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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미 Nov 11. 2019

그들은 자꾸 내 인생에 참견하려 든다

걱정은 돈으로 주세요

어쩜 그리 하나같이 오지랖은 걱정이란 그럴듯한 포장지에 둘러싸여 오는지. 나를 염려해서 하는 말이라며 늘어놓는 것 중 진심의 농도를 계산하면 기연코 한자릿수가 나오고 말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나는 호주에서 살기로 결심했다. 지난 겨울을 보낸 시드니가 그리웠다. 달링 하버를 바라보며 먹은 딸기가 잔뜩 올라간 팬케이크와, 플랫 화이트 한잔을 손에 들고 걸었던 본다이 비치가. 무엇보다 삼촌이 시드니에 살고 있었기에 가지 않을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어느 날, 두런두런 졸업 후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선배'가 내 계획에 찬물을 뿌렸다.



"근데 호주에 다녀오면 (문란하다는 인식 때문에) 시집가기 힘들걸~. 그리고 차라리 취업을 빨리 하는게 낫지 않나? 요즘 기업들은 여자 신입 26살도 많다고 생각하거든. 다 너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지금이었다면 당신의 말이 무슨 의도인지 대충 안다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답해줬겠지만, 어렸던 나는 여간 신경이 쓰였나 보다. 결국 나는 스스로와의 찌질한 타협 끝에 그나마 인식이 좋다는(?) 캐나다로 목적지를 변경했다. 변명을 덧붙이자면, 온전히 그 선배의 말 때문은 아니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쉽게 나오는 편이라고 하니 직장을 다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안의 방랑자 기질이 솟구칠 때를 대비해 아껴두자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특히 여자는) 나이가 들면 취업하기 어렵다는 말이 맴돌았다.



호기롭게 캐나다행 편도 티켓을 구매했지만, 불안함이 몽글몽글 뱃속에서 올라오는 날이면 새벽잠에서 깨기도 했다. 내가 정말 무모한 짓을 하는 건가? 남들처럼 얌전히 취업 준비나 할 것 이지 내 인생을 걸고 도박을 하려는 건가?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사람의 마음 한 구석에는 가늠할 수 없는 앞 날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때 누군가가 던진 사소한 한마디가 귓 가를 떠나지 않는 후크송처럼 박히게 된다. 나는 생각했다. 그래. 캐나다에 딱 6개월만 있다가 돌아와서 취직하는 거야.



그 육 개월은 일 년 반이 되었고, 나는 귀국해서 괜찮은 직장에 잘만 취직했다. 덧붙이자면, 호주에 여자 혼자 살았다고 이상한 편견을 가지는 사람이야 말로 업데이트가 덜 된 거니까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을 걸러낼 수 있어서 이쪽에서는 땡큐고, 기업에서 26살 신입은 어린 축에 속한다. 한마디로 그 선배가 말한 문장에서 맞는 말은 단 하나도 없었다!




겁쟁이들은 곁에 있어줄 동료를 필요로 한다. 무료한 자신의 삶이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확신을 위해 옆 사람도 제자리에 머무르길 은근히 소망한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누가 그들에게 남의 인생에 간섭할 자신감을 심어준 건지. 나는 그 선배가 조언이랍시고 그런 말을 늘어놓은 이유를 이제는 잘 안다. 그는 해외생활에 대한 동경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막상 자잘한 문제들, 이를테면 비자나 숙소를 처리하는 게 귀찮았던 것 같고, 이방인으로써 타지에서 살아갈 용기는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내 옷깃을 붙잡으며 경고했던 거다. 남들이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대신 살아내는 걸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들은 장사꾼처럼 남들의 실패담을 내 앞에 좌르륵 펼치며 말한다. 거 봐. 그냥 여기에 가만히 있는 게 신상에 좋아. 안전지대 바깥은 위험하다고. 하지만 그들이 간과하는 것은 우리가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한 행동들이, 결국 내 인생을 내가 바라는 데로 온전히 살아내지 못하는 가장 크리티컬 한 리스크를 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죽음의 근처에 도달 했을때 스스로의 삶을 후회하게 하는 가장 끔찍한 리스크 말이다.


더불어 이런 종류의 참견이 유독 질이 나쁜 것은 본인이 노력할 생각은 없으면서 옆 사람을 붙잡음으로써 남도 나와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려는 비겁한 태도다.



'그 나이면 이제 결혼하고 자리를 잡아야지 무슨 유학이야.'

'그 시험 경쟁률이 몇천대 일이라는데. 쉽지 않을걸~?'

'그런 옷은 젊은 사람이나 입는 거지.'



앞으로 당신의 꿈이나 선택에 걱정이란 가면을 쓰고 찬물을 뿌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저 쓱 한번 웃어주고 제 갈길을 가면 된다. 첫째, 일단 진심으로 당신을 위해서 하는 조언이 아닐뿐더러. 둘째, 만에 하나 당신이 그 길을 가다가 넘어지고 뒤로 구르는 한이 있더라도 어차피 겁이 나 발을 뗄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보다는 앞서 나가기 마련이니까.



늦은 시간,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요즘 독감이 유행인데 지난번에 맞으라는 주사는 맞았는지, 치아 스케일링은 했는지 또 확인하신다. 나는 '괜찮아. 엄마 딸 손 잘 씻어서 감기 안 걸려.'라고 장난스럽게 말하고 엄마는 '그럼 그렇지' 하며 한숨을 쉰다. 우리 엄마 말도 잘 안 듣는 딸이면서 뭘 그리 남의 말에 귀 기울이려고 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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