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의 이름은 엄마?> 그 후 #03
가까운 사람이 낸 상처는 유달리 깊다. 네가 준 상처가 너무 깊어 내게도 아물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 마디 툭 던지며 쌩- 하고 돌아서버릴 수 있는 관계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 못한, 혹여 사이가 틀어질까 한 마디 한 마디가 조심스러워 진심을 숨기게 되는 관계일수록 상처는 곪기 마련이고 그만큼 둘 사이는 꽤 자주 삐그덕 소리를 낸다.
아침에 일어나 엄마가 보낸 메시지를 받아 들고 한참을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있었다. 새벽 두 시 그리고 오전 7시. 지난 새벽 엄마가 남긴 메시지 두 개가 얼른 답을 내놓으라고 재촉하는 동안 내 머리는 잠시 어젯밤 우리가 나눈 대화를 돌려보기 바빴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난밤 나눈 대화에서 잘못된 부분은 없었다. 상처를 받은 사람은 있지만 상처를 준 사람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처를 받은 사람의 외로운 싸움이 시작됐다. 도무지 이해할 방법을 찾지 못한 나는 출근을 해서도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 그렇게 엄마가 보낸 메시지를 머릿속에 움켜쥐고 종일 시름시름 앓았다.
늦은 퇴근길, 고심 끝에 엄마에게 장문의 답장을 보냈다. 엄마 마음을 충분히 알 것 같다는 말로 시작했지만 내 입장에선 당신을 전부 이해하기 어렵고, 그럼에도 나는 당신과 잘 지내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있으니 이제 그만 이 외로운 싸움을 끝내자는 말로 끝을 맺었다. 마지막에는 내가 더 잘하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이 정도면 여태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엄마의 상처를 아물게 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곪을 대로 곪은 관계는 결국 아물 새도 없이 터지기 마련이다. 이런 외로운 싸움과 일방적 사과의 과정을 몇 번이나 겪어야 했던 엄마는 스스로 곪은 상처를 터트려버렸다. 내가 메시지를 보내고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엄마는 답장을 보내왔다. 네가 준 상처가 너무 깊어 내게도 아물 시간이 필요하다고, 엄마는 설움을 쏟아냈다. 그동안의 내 일방적 사과가 우리 관계를 병들게 했을까. 엄마는 금방이라도 쌩- 하고 돌아서버릴 기세였다. 일방적 사과가 엄마를, 그리고 우리 사이를 좋게 만드는 일이라고 굳게 믿었던 나는 그대로 사고가 멈췄다. 살면서 내 삶이, 우리의 관계가 꽤 자주 예상치 못한 국면으로 접어든다고 생각해왔지만 이만큼 당황스러운 상황은 처음이었다.
내가 우물쭈물하며 답장을 미루는 사이 엄마는 또 한 통의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이제 그만할래. 결국 사달이 났다. 일방적 사과에 대한 대답은 일방적 관계 청산이었다.
문득 스친 한 문장으로 삶을 써내는 작가로 살고 있다. 평소 스스로를, 그리고 세상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일에 꽤 많은 시간을 쓴다. 이따금 무형의 형태로 머릿속을 부유하는 수십 개 문장 중 단 한 줄을 건져 수면 위로 올린다. 그리고 그 문장은 어김없이 글이 되고 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