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과 취업 사이의 공백 #1
오랜만에 외출한 아버지를 서울에서 만났다. 간간히 우산을 쓴 사람이 있을 정도로 약한 비가 머리 위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아주 가는 빗방울의 무게가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우리는 머리에 빗방울이 맺힌 채로 35년 전통 순대국집 간판 아래 마주 앉았다.
세상이 빨리 변한다고 푸념하듯 말하는 아버지의 머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희끗해 보였다.
아버지는 35살에 가정을 꾸렸다.
장남으로 35년을 살아온 그는 가장이라는 더 큰 짐을 짊어졌다.
어릴 적 나는 검은 머리 사이에서 발버둥치고 있는 흰 머리를 뽑아주는 일이 가장의 무게를 덜어주는 것이라 믿었다. 뽑기가 무색할 정도로 머리가 새하얗게 물든 작년, 아버지는 갑작스럽게 정년을 맞았다.
그날 이후 좀처럼 열리지 않던 아버지의 입이 빨간 소주 앞에 운을 뗐다.
“이제 아르바이트를 해야 되는 나이니까.”
아버지는 끝을 흐리지 않고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가늘게 떨리는 그의 목소리에 시커멓게 물든 가슴이 요동쳤다. 아버지의 말에서 며칠 전 기사의 리드로 적은 글이 생각났다.
언덕은 반대편 사람에게 내리막이다. 언덕 앞에서 망설이는 아이에게 내리막에 선 아버지가 손을 내민다. 무게에 못 이겨 끌려 내려오면서도 아들이 자신을 밟고 올라서길 바란다.
아버지는 이제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 남들이 거나하게 취해 집으로 돌아오는 밤이면 어김없이 편의점 간판에 불을 밝힌다. 유통기한 지난 김밥을 먹던 손으로 책가방을 짊어지고 나가는 아들에게 만 원짜리 한 장을 쥐어준다.
수많은 풍파를 겪어온 아버지는 언덕 앞에 서 있는 아들에게 버거운 손을 내민다.
지난 2월, 청년실업률이 11.1%로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령자 한 명의 임금으로 신입사원 두 명을 고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내심 누군가의 아버지가 내주는 자리를 기대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어딘가에 있을 내 친구에게 기꺼이 자리를 내주셨다.
35년을 순대국만 팔아온 주인아주머니는 손님이 와도 심드렁했다. 일주일에도 몇 백 명씩 손님을 받아왔을 주인아주머니의 표정에 세월의 고단함이 느껴졌다. 그 표정을 따라 축 처진 아버지의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앉아 ‘셀프’만 외쳐대던 주인아주머니는 아버지 앞에 매운 고추를 내려놓았다.
“맵디다.”
아버지는 쌈장을 푹 찍어 고추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 위로 소주를 털어넣더니 맵다는 말과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숙인 고개 사이로 떨궈진 눈물방울이 바지춤을 적셨다.
20대 초반엔 아버지가 선 언덕이 90도에 가까운 가파른 언덕이 아니길 기도했다. 그가 조금 더 천천히, 평탄한 길로 내려오길 바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가 더는 손을 내밀 수 없는 위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이미 나는 오래전 부터 그의 어깨를 밟고 정상을 향해 걷고 있었다는 것을.
2015년 4월 21일
Written, Photographed by Jimbee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