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질문을 처음 받아보는 건 아니야. 재작년 겨울인가 주변 사람에게서 힌트를 얻어 자신의 답을 찾아가기 좋아하는 친구 N이 뜬금없이 “사랑이 뭘까?”라는 질문을 던졌거든. 나는 남녀 간의 사랑인지 반문했어. 친구는 뭐든, 이라며 호기심 가득한 눈을 했고 같이 있던 모두가 생각에 잠겼어.
“애틋해지는 마음? 염려 같은 거.”
스타트를 끊은 친구 T의 대답을 듣자마자 며칠 야근을 한 남편이 초저녁부터 쓰러져 자는 모습을 떠올렸어. 가끔 그 얼굴을 한참 들여다볼 때가 있어. 이 사람의 하루가 어땠을까 떠올리다가 괜히 애틋해지기도 하고.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내일은 별일 없는 무탈한 하루가 돼야 할 텐데 염려하기도 해. 때때론 내가 이 사람에게 뭘 해줄 수 있을까, 마음이 달아오르기도 하고.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애틋한 마음이나 염려스러운 마음은 이렇게나 가깝지 않은 관계에서도, 심지어 동물이나 식물, 무생물에게도 느끼잖아. 난 그 대상이 어떻든 매번 함부로 애틋해지고, 염려하고, 또 응원하게 되더라고. 아주 작은 거라도 내가 무언가 해줄 순 없는지, 마음속에서 발현해 작게 일렁이는 것들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파할 순 없는지 혼자만 마음이 한없이 부풀어 결의에 차기도 해. 이 모든 걸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친구에게 그대로 말했더니 “그래서 나는 네가 늘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어.”라는 답이 돌아오더라. 그때부터 사랑이라는 감정의 경계가 혼란스러워졌어.
“때때로 나보다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
고민 끝에 내린 조금 더 선명한 결론이 그랬어. 난 늘 이런 마음이 들 때 비로소 상대를 사랑하고 있구나 느껴왔거든. 아주 오래된 친구 H와 만나면 아직도 고등학교 때 얘기를 하며 웃어. 그때의 우리는 서로에게 정말 치졸했다고. 봄이 무르익어가던 어느 날에는 등굣길에 작년에 벚꽃이 저기 폈네 여기 폈네를 두고 싸웠어. 그리고 일주일 동안 등하교를 같이 하기는커녕 말도 섞지 않았지. 그때도 우린 이미 5년이 넘은 친구였는데 참 우습지? 우리에게 벚꽃이 어디에 폈는지가 뭐가 그리 중요했겠어. 서로의 말에 동의해주지 않는 상대가 야속했던 거야. 나는 내가 제일 소중하면서 상대 역시 스스로가 더 소중하다는 걸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거지. 누군가를 내 그릇 안에 온전히 담아 헤아리기엔 아직 시야가 좁을 나이기도 했고.
지금은 어떻게 지내냐고? 대학생이 되고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거의 동시에 사과를 해버렸어. 그때 나는 어렸고 내가 너무 중요해서 네 마음을 보지 못했다고. 그래도 숱하게 싸우면서 네가 뭘 싫어하고 어떤 감정에 예민한지 알 수 있어서 그게 지금의 단단한 우리를 만든 것 같다고 말이야. 서로의 마음을 인정하면서 술의 힘을 빌렸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지금도 누군가 오랫동안 싸우지 않고 잘 지내는 이유를 물으면 그 시절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해. 친구 역시 사랑으로 다져지는 관계라 양보가 필요하다는 걸 그 모든 일들을 겪고서야 깨닫게 된 거지. 그제야 비로소 서로를 사랑하게 됐고. 물론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 마음이었다면 관계는 벌써 정리됐겠지만 말이야.
아 그러고 보니 줄곧 결과론적인 말만 했네. 사랑의 시작과 그걸 뛰어넘는 지속성도 중요한데 말이야. L을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를 해줄까? 우리는 여느 연인처럼 모든 시간을 서로에게 쏟았어. 물론 이건 친구 H를 처음 사귀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 서로가 너무 소중해서 혼자 있는 시간이나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시간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지. 같은 대학 같은 과였는데 주말까지 모두 만났으니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 알겠지? 근데 한 해 두 해가 가니까 같이 하는 시간보다 중요한 것들이 생기는 거야. 일주일을 내내 붙어 있다 보니 자연스레 “오늘은 이러해서 못 만나”라고 말해야 하더라고. 그때부터 우리가 아닌 내 시간에 대해 다시 자각하게 됐어. 사랑은 여전한데 아마도(?) 나의 경계 없는 사랑은 L만큼 중요한 걸 만들기 시작한 거야. 덕분에 친구와 겪었던 전쟁을 더 격하게 치러내야 했어.
돌이켜 보면 L과 결혼하기 전까지도 말이야 나한테 나보다 중요한 건 없었더라고. 9년 동안 만나온 L과 자주 싸웠던 이유도 결국 서로 입장이 다른 상황에서 둘 다 스스로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어. 친구 H와의 관계에서 사랑을 지속하는 법칙에는 이따금 상대에게 양보하는 마음이 수반돼야 한다는 걸 잘 배워놓고 이걸 남녀 간의 관계에서 적용하는 법을 몰랐던 거야. 별반 다를 바 없는데 말이지. 분명 세상에 이 사람보다 날 잘 알고 가까운 사람이 없다는 걸 아는데, 내 마음대로 통제가 되지 않는 거야. 그런 순간이면 L이 꼭 세상에서 가장 먼 사람처럼 느껴지더라. 나도 모르는 새에 소유와 사랑을 헷갈리고 있었던 걸지도 몰라. 그때는 L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어쩌면 L을 사랑하고 있는 나를, 사랑받고 있는 나를 더 사랑했던지도 모르겠어.
결혼이라는 안전장치는 말이야. 아니야 정정할게. 정확하게는 결혼이라는 안정장치는 끝이 없을 관계에서 사랑의 지속성을 먼저 생각하게 해. 처음 사랑을 시작했을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때때로 상대가, 상대의 말과 행동이 내 것보다 더 소중한 때가 있더라고. 어떤 지점에서 나의 것을 양보하려면 결국 상대의 생각이나 마음을 헤아리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하잖아. 어떤 관계든 한 번 이런 이해의 관점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어느샌가 어떤 말을 하고 무언가 결정을 내릴 때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게 되더라. 또 어떤 지점에서는 내가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는데, 이제는 그걸 아는 L이 내 편에 서서 말을 하고 나를 배려한 선택을 하더라고. 그럼 나는 또 그 사랑이 고마워서 이번에는 한 번 L의 말에 따라 볼까 하는 마음이 들어.
약간 노부부의 경지 같지? 그래서 우리는 결혼하고는 싸우지 않았어. 오히려 더 충만해졌다고 표현해. 혹시 양쪽에서 사랑의 지속성을 쭉 유지하려고 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놀랍게도 둘의 사랑이 태초의 것처럼 다시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해. 결혼하고 2년쯤 지났을 땐가 L과 차로 꽉 막힌 도로를 가다가 무료함의 안주로 사랑에 대해 말한 적이 있어. 분명 연애를 할 때도 줄곧 사랑한다고 느껴왔는데, 그럼 결혼한 후에 달라진 사랑의 크기와 형태를 설명할 언어가 없는 거야.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 그 큰 사랑보다도 더 커다란 마음이 존재한다고 믿게 됐거든. 지속성의 법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래프 밖의 사랑도 존재하더라고.
여기까지 쓰고 보니 친구 T의 말도, 친구 H와 남편 L과 겪은 관계의 숱한 변곡점들도 모두 사랑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결국 우리가 어떤 모양으로든 관계를 맺고 서로를 위하는 이 모든 마음이 사랑이 아닐까. 그래서 사랑을 어떤 한 뜻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거기도 하고. 분명한 건 나는 평생 뜻이 없던 결혼을 하게 되고 그 시점부터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이 뭔지에 대해 하나 둘 배워나가고 있어. 어떤 명확한 한 뜻으로는 정의할 수 없더라도 우리 삶 곳곳에 사랑이 뿌리내리고 있더라고. 마치 사랑이 곧 우리 삶 자체라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