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아카시아꽃 피는 거 보니 모내기 철 인가보다

며느리는 모르는 암묵지

by 오잘줌마

며느리도 모르는 맛의 비밀이 하얀가루(미원)이고, 아빠가 어디가서 만든 음식의 맛은 라면스프였다는 우스개 말이 있다.

나는 요즘 요리할 때 한톨육수랑 참치액 한숟가락의 비법을 사용한다. 이제는 쿠팡 컬리 등 온라인쇼핑몰을 활용하는 주부는 다 아는 형식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정읍으로 시집가서 상추가 여름에 넘치게 나온다는 걸 모르고 여름휴가 때 마트에서 상추를 사갔다. 겨울에는 하우스에 상추가 있을 줄 알고 고기만 덜렁 사서 갔다. 지금 생각하면 '얘가 생각이란 게 있는거야 없는거야' 할 만큼 멍청한 일이다. 성격 급하신 우리 엄니가 이런 나를 직접 야단치신 적은 없었다.


첫 아이 임신했을 때 골목 위 아주머니네서 피자두를 한바가지 얻어오셔서 먹으라고 주셨다. 내가 한 개만 먹고 그만 먹자 "넌 신 걸 안좋아하나부다" 한마디 하셨다.


우리 시어머니 생신인 음력 9월에는 대하 새우가 제철이다. 서산 큰형님이 엄니가 좋아하시는 꽃게랑 소라장을 가져오시곤 했다.


숙지산을 걷는데 향기가 난다.


'흐읍~'



아카시아꽃 향기다. 아카시아꽃이 필 무렵 모내기를 한다고 한다. 우리 큰언니가 스물 네살에 시집가서 아무것도 모를 때 시아버지께서 지나치듯 말씀하셨다고 한다.

"아카시아꽃 필 무렵에 모내기 한다"


큰언니는 아카시아꽃이 피기 시작하면 ‘곧 모내기를 하겠구나’ 생각했단다.



"꽃 핀다 여름이네"


딸아이가 회사에서 꽃 피는 여름이라고 했더니 동료들이 무슨 말이냐고 했단다.

딸아이는 배롱나무 꽃을 신기해했다. 꽃이 백일동안 핀다고 백일홍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더운 여름에 피기 시작해서 한여름을 견딘다고 해서 아버지 나무라 부르기도 한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푹푹 찌는 한여름에도 아버지들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묵묵히 일한다고 붙여진 이름이기도 한다. 숲해설가 풀낭선생이 말해줬다.


"배롱나무꽃 피는 거 보니 여름이네" 라고 말하는 게 적합하다고 딸아이에게 말해줬다.

‘백합 피는 거 보니 곧 장마오겠네.’


페친 누군가 딸이랑 주고받은 대화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았나보다. 백합이 피면 장마가 시작되는가보다.

나는 산수유꽃이 활짝 핀 4월에 결혼을 했다. 4월에는 주꾸미가 알을 가득 품고 시장에 나온다.


'산수유꽃 피는 거 보니 주꾸미철 인가보다'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암묵지가 왠지 다정하다.


"이팝나무꽃이 벌써 폈네? 여름이네"


이팝 나무 꽃이 피면 여름이라고 남편이 말했다. 가로수 이팝나무 꽃이 하얗게 피었다. 올해는 얼마나 더울라나. 지난 해 더워서 밤새 에어컨을 켰던 날이 생각나 등짝이 더워지려 한다.


5월 어버이주간에는 고추 모종을 옮겨심는다. 우리도 십몇 년을 5월 초 연휴에 고추를 심으러 시댁에 갔었다. 모내기도 이맘 때 한다.


5월 말이다. 누렇게 시들어가는 아카시아꽃 향이 은은하다. 송화가루가 노르스름하게 길을 만들었다. 이맘 때 거위벌레가 요람을 짓는다. 밟지 않도록 조심한다. 북세일즈할 때 거위벌레 요람 몇 개를 주워서 설명하면서 자연관찰 셋트를 판매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짝꿍 순화는 노래를 잘 부르고 예쁘장했다. 아카시아 꽃 향기를 맡으면 나는 어느 아침 조회시간에 앞으로 나와서 과수원길을 불렀던 그 애가 생각난다. 그 아이는 합창반이었다. 나는 합창반 예심에서 떨어졌다. 주황색 빵떡 모자 셋트인 합창복은 나에게 신포도였다. 그때 우리집은 나에게 구두까지 사주기에는 많이 가난했다.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스피커에서 퇴근을 알리는 노래가 들려온다. 같이 모여 수다 떨던 소영이 엄마가 서둘러 집으로 들어가면서 한마디 한다. “저기 석호 아빠 오시네요솔숲 오솔길에서 남편이 웃으며 퇴근한다. 애기 엄마들을 보고 가볍게 목례를 한다.


남편이 번쩍 아이를 안고 3층 집으로 들어간다. 식사 준비를 다 해두었기에 상을 꺼내 밥상을 차린다. 밥을 먹고 갈색 컵에 믹스커피를 한잔씩 한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남편의 권유에 따라 커피를 타서 5층 옥상으로 올라가서 마시기도 하고 1층 놀이터에 앉아서 커피 타임을 갖기도 했다.


1996년 아카시아 꽃이 질 즈음 이사를 했다. 마른 꽃들은 땅바닥에 하얗게 모여 있었고 나무에 남아있는 꽃들은 향기를 마구 뿌렸다. 큰 아이가 돌 반쯤 되었을 때 남편 근무지 관사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화물차 한 대에 실을 만큼 짐은 간소했다. 동료들이 이사를 도와주었다. 3층까지 장롱을 들고 계단을 올라갔다.


이삿짐을 다 내려놓고 자장면을 시켜먹었다. 남편 동료분이 이사 오니 어떠냐고 물었다. “너무 낭만적이에요. 남편 잘 만나서 이렇게 좋은 곳에서 살게 되다니 기뻐요.” 하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몇 년 후 남편이 말했다. “관사에 이사와서 낭만적이라고 기뻐할 때 ! 이 여자 대책없구나생각했다고 말이다.


나는 언제나 대책은 없었지만 대책없이 잘살고 있다. 어딜가나 향기로운 5월이다.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하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랄랄라 랄랄랄라 랄랄랄라 랄랄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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