ‘우리’라는 미래가 밝을지 확신이 없었어.
만난 지 7주년이 되던 해에 L은 회사 동료 이야기를 꺼내며 투정을 부리듯 말했어. 회사 동료가 ‘7년간의 사랑’이라는 이별 노래를 부르며 오래 연애한 사이는 꼭 결말이 좋지 않더라 매일 같이 놀린다고. 나는 엄마 아빠의 연애도 7년이었지, 라는 생각을 하며 입으로는 “우리는 달라”라는 말을 뱉었어. 우리의 불안을 모른척했던 거야. 그렇게 지나온 시간에 잠겨 애꿎은 8주년 기념 꽃다발만 만지작거리는 내게 L은 다시 차분하게, 그러면서도 아주 단호하게 미래를 물어왔어.
“나랑 결혼할 생각은 있고?”
“말했잖아…. 나는 시간이 더 필요해.”
“우리 벌써 8년이야.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게 말이 돼?”
“모아 놓은 돈도 없고….”
나는 또 그렇게 현재의 나를 핑계삼아 방패를 만들었어. 정작 내 문제는 과거에 있는데 말이야. 결혼의 무게가 모두에게 다르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때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결혼식에 엄마를 불러야 하나, 아빠를 불러야 하나를 두고 고민하는 일이 어떤 건지 L은 짐작이나 할까. 나조차도 우리 가족사를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 난 뒤 L의 반응이 두려웠거든. 어쩌면 가장 무서웠던 건 스물여덟 해 동안 미뤄온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일이었겠지. 상자를 열면 우리 가족의 형태가 남들과 어떻게 다른지 명확하게 알게 되겠지만, 열여섯에 멈춰버린 가족의 시간이 다시 재깍재깍 시계 추를 돌릴 테니까.
아빠는 오빠와 내게 엄마의 이름이 빠진 건강보험증을 내미는 일로 이혼에 대한 설명을 대신했어. 아빠의 대화는 늘 그런 식이 었거든. 말로 하기 어려울 땐 무언가를 대신 내밀거나 대답하기 곤란한 물음엔 입을 아예 다물어버렸어. 그때 나는 고작 중학생이었어. 어떻게 된 일인지, 사람들이 어떤 시선과 말들을 쏟아낼지 설명해 주는 이 하나 없이 세상에 던져졌어. 수많은 물음이 따라붙더라고. 엄마와 있었던 일을 물으면 엄마와의 일을, 아빠와 있었던 일은 또 아빠와의 일로 대답하면 그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뒤엔 꼭 반문이 따랐어. 사람들이 내 대답에서 이상함을 알아차리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거든. 그중에서도 명절이 가장 싫었어. 오빠와 나는 친척들에게 양쪽의 소식을 부지런히 전해야 했어. 중간에서 역할을 잘해야 한다는 걱정을 가장한 날카로운 말들을 들으며 나는 봄과 여름, 가을을 차례로 지웠어. 돌이켜보면 나는 누구보다 활발한 아이였는데 그즈음부터 입을 꾹 다문 채 겨울잠을 자는 사춘기를 앓기 시작했어. 그 시절 내게 주어진 침묵이라는 유일한 선택지가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든 거야.
엄마 아빠는 그 후로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어. 나 역시 친척들의 등살에 떠밀려 몇 번 둘을 이으려는 시도 끝에 불가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지. 오빠와 내게는 엄마와 아빠는 있어도 부모는 없구나. 결론이 그랬어. 부모의 빈자리에 서서 이혼의 무게를 오롯이 견뎌야 했던 오빠와 나는 둘 다 자연스레 비혼주의자가 됐어. 물론 자라면서 겪은 여러 사건이 서서히 그런 마음을 만들었겠지만, 비혼의 이유에는 무엇보다 신부 측 부모석에 나란히 앉은 엄마 아빠를 떠올리는 일이 쉽지 않은 게 컸어. 또다시 누군가에게 엄마 아빠는 있어도 부모는 없다는 사실을 설명해야 하잖아. 그것도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입을 닫는 일로 상황을 모면하던 아빠처럼 나도 가족의 모양을 가려두는 일로 상처를 덮었던 거야.
“내가 모아 놓은 돈이 많아. 양가 부모님께는 내가 모은 돈 중에 일부를 네 돈이라고 하면 돼. 이 결혼의 결정권자는 우리고, 우리만 그렇게 약속하면 그게 맞는 게 되는 거야.”
한참을 말이 없던 L이 몇 년째 같은 이유로 결혼을 미루는 내게 또 한 번 다정을 내보였어. 그날 L의 이별 선언은 내게도 적잖은 충격이었어. 숱한 비상 깜빡이에도 그 끝이 하차라는 결론을 내려본 적은 없었거든. 우린 늘 우리만의 결정을 했으니까. 이번에도 같이 길을 찾아갈 수 있을까? 망설임 끝에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라는 말을 꺼냈어. "엄마랑 아빠가 모두 내 결혼식에 올 수 있을지 모르겠어.” 어렸을 때 부모가 이혼했고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엄마, 아빠와 사이가 좋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던 L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되물었어. 이혼하고 한 번도 두 분이 만난 적이 없어. 만날 일이 생기면 늘 피하기만 했고. 나는 그 사이에 서서 똑같은 상처를 되풀이할 자신이 없어. 오빠네 부모님께도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너무 막막해. L은 빈 주차 자리에 차를 주차하고 비상 깜빡이를 껐어. 그리고는 조용히 내 손을 잡았어.
“같이해, 그러면 돼.”
L에게 기대 한참을 울었던 것 같아. 다 쏟아내고 멋쩍게 웃자 L이 여태껏 본 적 없는 커다란 미소를 보였어. 결혼은 혼자 하는 게 아니구나. 그때 내게도 결혼이 행복의 범주에 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어. 그렇게 4년. L을 열렬히 사랑한다고 믿었지만 실은 온전히 사랑을 받을 줄도, 사랑할 줄도 몰랐던 나는 우리라는 사랑의 울타리 안에서 매일 조금씩 더 큰 사랑에 대해 배워가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