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점점 아이가 되어간다

<우리 엄마의 이름은 엄마?> 그 후 #01

by 김진빈



살면서 무수히 많은 슬픔 앞에 놓였던 엄마는 남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제야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두 번의 장례를 치렀는지 알 것 같았다. 어른의 슬픔이라는 건 슬퍼도 울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 슬픔을 잘 간직하고 있다가 울어도 되는 때에 천천히 자신의 감정을 돌본다는 의미다.


<우리 엄마의 이름은 엄마> 어른의 슬픔에 관하여 中




<우리 엄마의 이름은 엄마?> 에세이를 위해 지난 2018년 1월부터 약 7개월간 엄마의 과거, 현재, 미래와 지냈다. 엄마의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알아가고, 미래를 상상해보는 그 짧은 몇 개월 사이에도 엄마는 계속해서 변했다. 살면서 마주했던 무수히 많은 슬픔 앞에서, 혹여 누군가 자신의 슬픔을 눈치챌까 전전긍긍하던 엄마는 더 이상 없다. 조금 더 정확하게는 내 앞에서만큼은 자신의 슬픔을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내가 엄마의 과거를 아파하고, 현재를 애잔하게 생각하고,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파이팅을 외치는 동안 엄마는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점점 아이가 되어 갔다. 인터뷰를 가장한 수많은 대화 속에서 엄마가 자주 했던 "언제 이렇게 많이 컸니?"라는 말을 곱씹으면서, 이제 엄마가 딸에게만큼은 슬픔을 슬픔이라고 말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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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단단한 돌처럼 살아온 엄마가 흘리는 눈물에는 도통 적응이 되지 않았다. 마감이 한창이었던 그날도 엄마는 시계가 열 시를 향해 가고 있는 시간에 뜬금없이 전화를 했다. 진동이 울리지 않게 전화를 돌리고 다시 일로 돌아간 내게, 엄마는 다시 전화를 거는 행위로 기어코 자신의 슬픔을 알렸다.


갑작스러운 발령 소식을 전하면서 엄마는 아이처럼 울었다. 이미 잔뜩 취한 말투로 혼자 노래방에 왔다고 했다. 엄마는 슬픔이라고 말했지만, 오랜 시간 지켜온 자신의 자리를 잃었다는 상실감과 모두가 알면서도 아무도 자신에게 미리 말해주지 않았던 배신감 따위에 사로잡혀 있는 듯 보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기사의 다음 대목을 생각하고 벽시계로 마감 시간을 확인했다.


"엄마 나 지금 좀 바쁜데."


엄마는 미안하다며 급히 전화를 끊었다. 한창 진행 중이던 기사는 이미 갈피를 잃었다. 그 후로 30분.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기사를 쓰다가 문득 머리에 깊게 스민 것들은 종종, 머리로는 물론 손으로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도록 만든다. 급히 짐을 싸서 동네로 가는 전철에 올랐다. 전철에서도 내내 원고 교정지를 붙들고 있었지만 고작 두 페이지짜리 원고 하나 제대로 보지 못했다. 내릴 역에 가까워졌을 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왜 이렇게 내 삶에 별거 아닌 엄마의 슬픔을 밀어 넣으려고 하는 걸까, 짜증이 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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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쯤에 아줌마 혼자 온 손님 아직 있죠?"

"아니요, 아까 나가셨는데."


카운터에 놓인 소파에 심드렁하게 앉아 나를 맞던 주인 아줌마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나를 보고 걱정 어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많이 취해 보이진 않았는데, 라는 말을 덧붙였다. 역에서 노래방, 노래방에서 다시 엄마 집까지 동네를 크게 한 바퀴 돌아가는 동안 머릿속에는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신호음만 울리는 전화를 몇 번이나 거는 동안 나는 집에 있기만 해봐, 라고 생각하면서도 엄마가 제발 집에 있길 바랐다.


시계는 벌써 12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기에는 늦은 시간이었다. 몇 번 현관문을 두드린 나는 비밀번호를 눌러 도어록을 열었다. 삐릭. 잠금이 풀리는 소리는 들렸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도어록 아래 문을 잠근 모양이었다. 맥이 풀렸다. 씩씩거리면서 다시 전화를 걸어도 안에서는 어떤 미동도 없었다. 내일 일어나기만 해 봐, 라는 메시지와 함께 문 사진을 찍어 전송하고는 집을 향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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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성인이잖아, 걱정 마."


뜻밖의 대답이었다. 차라리 너도 성인이니까, 라고 회유책을 썼다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단호하게 잘라 말할 수 있었을까. 그러면 중학교 때의 일을 말하며 나는 아직도 상처가 많은 아이라고 투정을 부릴 수 있었을까. 엄마 없인 살 수 없다고 말하는 내게 엄마는 조금의 틈도 없이 강경하게 대답했다. 어떤 필사의 노력을 해서라도 되돌려 놓으려고 했지만 엄마의 마음은 이미 집을 떠난 뒤였다.


<우리 엄마의 이름은 엄마> 엄마가 집을 떠날 때 中



나는 점점 어른이 되고, 엄마는 점점 아이가 되어간다.


다음 날 엄마는 애교 섞인 동작으로 미안하다 말하는 이모티콘을 보내며 사과를 대신했다. 엄마가 다시 집을 떠났을 때 남긴 한 마디는 몇 날을 슬프게 했다. 내게는 그 말이 엄마도 나도 모두 성인이니 이제 우리 각자의 길을 살자, 라는 말처럼 들렸다. 엄마는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했을 뿐이고, 여전히 우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엄마는 어쩌면 점점 우리가 더 필요한 아이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어릴 적 나는 슬픈 일이 생기면 엄마 품으로 기어들어갔다. 엄마가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전화를 걸어 아무 말 없이 울음부터 쏟아내는 통에 엄마가 집으로 한걸음에 달려오는 일도 허다했다. 그날 엄마가 집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과거의 엄마가 되어 보는 상상을 했다. 엄마로 살면서 얼마나 많이 마음을 졸이고,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이제는 아이가 되어가는 엄마를 위해 내가 그 일을 대신해야겠다, 생각했다. (물론 여전히 짜증이 앞서는 딸이지만...)






저자 김진빈

문득 스친 한 문장으로 삶을 써내는 작가로 살고 있다. 평소 스스로를, 그리고 세상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일에 꽤 많은 시간을 쓴다. 이따금 무형의 형태로 머릿속을 부유하는 수십 개 문장 중 단 한 줄을 건져 수면 위로 올린다. 그리고 그 문장은 어김없이 글이 되고 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