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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잘 May 31. 2024

52. 사자 같은 남편 졌소 아내

때에 이르노니 이겼오

“당신은 지혜로운 사람이야. 나를 바꾼 거 보면 당신은 현명해”  

    

나는 남편이 동창회에 간다고 하면 자정이 다 되어 돌아올 때까지 전화를 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잘 놀고 있을텐테, 올 때 되면 올 텐데 생각한다.     


남편도 지금은 그런다.      


23년 전에 약속한 시간이 1분 지나서 귀가했다고 현관문을 잠그고 열어주지 않은 적이 있다. 그 전에도 한 번 문을 열어주지 않아서 아파트 복도 계단에서 한 시간을 기다리다가 감기가 걸려서 고생한 적이 있다. 그날은 맥주를 한잔 해서 알딸딸하기도 하고 부아도 나서 집 근처 찜질방에 가서 잤다. 아침에 집에 들어오다가 두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는 남편과 마주쳤다. 자기집에 왜 들어오려하느냐면서 성난 얼굴을 하고 지나갔다. 집에 올라오니 현관 비밀번호가 맞지않아서 문을 열수 없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현관문 옆에 붙어있는 문 열어준다는 스티커를 보고 연락을 해서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월드컵 경기 때 어느 회집에서 동료들이랑 저녁을 먹고 동료를 버스 정류장에 내려주고 집에 왔을 때, 귀가 예측 시간이 맞지 않다고 알리바이를 대라고 했다. 식당에 전화를 해서 여자 네 명이 식사하고 언제 갔냐고 물었는데 종업원이 손님이 많아서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넘어간 적이 있다. 또 한번은 광교산 아래서 점심을 먹었는데 광교산은 와이파이가 안 터지는데 어떻게 통화를 했냐고 막무가내로 다그쳤다. 기어이 그 식당에 가서 통화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확인했다. 자기가 갔던 식당에서는 통화가 안됐었다는 변명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서글퍼서 눈물이 났다.     

 

잘 생긴 사람이 왠 의처증? 도대체 알 수 없었다.   

   

유아교재 세일즈를 할 때 직원들이 거의 아이 엄마였다. 나는 풀셋트에 천만원하는 아이 책을 살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서 북세일즈를 시작했다. 동료들은 아이를 유치원에 맡기고 일을 하러 나왔기에 저녁 회식은 엄두를 못냈다. 한 달에 한번 점심 회식을 하고 국장님이 노래방 주인에게 전화를 하고 사정을 해서 점심에 노래방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스트레스를 풀었다. 내가 낮에 노래방에 가도 의심을 하는 남편은 저녁에 노래방 가서 쪼잔하게 팁을 주면서 놀기도 했다. 나는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 고 따지기도 하고 어린아이를 둔 영업사원 엄마들의 고충을 이야기해도 개코 같은 소리로 무시당했다.  

    

요즘 나의 일상은 먹고 산책하는 것이 다다. 가끔은 잉여인간이 된 것 같은 허탈함도 있지만, 수술 후 조직검사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었다니 2개월 후 검사를 해야 한다. 무리하지 말고 면역력 키우는데 신경쓰라고 해서 세 끼를 잘 챙겨먹으려 하고 있다. 운동을 걷기가 적당한 거 같아서 아침 저녁 식사 후에는 공원을 걷고 점심을 먹고는 집앞 숙지산 맨발걷기를 하고 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려고 하는데 자꾸만 버둥거리고 벌떡 일어나 달리고 싶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달리기를 3등 안에 들어서 손등에 도장을 받고 싶었다. 공책을 흔들면서 집으로 오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달리기를 잘하면 4등이었다. 



어제 저녁을 먹고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공원을 걸었다. 중간에 이웃에 사는 동료 강사를 만났다. 손을 잡고 걷는 우리를 보고 다정하다고 인사를 한다. 그녀는 개모차를 끌고 지나갔다. 공원을 한바퀴 돌고 노을이 잘 보이는 의자에 앉았다. 남편은 결혼 생활 31년이 얼마나 힘들었겠냐면서 내 손을 잡는다. 자기 성격이 강해서 잔소리하고 참견했으면 우리 관계가 나빠졌을 거라면서 내가 지혜롭다고 말한다. 가끔은 잔소리를 듣고 싶을만큼 너무 잔소리를 안해서 관심이 없는건가 싶을 때도 있다고 한다.     


나는 남에 인생에 참견하지 않는다. 그게 남편이든 자녀이든 판단하고 강요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할 역할을 할 뿐이다. 내가 잘하는 말중에 ‘나나 잘하자’ 가 있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이영애분이 “너나 잘하세요” 대사가 유행을 하기도 했다. 요즘은 ‘묻지 않는 말에 끼어들지 말자, 자리에 없는 사람 말하지 말자, 저의 갖고 말하지 말자’ 고 새삼 다시 수시로 다짐한다.    

  

기운이 없을 때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하지만 A4 한 장을 쓰기도 전에 감사한 마음이 들어온다. 내가 살아온 날들고 남편이 살아온 날들도 그 당시에는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몰라서 잘못하고 사랑이 부족해서 상처를 주었을 뿐이다. 부부가 측은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하면 철이 드는 거라는 말이 있다. 10년 전쯤 어느날 남편이 가엽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자기나 나나 한 살 차이라서 같이 결혼해놓고 왜 남자라는 이유로 가장의 무게를 짊어졌을까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오전 예배에서 한참을 울었다.      


지혜롭다고 해도 나만 잘해서 30년을 함께 살 수 있을까? 서로 애쓰고 노력했기에 관계가 유지되었다. 몰라서 상처주고 싸울 수도 있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대화와 시간이 필요하다.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면 된다. ‘웃는 얼굴 행복한 우리집’ 우리집 가훈이다. 나의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이 아파서 나는 우리 두 아이가 볼 때 싸우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썼다. 남편은 ‘가난만은 물려주지 않는다’를 가훈으로 하자고 할만큼 돈이 가장 중요했다.      

3월부터 내가 아프다고 남편은 세상이 무너지는 얼굴이다. 어느날 자기가 힘을 내야 나도 힘을 낼 거 같아서 울지않고 씩씩해 질거라고 말했다. 가끔 나는 내가 안쓰러웠다. 그런데 가끔 나의 남편이 안쓰럽다. 과거를 돌릴 수 없으니 오늘 사랑한다고 말하고 더 자주 손을 잡고 늙어가는 얼굴을 만져야겠다. 


오늘도 잘했어요

오랫동안 잘할거에요

오늘은 선물입니다

오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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