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의 이름은 엄마?> 그 후 #04
일방적 사과에 대한 대답으로 돌아온 일방적 관계 청산. 나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미처' 답을 하지 못했다(라는 문장을 쓰고 또 일주일이 흘렀으니 오늘로 2주가 지났다). 이 관계에서 지친 마음을 안고 있는 사람은 엄마만이 아니었다. 엄마 마음을 이해하는 데까지 내 마음이 미치도록, 나는 미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제 정말 이 관계가 끝나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관계가 끊어지지 않도록 또 이 상황을 모면하는 달콤한 말들을 쏟아내야 하는 걸까. 마치 오래된 연인과의 다툼으로 결말을 고민할 때처럼 생각이 많아졌다.
그렇게 처음에는 스스로에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핑계를 댔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난 후에는 이제 와서 뭘, 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사이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지만 이미 떨어져 살고 있는 우리에게 관계 청산이라는 말이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엄마 입장에서 일방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과를 건네기까지 나 역시 감정 소모가 심했다. 엄마는 어른이라는 이름표를 단지 10년도 넘은 딸에게 때때로 자신의 뜻대로 살아달라 요구했고, 그렇지 못할 땐 보이지 않는 칼로 내 마음에 상처를 냈다. 어쩔 때는 나보다 더 어린아이가 되어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달라 어리광을 부리기도 했다. 그런 엄마에게 나는 차마 “엄마는 어른이잖아. 이제 그만해”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모질지 못한 딸이었다. 속으로는 수천수만 번 이제 좀 그만 하라는 말을 되뇌었지만 그 상상 끝에 선 나는 언제나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부여잡고 엄마에게 사과를 했다.
사실 내 입장에서 '사과'란 내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빈다는 사전적 정의와 조금 달랐다. 오히려 어떤 헤아림에 가까웠다. 100% 엄마 마음을 이해하고 내 잘못이 있다고 인정할 수 없을 때면 그 당시 엄마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이후에 어떤 생각으로 내게 모진 말들을 쏟아냈는지 헤아리려 애썼다. 그렇게 내린 결론으로 엄마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기까지 내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아니, 엄마가 그럴 때마다 나도 아프고 힘들다고 말해왔다면 오히려 우리 관계가 조금 더 단단해졌을까.
우리는 아직도 서로를 너무 모르고,
그렇다고 이제 와서 서로를 새로이 알아가기엔 너무 늦었다.
적당히 먼 관계였다면 이내 끝이라는 결론을 내렸겠지만,
나는 이 관계에서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하겠다.
문득 스친 한 문장으로 삶을 써내는 작가로 살고 있다. 평소 스스로를, 그리고 세상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일에 꽤 많은 시간을 쓴다. 이따금 무형의 형태로 머릿속을 부유하는 수십 개 문장 중 단 한 줄을 건져 수면 위로 올린다. 그리고 그 문장은 어김없이 글이 되고 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