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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빈 Mar 28. 2019

무언가에 대해 리뷰한다는 것

기억을 만드는 기록에 대하여 #브런치무비패스


에디터 머릿속은 대게 복잡하다

그 머릿속만큼이나 주변이 참 복잡해진다


책상이나 가방은 머릿속에 부유하는 생각을 끄적인 종이가 나뒹굴기 일쑤고, 아이폰 메모장이라고 해서 이 대참사를 피할 수 없다. 기획을 할 때는 이번 달에 어떤 기사를 꾸려가야 하나?라는 한 가지 질문에만 집중해 하루를 살아간다. (극히 드물지만)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져 늦장을 부리거나, 출퇴근길에 스마트폰을 내려두고 멍을 때릴 때 혹은 인풋을 위해 문화생활을 즐기다가도 문득문득 아이템을 떠올린다. 스마트폰 메모장은 그 문득문득으로 어질러져 있고, 좁디좁은 아이폰 자판이 영 거슬릴 때는 손에 잡히는 쓸 것을 들어 알아볼 수 없는 글자를 휘갈기기도 한다.


인풋 없이 아웃풋만 주야장천 내보내야 하는 마감 기간이 오면 어지러운 메모장에서 소스를 낚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지나간 기억은 흐릿해지기 마련이고, 아이폰 메모장에 기록된 약자나 아무 종이에나 휘갈긴 글자는 어린아이의 낙서만큼이나 해독이 어렵다. 사실 아무 종이에나 휘갈긴 아무 글자는 대게 읽다만 책 사이나 책상 구석에서 발견되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이기도 하다.


이 단계까지 오면 사실상 머릿속에는 더 이상 인풋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분명히 아주 재밌게 읽은 책인데 주인공 이름이 기억나지 않거나(심지어 간혹 책 제목도 잊는다), 영화를 본 후 짧은 일상스타그램을 남길 만큼 강렬한 인상을 줬던 작품 결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로부터 몇 분 후 비루한 기억력에 제발!을 외치며 어느새 컴퓨터 앞에 앉아 관련 단어로 구글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래도 도통 원하는 바를 찾을 수 없을 때는 사실 별다른 방도가 없다. 그저 다시 읽고 보는 수밖에.





지난주, 브런치 무비 패스 작가로 선정된 이후 첫 영화인 <우상> 시사회에 참석했다. 오랜만에 바짝 긴장하고 영화를 봤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자마자 아이폰을 꺼내 감상평(?)을 약자로 빠르게 적어내려갔다. 조금씩 흘러 흘러 어느 순간 내 곁을 영영 떠나버릴지도 모르는 기억을 그렇게나마 잠시 더 붙잡아뒀다. 영화를 본 이후에도 집으로 돌아오는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L군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사실 이야기가 끊이지 않아 돌고 돌아 집으로 왔다). 영화를 쥐어뜯을 기세로 관람했던 터라 인풋은 강렬했고, 집으로 돌아오는 한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아웃풋 역시 엄청났다. 집에 오는 길부터 무엇을 써야 하는가, 하는 고민에 휩싸였고 오랜만에 일이 아닌 무언가를 위해 내 생각을 기록한다는 기분 좋은 설렘이 있었다.


다시 볼 수 없는 영화에 대한 리뷰를 쓰는 일이 쉽진 않았지만 그만큼 내게 뜻깊게, 또렷이 남은 장면만을 곱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대학에서 영화 평론 수업을 들을 때는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반복해서 보면서 장면을 초 단위로 쪼개서 분석했다. 이 장면이 이 서사에서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흘려보낼 수 없다는 강박이 쌓이고 쌓여 결론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았다. 수업 과제가 끝난 뒤에 나는 이 영화가 정작 내게 무엇을 남겼는가 고민할 때가 많았다.


첫 영화를 관람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브런치 무비 패스가 내건 조건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깨달았다. 브런치 무비 패스 조건은 크게 두 가지다. 작가가 선택적으로 시사회에 참석해 누구보다 빨리 최신 영화를 본다. 그리고 일주일 이내에 자신만의 아웃풋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오는 매력 역시 크게 두 가지다. 누구에게도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롯이 내가 영화에서 보고 느끼고 깨달은 바를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평소였다면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잊어버렸을, 흘러가는 내 단편적 생각을 지금 이 순간부터 영원히 붙잡아둘 아웃풋으로 만들어낸다는 것.


기록하지 않은 기억은 결국 흐릿해지기 마련이고

정리되지 않은 기록은 무용지물일 뿐이라는


이 단순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글쟁이로서의 숙제를

브런치 무비 패스가 다시금 되새기게 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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