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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미 Aug 13. 2020

삶이 '코로나'라는 변화구를 던질 때

 

코로나라는 뜬금없는 변수가 올 해를 몽땅 갉아먹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고 있던 작년의 나에게 전보를 칠 수 있다면 아마 이와 같이 말하지 않을까 싶다. '발리 여행은 미루지 말고 다녀와. 이왕이면 2주 동안. 배우고 싶어 했던 킥복싱은 지금 당장 등록하고, 귀찮다고 미뤘던 친구들과의 뱅쇼 마시기 모임도 실행에 옮길 것.' 하지만 공식적인 20대의 마지막 해는 유례없는 전염병의 확산으로 인해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갔고 나는 작은 내 방에서 홀로 와인 한 잔을 마시고 있을 뿐이다.



지난 7개월이 섬뜩할 정도로 빨리 지나가 버린 것은 기억할만한 사건이 도통 없었기 때문이다. 라일레이에서 본 석양, 첫 월급을 받았던 날들은 단 하루지만 긴 여운을 남겼고 난 가끔 그 하루를 다시 살곤 한다. 하지만 딱히 특별할 것이 없었던 날들은, 일 년이, 육 개월이, 한 달이 함께 뭉개지고 짜부되어 그저 '보통의 날'로 퉁쳐져 버린다. 특징이 없는 날들의 연속은 마치 삶을 잃는 것과도 같은 느낌이다. 의식이 몽롱한 상태로 삶을 걷는 것 같은 기분.  



삶을 훔쳐버린 코로나에 분노해야 하지만 마냥 그럴 수만은 없다. 세상에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는 법이니까. 아니, 그렇게라도 믿어야만 살 수 있으니까. 어쨌든 2019년의 나는 누군가가 2020년에 전 세계를 휩쓸 전염병이 올 테니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미루지 말라고 말해줬어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종말론 괴담이냐고 콧방귀를 뀌었겠지. 나는 이십 대의 마지막을 찬란하게 보낼 것이라고 생각했고, 빳빳한 세뱃돈을 받은 것처럼 싱싱한 2020년의 365일이 희망처럼 빛나 보였다. 고작 방에 갇혀 있는 것 가지고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갑작스럽게 생을 달리한 사람들도, 인생이 던진 예기치 못한 변화구에 맞은 사람들의 심정도 이와 같았을 까. 인생은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무탈하게 지속될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었고 감히 시간은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코로나가 준 깨달음은 삶은 생각보다 연약하고 깨지기 쉬우며, 오늘 미룬 발리 여행을 다음 해에 못 가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물쭈물하다가 일 년을 혹은 삶을 통째로 날릴 수도 있다는 거다. 그러니 좀 더 제멋대로 살아도 괜찮았을 거라는 걸. 어차피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는 법이 전혀 없고, 삶의 모퉁이를 돌면 무엇을 맞닥 드릴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이 코로나가 끝나면 좀 더 엉망진창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지만.



Elly Fairytale 님의 사진, 출처: Pexels



두 번째 깨달음은 지극히 평범한 것들에 대한 재발견이었다. 마스크를 끼지 않고 한강의 여름밤 공기를 마시는 것, 임신한 친구를 만나 축복을 건네는 것, 야외 테라스에서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했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 감사함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실로 우리는 제공되는 것들을 당연시하다가 삶이 그것들을 앗아갈 때서야 후회하는 경험을 종종 하지 않던가. 코로나는 내가 당연시하던 것들을 다시금 곱씹으며 그것이 내 손에 있을 때 온전히 누려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상시 시켰다. 잠시만이라도 나의 First World Problem을 잊고 내가 받은 축복들을 세어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 것, 수박 한 조각, 장마 기간에도 잘 버텨내 준 아글라오네마 화분 같은 것들을 생각하기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제까지고 임시의 삶을 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가 끝날 때까지 '버티는'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 왜냐하면 이 시간들도 다시는 오지 않을 우리의 인생이니까. 하지만 생각해보면 코로나 이 전에도 나는 임시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만 해결된다면 그때부터는 나 자신을 정말 잘 돌보겠어. 내 명의의 집을 사면 그제야 내가 원하는 물건들로 방을 채우겠어. 이 시험만 끝나면, 이 프로젝트만 끝나면, 이 관계만 회복되면. 스스로 진짜 삶을 살기 위한 무수한 조건들을 만들어 냈고 그 조건을 달성할 때까지 나는 삶이란 길목 위에서 텐트를 치고 자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나 보통의 나날도 전부 내 인생이고 이를 의식 없이 흘려보내는 것은 삶에 대한 직무유기였다.



그래서 코로나가 점령한 시간들을 즐기기로 했다. 버텨야 하는 시간이라고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치지 않기로 했다. 크로와상 생지를 사다가 굽거나 토마토 무침을 해 먹고, 소식이 끊겼던 옛 친구들과 메시지를 나누고, 옷장을 정리하고, 제로 웨이스트에 관심을 가지고, 엄마를 만나며 되도록 많은 즐거움들로 시간을 채웠다. 무엇보다 잊고 있었던 독서의 즐거움을 재발견했다. 시원한 차를 마시며 선풍기 앞에서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문장들을 하나씩 수집하는 그 재미를. 이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평생을 살지 못하는데 읽어야 할 책은 이토록 많으니.




Photo: Jess Vide 님의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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