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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미 Nov 11. 2019

스무 살, 그 해 여름을 지나고 있을 나에게

어쩌면 내 인생에 참견할 권리가 있는 유일한 사람은 미래의 나뿐 일 것이다. 내가 지나친 그리고 지나갈 계절과 공기를 모조리 알고 있을 오직 단 한 사람. 미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우연히 자신의 과거 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문득 먼지 쌓인 다이어리에서 툭, 하고 떨어진 사진 속 과거의 나와 마주했을 때. 당신은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하다.


얼마 전 스무 살의 내 사진을 보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묘하다는 표현 외에 정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트렌드가 지난 화장법이 부끄럽기도 하고, 생기로 가득 찬 눈동자가 사랑스럽기도 하고, 곧 닥칠 고난에 대해 꿈에도 모른 채 천진난만한 얼굴에 마음이 아리기도 하다.


그녀는 분명 내가 지나온 길목인데, 어째서인지 타인처럼 느껴진다.

이십 대 초반의 내가 쓴 일기를 읽어 보니 당시의 감정이 그대로 살아난다. 첫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어쩔 줄 몰라하던 나. 인턴쉽 면접에서 낙방하고 침울해하던 나. 지금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가 스쳐 지나가며 던진 말에 고민하던 나. 잠깐, 내가 그 사람을 좋아했었다고? 말도 안 돼.



당신도 그런 기분이 든 적 있는지. 과거의 내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지 좀처럼 이해할 수 없고, 과거의 나도 나의 일부인데 어쩐지 타인처럼 느껴진 적이 있는지. 일기 속 스무 살의 그 여자는 생각이 사뭇 많고,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고 지나가면 아무것도 아닐 일들로 걱정이 많다.



과거의 나에게 한 마디 해줄 수 있다면, 그저 다 괜찮을 거라고 말해 주고 싶다. 신께서는 너를 위한 계획을 준비해두었고, 모든 건 제자리로 돌아갈 거라고.


그녀에게 이 말을 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 괜찮아질 거라고. 정말이라고. 때때로 신은 선물을 불행이라는 포장지로 둘러싸 서프라이즈 파티를 하는 걸 좋아한다고. 네가 지금 하는 고민 중 80%는 곧 효력이 없어질 흑마법이고, 설사 너를 죽이고 말 것이라고 생각한 일들이 현실에 일어나도 어떻게든 살아가게 돼있다고. 너의 걱정과 달리 나는 밥벌이를 아주 잘하고 있으며 미래는 제법 괜찮다고. 원한다면 치즈 케이크를 두 조각씩 시켜먹을 수도 있다고.



너는 불현듯 캐나다에서 살게 될 거고 그곳에서 너에게 말을 건넨 그 사람에게 꼭 웃어주길. 너는 당분간 행복하겠지만 이별은 너를 산산조각 낼 거야. 하지만 괜찮아. 너는 많이 성장할 거고, 산산조각이 나면 정호승 시인의 시처럼 산산조각이 난대로 살아가면 되지. 무엇보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 것. '안정감'이라는 가치는 무척 과대평가되어 있다는 걸. 설사 망해서 바닥으로 떨어진다고 해도 너는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라 괜찮을 거야. 파산하면 뭐 어때. 당분간 아보카도 토스트 대신 햇반과 김치만 먹고 살 면 되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무조건 시도 해보길. 너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듣기보다 네 내면의 목소리에 더 의지하길. 미련이 없을 정도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되, 계절의 변화와 따뜻한 라떼의 거품과 내 옆사람의 미소를 온전하게 누리기를.



할 수 있다면 그녀를 꼭 안아주고 싶다. 그래. 고민과 걱정으로 수많은 밤을 지새운 네가 있기에 지금의 단단한 내가 있는 거지. 혹여 상처가 아물지 않으면 어쩌나 새벽 내내 깨어있던 네가 있기에. 하지만 아물지 않는 상처는 없다는 것을, 그로 인해 너는 더 강한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것을. 그래서일까. 세상은 젊음의 값을 비싸게 치지만 나는 10년 후, 그리고 20년 후의 내가 더 기대된다. 시간과 경험은 필연적으로 나를 더 단단하게 단련시킬 테니까. 아마 미래의 나도 비슷한 조언을 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분명 상상도 못 할 일들이 인생에 일어나겠지만 다 괜찮을 거라고. 걱정으로 너무 많은 밤을 지새우지 말길. 그보다 지금 너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즐기길 바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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