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솔아 작가 신작 장편소설 <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
우리는 사회가 그려놓은 보편의 잣대 앞에 때때로 나를 지우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다름은 곧 이상한 것으로 치부되는 순간을 너무도 쉽게 접해왔기 때문이다. 임솔아의 장편소설 <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에 등장하는 네 명의 주인공 역시 사회가 그려놓은 틀 안에서 자신을 지우며 처절하게 소외감을 느껴온 인물들이다. 그중 티저북으로 구성된 두 번째 이야기 II. 관찰의 끝을 이끄는 주인공 우주는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해선 안 되는 일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라고 여긴다. 성소수자인 우주는 초등학생 때부터 ‘여자 아이는 응당-‘이라는 잣대를 들이미는 사회에서 그것을 몸소 배워왔기 때문이다.
우주는 결국 선미처럼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아주는 사람을 원하면서도 모두가 자신의 정체를 진짜 알아버릴까 겁내는 사람으로 자란다. 다름은 이상한 것이고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일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배워왔기에. 우주에겐 선미처럼 진짜 자신의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존재가 절실했을 것이다. 때문에 사랑이라는 명목 하에 이전과 같이 자신을 지우고 선미에게 모든 걸 맞추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것도 온전한 자신이 아님에도 말이다. 결국 선미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선미 역시 자신과는 다른, 사회의 기준으로 보편에 속하는 사람임이 확실해져 간다. 우주는 이 관계의 끝을 직감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우주는 단체 전시를 제안받으며 만난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들과의 시간에서 비로소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처음으로 함께 모여 식사하는 자리에서 남이 먹는 방식을 주시하는 이는 우주뿐이었고 우주는 그게 같이 앉아 있으면서도 혼자 먹는 것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우주는 다른 이들이 먹는 방식을 차근히 관찰하다가 결국 자신의 방식을 찾아낸다. 우주는 누군가의 방식을 관찰하고 그걸 따라 함으로써 보편에 속하고자 노력하며 살아온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제야 우주는 자신을 이루는 주변의 것들을 관찰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전시를 위해 줄곧 함께하면서도 일정한 거리감을 둔 채 서로를 대한다. 어떠한 잣대도 들이밀지 않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대해주는 관계인 셈이다. 어려서부터 온전한 자신을 침범당해온 우주에겐 그 어떤 관계보다 이들이 다정하게 느껴진다.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그들과 가까워지면서 우주는 선미와의 관계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게 우주와 선미 모두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과의 이별은 나의 한 시절과의 이별 같다고 여겨진다. 하물며 우주에게 선미란 존재는 처음으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여줬다고 믿었던 특별한 존재가 아닌가. 이별의 시간은 길고 지난하지만 결국에는 끝이 온다. 한 달이 계절이 되고 계절이 해를 넘으면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조차 무색해지는 시기가 오고, 그제야 비로소 관계가 이전의 시간과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우주 역시 이 지난한 시간을 지나 선미와의 관계를 끝내고 자기 자신을 오롯이 마주한다.
우주의 이야기 속에 나머지 세 주인공이 아주 짧게 등장한다. 이들이 나머지 이야기에서 어떤 느슨한 연대를 이어가고 그로 인해 각자가 어떤 인생의 변화를 마주할지 기대된다. 또 다른 주인공 화영, 보라, 정수 역시 우주처럼 각자만의 상처가 있고, 살면서 보편에 서기 위해 자기 자신을 지워 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부디 넷 모두가 이 느슨한 연대를 통해 과거의 상처를 잊고 자기 자신으로 온전히 살아가기 위한 첫밗을 맞이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