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의 눈물 01.
오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엄마, 아빠 자영업자들의 아픔을 같이 공유합니다.
모든 이야기는 실제 자영업자들이 겪었던 실화를 재구성한 이야기로 대한민국의 모든 엄마, 아빠들에게 바칩니다.
자영업자의 눈물 01.
아빠가 내일도 다시 일터로 나갈 수 있는 이유
오늘은 4일 연휴가 시작되는 첫 토요일이다. 아이들과 함께 근교 나들이라고 하고 싶지만, 연휴 대목이라도 봐야 이 번 달 월세 내고 직원들 월급이라도 밀리지 않고 줄 수 있으니, 단잠을 자는 아이들의 이마에 살며시 뽀뽀하고 농수산물 도매시장으로 장을 보러 집을 나섰다.
장사가 잘 되면 좀 비싸더라도 식자재 배달 업체에 맡기면 하다못해 1~2 시간 잠도 더 자고 아이들과 아침식사라도 하고 가게로 나가련만…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이다 보니 연휴 대비해서 장을 보려는 식당 주인들로 이른 아침부터 도매시장은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4일 치 식자재를 사기 위해 분주하게 시장을 돌아다니고 짐을 가득 실은 차를 끌고 가게에 도착하니 8시가 다 되었다. 아직 직원들은 출근하기 전, 가게 앞 골목길에 차를 잠시 정차하고 끊어질 것 같은 허리를 두드려가며 짐을 가게 앞에 내려놓는다. 좁은 골목길이라 차 두대가 지나갈 수가 없어 금세 차를 빼라며 “빵빵’ 거리는 차가 뒤에 선다. 짐을 내리다 말고 차를 다른 가게 쪽으로 뺐다가 다시 오기를 몇 차례 끝에 겨우 짐을 내려놓고 가게에서 걸어서 10 여분 떨어진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가게로 돌아왔다.
뱃속은 무슨 난리라도 난 것처럼 ‘꼬르륵, 꼬르륵’ 요동쳤고, 달달한 믹스커피 한 잔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했다. 풀어놓은 짐을 정리하는 것만 해도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지난달부터 직원을 한 명 더 줄여서 나를 비롯한 3명의 직원 모두가 체력이 바닥날 데로 바닥난 지친 상태다. 2명의 직원이 출근하고 한 친구가 나타나질 않았다. 워낙 지각이 잦은 친구이기에 그러려니 했지만, 가게 오픈 시간이 다가오며 내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전화를 해보니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음성이 나온다. 불안감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바쁜 날에는 꼭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안 나오는 직원들이 있다. 하지만 오늘은 안 그래도 인원도 부족한 데다 연휴 시작일이라 버라이어티 한 하루가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다.
파출부 인력사무실 업체에 전화를 해도 “당일에 갑자기 사람을 구해서 보낼 수는 없다”고 단호히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11시 오픈 시간은 다가오고 달리 대안은 없고 그냥 체념하고 가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다.
밥을 밥공기에 담아 밥 보온기에 넣기 위해 밥솥을 여는 순간 하늘이 노랗게 변했다. 밥이 전혀 안되고 물이 흥건한 채로 그대로 있는 게 아닌가? 분명히 전기도 들어와 있고 스위치도 취사로 눌려 있는데 밥솥은 전혀 미지근도 안 했다. 업소용 전기밥통의 내부 솥을 들어 보니 밥통 바닥의 온도 센서와 밥솥 사이에 딱딱하게 마른 밥알 몇 개가 붙어 있었다. 원망스러운 말라붙은 밥알 몇 개 때문에 센서가 오동작을 했던 것이다. 식당을 하다 보면 워낙 예상치 못한 별의별 일들이 많기에 새로울 것도 없었다. 다시 밥솥을 누르고 오픈 시간을 늦추기로 했다. 시간은 흐르고 연휴에 몰려나온 인파로 많은 손님들이 우리 가게 안을 두리번 거리다 다른 가게로 발길을 돌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내 가슴은 찢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우여곡절 끝에 40분 늦게 가게를 열었고, 손님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문을 받으며 요리를 하며 혼이 나간 채로 이리저리 뛰는 나에게 주방 직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주방에 물난리가 났어요~!” 주방으로 달려가 보니 하수구가 막혔는지 완전히 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물을 계속 써야 하는 데 목욕탕처럼 홍수가 되어버린 주방에서 그대로 요리를 할 수는 없었다. 자칫하면 주방의 물이 홀로 넘어올 지경이었다. 고무 뚫어 뻥으로도 해보고 스프링 철사로 넣고 돌려도 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홀에서는 음식이 안 나온다고 아우성이고 주문을 기다리는 손님들도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부르는 소리에 홀로 달려가다 물과 기름 범벅으로 넘쳐나는 주방에서 젖은 신발 때문에 “쿵”하는 크고 묵직한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졌다. 어찌나 세게 넘어졌더니 눈 앞이 한 동안 안 보일 정도였다.
손님들은 짜증을 내다 못해 가게를 나가고 있었고, 그중 한 명이 가게를 나가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한 마디 내뱉었다.
“아이 씨*, 무슨 장사를 이따위로 해. 완전 개 오합지졸들이 지* 생쑈를 해요~”
머리가 두 동강 날 것 같은 아픔을 느끼기도 전에 나의 자존감은 끝없는 나락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벌떡 일어나서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지만, 먹고살아야 하기에, 나를 믿고 있는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이 있기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인 서울의 4년재 공대를 나와 대기업 전자회사에도 근무했던 내가 한없이 초라하고 무능력하게 느껴졌다.
하는 수 없이 가게 출입문에 “내부 수리중”이라는 종이 안내장을 붙여 놓고, 임시로 가게를 닫고 하수구 뚫는 업체에 전화를 했다. 1시간 넘게 지나서 업체 담당자가 왔고 2~30분 작업으로 하수구는 막힘없이 내려갔다. 가게 건물이 너무 오래되어 배수관이 너무 작고 노화되어 배관에 기름 찌꺼기가 너무 많이 끼었다는 것이다. 30분 작업을 하고 25만 원을 받아갔다. 할 말이 없었다. “음식 장사하는 사람들은 무슨 죄인가?”
미끄러운 바닥에 세제를 풀어 닦아내고 다시 가게를 오픈했으나, 이미 점심 피크를 다 놓쳐 버렸다. 이제야 교대로 식사를 하기로 했고, 오늘 첫 식사가 목이 메어 넘어가지 않았다. 먹는 둥 마는 둥 몇 번을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이미 차게 식고 말라 버린 음식이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았다.
“아이 씨*, 무슨 장사를 이따위로 해. 완전 개 오합지졸들이 지* 생쑈를 해요~”
나의 뇌리를 갉아먹는 듯한 그 저주가 가게를 마감할 때까지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부족한 인원에 가게를 정리하고 마감하고 집에 들어오니 11시 10분, 집을 나선 지 18시간 만에 다시 돌아왔다. 아빠 오는 거 보고 잔다며 때를 쓰다가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는 5살 큰아이의 손에 쥐어진 스케치북에 서툰 글씨로 쓴 “아빠 사랑해~!”를 보는 순간 소나기 같이 굵은 두 줄기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아빠가 내일도 다시 일터로 나갈 수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