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십원짜리 행복

기록하면 재벌될지도 몰라

by 오잘줌마

지금 우리는 장수를 단단히 각오해야 하는 시대를 산다고 한다.


지난 학기 딸아이 교양과목 토론 주제로 기대수명 자동 계산기 해보는 게 있었다. 재미로 나도 해봤다.

나는 122세까지 산다고 나왔다. 앞으로 65년 23725일 정도 남았다고 떴다.


남편은 팔십 몇 세가 나왔다고 서운해하며 전화를 했다. 술 담배를 하지않고 운동은 많이 하고 나랑 비슷한 식습관을 가졌는데 이상했다. 퇴근해서 다시 해보자고 어린아이 달래듯 전화를 끊었다. 저녁에 찬찬히 설문에 응했더니 107세가 나왔다. 좋아한다. 뭐야 오래살기 싫다더니.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수명은 83.6년이라고 지난 해 7월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했다. OECD 국가의 평균 기대수명은 80.3년다. 우리나라는 장수국가 상위권에 속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은 1970년 62.3세에서 1980년 66.1세였고 1990년 71.7세라고 한다. 1990년대만 해도 환갑잔치를 하고 칠순잔치는 큰 잔치였다. 지금은 팔순잔치쯤 되어야 가족 친지 초대해서 잔치를 하는 분위기다. 경로당에서 70대가 막내라서 잔 일만 해서 가기 싫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있다. 2010년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80.2세라고 한다. 최근 50년 동안 기대수명이 20년 넘게 늘었다고 한다.


기대수명이 늘었다면 건강수명도 늘었을까.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건강수명은 2012년에 65.7년이고 2022년에는 65.8년으로 거의 차이가 없다고 한다.


몇 년 전 100세 인생이라는 노래가 유행한 적있다. 이노래를 부른 가수 이애란님은 25년만에 역주행하면서 황금기를 누리고 있다. 노래가 좋아서 오랜 무명가수 시절을 견딜 수 있었다고 한다. 가사를 적어본다.


육십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


칠십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할 일이 아직 남아 못 간다고 전해라


팔십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만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


구십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테니 재촉말라고 전해라


백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팔십세에 저 세상에서 또 데리러 오거든

자존심 상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


구십세에 저 세상에서 또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텐데 또 왔냐고 전해라


백세에 저 세상에서 또 데리러 오거든

극락왕생 할 날을 찾고 있다 전해라


백오십에 저 세상에서 또 데리러 오거든

나는 이미 극락세계 있다 전해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우리 모두 건강하게 살아가요.


내 남편은 입버릇처럼 자기는 팔십까지만 살거라고 했다. 듣기싫다고 해도 자기가 그렇다는데 입을 때릴 수도 없고 냅뒀다. 그러나 시어머니께서 팔십 넷에 돌아가셨을 때는 숨넘어가게 울었다.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은 오래오래 살기를 바란다.


지금 시대는 오래 사는 걸 걱정해야 한다는 말이 괜한 말로 들리지않다.

9988234.

'99세 까지 88하게 살다가 2, 3일만 아프고 죽기' 가 소원이라고 하는 말이 유행처럼 퍼진 적이 있다.


오래 사는 걸 걱정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조금 먹고 많이 움직이고, 비타민C 를 충분히 먹고 물은 하루 2L 정도 마시고 스트레스 받지말고 나이에 맞게 건강기능 식품과 보조 제품을 먹고, 쉽게 말해서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행복한 사람은 건강하게 오래살고 불행한 사람은 아프게 오래산다고 한다. 당연한 말 같은데 끔찍하다.


우리나라가 청소년 자살율 1위다, 행복지수가 꼴찌에 가깝다, 노인 자살율이 1위다... 이런 말을 들으면 너무나 안타깝다. 일단 나부터 행복해야했다. 그리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애쓰고 노오력했다.


내가 나를 알아주지않으면 외부의 바람에 휩쓸려 정신 못차릴 때가 있다. 억지로라도 발꼬락 끝에 힘을 주고 버티다보니 허벅지 근육이 탄탄해졌다.


인스타를 보면 능력있고 행복한 사람이 너무 많다. 가끔 2월 스케쥴이 강의일정으로 꽉 찼다는 지인의 소식을 보면, 얼른 숙지산에서 내려와서 정신차리고 제안서를 여기저기 뿌려야할 것 같다. 아니 애초에 산에 올라가지 말았어야하나 한량같은 나를 반성하기도 한다.


나에게는 불행을 행복으로 바꿔주는 특효약이 있다. 나는 내가 좋다. 그런데 가끔 예쁘고 능력있는 여자 강사가 제때 밥 못먹고 잠 못자면서 강의를 해서 남편에게 외제차를 선물했다면서 고급진 키홀더를 흔드는 사진을 sns 에서 보면 내 마음이 마구 흔들린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의 인생을 사는 중이고 나는 내 인생을 살고 있으니까.


나는 불평의 마음과 말이 목구멍에 차오를 때마다, 10년 전 나를 생각하면 입이 벌어지고 작은 눈이 커지면서 들숨과 함께 감사가 뿜어나온다.


2014년에 나는 전성기를 누렸다. 경기권의 대학에서 2박 3일 리더십 캠프를 수 십번 진행하고, '열심히 일한 우리 떠날께요' 남편에게 통보에 가까운 허락을 구했다. 1월 18일 9박 10일 서유럽 여행을 했다. 융프라우요흐 언덕에서 만원짜리 신라면을 먹지않고 1유로로 뜨거운 물을 받아서 한국에서 가져간 신라면을 먹은 것이 내내 아쉬움으로 남지만 "여기는 융프라우요흐 언덕입니다. 하늘도 잠깐 파란 얼굴을 보여주네요" 눈바람 싸대기를 맞으면서 셀프동영상을 찍었다. 패키기 여행팀은 40대 후반 우리 두 여자를 보고 골드미스인줄 알았다고 했다. 충분히 즐겁고 행복했다.


20년 전, 2004년에 나는 특공대와 함께 출동하는 특수요원이었다. 수원 인근에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면, 팀별로 새로운 고객을 찾아 한꺼번에 영업을 나갔다. 국장님 인솔하에 한 지역에 내린 후 각자 흩어져서 아파트를 샅샅이 뒤진다. 팀이 한꺼번에 영업을 나가는 걸 '특공대 간다' 고 했다.


"배부장은 101동 102동 뛰어"

"박부장은 103동 104동 뛰고, 신과장은 나랑 같이 105동 106동 뛰자. 그리고 12시에 여기서 만나"


새 아파트에 입주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뭔가 새 물건을 사고 싶고 새집에 어울리게 인테리어를 하고 아기방을 꾸미고 싶어진다. 몇 번 이사를 하다보면 '다 부질없다'는 걸 알게 된다. 아이 방에 책과 교구가 가득 쌓인 새집 증후군?을 앓는 애기엄마를 찾는 것이 특공대가 할 일이다.


아파트 꼭대기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다음 내려오면서 한 집 한집 초인종을 누르고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00벨 000입니다. 아기방 꾸밀 예쁜 한글 포스터랑 영어 포스터를 드릴께요."


금새 만남의 장소로 내려오는 사람도 있고 시간이 한참 지나도 오지않는 사람이 있다. 오지 않는 사람은 '지금 열심히 클로증 중이겠구나' 생각하면서 모인 사람들끼리 화이팅을 한다. 다 같이 모여 점심을 먹고, 오후에 근처 아파트를 또 한번 수색한다. 특공대 온 사원 중에 카드를 끊어오는 사람은 그날의 영웅이 된다. 영웅님이 빵빠레를 쏘기도 하고 국장님이 기분좋다고 사주기도 한다.


지금도 수원 인근 안양 화성 군포 수지 의왕 어딘가를 지나칠 때 의식하지않아도 훅! 하고 그 때의 느낌이 살아난다. 남편과 차를 타고 가다가 그 때 일을 이야기하면 남편은 슬프다고 하지말라고 한다. 워 어때? 이젠 괜찮아. 왜냐하면 그 일 덕분에 우리 아이 잘키웠거든.


행복은 강도 보다 빈도라고 한다. 인스타에는 강도 높은 행복이 올라올 때가 많다. 나는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우리 두 아이가 수시로 선물과 행복을 선사한다. 먹튀엄마가 될 순 없으니 아이들의 기쁨과 나의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서 인스타에 업로드한다. 요즘은 남편도 가세해서 나의 행복에 적극 참여한다. 내가 너무 행복해보여서 자기의 슬픈 어린시절이 아프다는 댓글을 본 후로는 글을 남길 때 잠시 주춤한다.


행복은 기록하면 더 행복해진다. 블로그에 올리면 좋다. 왜냐하면 검색어를 넣으면 바로 추억을 찾아준다.

내 블로그에 '서유럽' 이라고 검색했더니 2014년 1월 18일이라고 알려준다. 내 블로그에 '행복' 이라고 검색하니까 959개의 글이 있다. 칠보산 이야기가 58건이고 숙지산이 18건, 광교산이 35건이다. '산책'이라고 검색하니 113건의 추억이 있다.


나는 '행복운동가'다. 대한민국 행복지수 1%up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라를 잃었을 때 독립운동가가 있었고, 가난할 때 새마을 운동을 했다. 행복지수가 해마다 꼴지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시대에 나는 행복운동가 정신을 전파하고 싶다.


두통 치통 생리통에 진통제가 효과가 있다. 사람 때문에 마음이 아플 때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사람땜에 상처받으면 정신력으로 이기려말고 몸을 돌보라 한다. 정신이 칼에 맞고 피 흘린날 싸구려 음식을 구석진 자리에서 먹으면 위험천만하다고 한다. 요즘 입맛이 없어서 대충 식사를 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소찬이라도 정성스럽게 차려서 오감을 열고 '나의 몸과 마음을 위한' 식사를 해야겠다.


행복은 목표가 아니고 도구다 목적지까지 가기 위한 연료다. 심리학자 서은국 교수는 '행복의 기원'에서 행복은 생존의 도구라고 했다.


우리가 느끼는 기쁨과 즐거움은 왜 그토록 빨리 소멸될까.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누군가는 소소하고 작은 행복을 십원짜리 행복이라고 했다. 저렴하다는 뉘앙스는 아니었다.


"우리에겐 아직 열두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들어봤을 거다. 난중일기에는 장엄한 문장 말고 의외로 십원짜리 행복기록이 많다고 한다.


-먹은 음식 얘기

-부하들 말 안들어서 돌아버리겠다는 얘기

-수다떨고 장난친 얘기

-번아웃에 고통스럽다는 얘기

-같대밭 걸은 일

-원균 뒷담화...


내 블로그에 '음식'을 검색해보니 167건 스토리가 있고 '맛있다' 를 검색하니까 151건의 기록이 있다. '아프다'는 23건 '고통' 은 64개의 이야기가 있다. '싫다'를 검색하니 6건의 이야기가 있다.


오늘은 금요일이다. 아들이 일찍 퇴근한다고 전화를 했다. 고기듬뿍 된장찌개도 맛있는 무대리에서 삼겹살을 사준다고 한다. 아빠는 야근이고 딸아이는 제주도 여행가서 아들이랑 단둘이 데이트한다. 벌써부터 입꼬리가 씰룩거린다.


내 마음의 욕심이 팔딱거릴 때 나는 10년 전 나를 돌아본다. 그러면 '울음 뚝!' 하듯 금새 불평이 멈춘다. 그렇게 십원짜리 행복이 쌓여 나도 모르는 사이에 행복재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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