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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잘 Jun 02. 2024

53. 수박

참외를 보면 우리엄마 생각이 난다

수박이 제철이다. 우리 아들은 과일 중에서 수박이 제일 좋다고 한다. 아들은 물 많은 과일이 좋다고 한다. 딸아이는 망고 멜론 체리를 좋아한다. 내 남편은 포도를 제일 좋아한다. 나는 사과가 좋다. 귤을 제일 좋아했었는데, 6년 전 시어머니 간병할 때 아침 마다 사과 반쪽을 챙겨드렸던 습관이 되어 사과가 제일 좋다.   

   

우리 집 냉장고에는 일 년 내내 사과가 있지만 저장 사과 맛이 떨어질 늦봄쯤엔 사과가 없다. 다른 음식도 마찬가지지만 과일 맛없는 건 정말 먹기 싫다. 작은 과일들은 몇 개만 먹어보면 알 수 있지만, 수박처럼 큰 과일은 쉽게 사지 않게 된다. 수박은 통통 두드려 봐도 나는 속을 모른다. 남편이 유튜브를 보고 수박 줄이 선명하고 밑꽁지가 작은 게 맛있는 수박이라고 했다. 수박을 잘라 랩을 씌워 보관하면 병균이 생기기 쉽다고해서, 메로나처럼 썰어서 커다란 통에 담아두고 먹는다. 어쨋든 수박은 냉장고에 부피를 많이 차지해서 살까말까 열 번은 생각하게 된다.    

  

나는 국민학교 4학년 때까지 좁은 마당이 있는 집에 살았다. 마당에는 펌프가 있었다. 집 밖 골목길에는 공동수도가 있었다. 내가 살던 집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넓은 주인집이 있었고 왼쪽으로 돌아서면 똑같은 크기의 방이 세 개 있었다. 맨 왼쪽 끝에 변소가 있었고 그 앞으로 여덟 칸 정도의 계단이 있고 그 위에는 장독대가 있었다. 장독대에 올라가면 기차 길이 보였다. 기차가 지나갈 때 소리를 지르며 손을 흔들면 기차 안에서 손을 흔드는 사람들을 보고 더 신나게 손을 흔들었던 기억이 있다.      


마당 안에는 세 개의 방이 있었고 세 집이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우리는 가운데 방에 살았다. 작은 방 하나와 부엌이 있었다. 마당 안에는 수돗가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펌프가 있었다. 물이 나오지 않을 때는 주인집 포함해서 네 집에서 마중물을 부어 물을 끌어올리곤 했다. 그리고 펌프 아래는 붉은색 커다란 고무다라가 있었다. 언제나 물 위에 주황색 프라스틱 바가지가 둥실둥실 떠 있었다. 


여름날엔 넓은 다라에 커다란 수박이 떠 있을 때면 너무 설렜다. 수박은 여럿이 나누어 먹기 위해 화채로 만들었다. 얼음덩이에 바늘을 대고 칼 등으로 때리면 신기하게 얼음은 작은 조각으로 깨졌다. 수박을 숟가락으로 뚝 뚝 떠서 설탕을 술술 뿌리고 얼음조각을 띠우면 얼마나 달콤하고 맛있는지 고개를 제키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쪽쪽 빨아먹곤 했다.    


수박이 끝물이 되기 전에 맛있는 수박 고르기에 도전해봐야겠다. 매번 과일코너 직원에게 골라달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내가 직접 골라봐야겠다. 초록 줄이 선명하고 껍질에 분이 하얗게 묻어있는 걸로 골라서 수박 밑 둥 배꼽이 제일 작은 걸로 선택해야겠다. 만약에 기대한 것보다 못 미치는 맛이라면 수박화채도 해먹고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수박주스를 만들어 오잘가족데이 음료로 해야겠다. 아들과 나는 수박씨를 톡톡 뱉어내고 먹는다.

 

나는 요즘 참외 속을 파내고 꼭꼭 씹어먹는 걸 좋아한다. 남편은 달콘한 참외 속을 왜 파내고 먹냐고 묻지만, “그냥, 그게 더 맛있어”라고 말한다. 나는 참외를 보면 우리엄마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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