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지미 Nov 11. 2019

그 연봉이면 루이뷔통 하나는 있어야지

나이가 먹으면 중요한 자리에 들고 갈 가방 하나쯤은 '투자'로 장만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친절히 앞자리가 4로 시작하는 연봉을 받고 있으니 딱 루이뷔통 정도가 부담스럽지 않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추천까지 해줬다. 그러니까 명품도 다 같은 명품이 아니고 등급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나마 가격이 합리적(?)이고 대중화된 루이비통과 프라다, 그 위에 샤넬 그 위에 에르메스 순으로.



갑자기 조급해졌다. 곧 있을 친구 결혼식에 들고 갈 가방을 나도 빨리 마련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노동력이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증명하고, 밥벌이를 하고 남은 돈으로 가방에 몇 백만 원 정도는 여유 있게 투자할 수 있는 어른임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그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좋은 가방 하나는 꼭 있어야 한다는 말에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다. 남들에 뒤쳐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 내가 그래도 이 정도 돈은 벌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허영심.




오늘은 기필코 루이뷔통 한 개를 사기로 마음먹고 백화점 매장을 찾았다. 백화점 1층의 가장 목 좋은 곳에 자리 잡은 루이뷔통 매장은 비현실적으로 반짝거렸고, 그 앞에는 가방을 사기 위한 긴 줄이 있었다. 무려 '가방님'을 영접하기 위해서 인간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인내심을 보여야 했다. 얼마간 기다리니 친절한 직원이 매장 안으로 나를 안내했다. 쇼케이스 안에서 조명을 받으며 빛나는 가방들은 무척 고고해 보였고 혹여 흠집이 날까 직원들은 장갑을 끼고 아기 다루듯 가방을 대했다. 어째서 인지 이 세상에서는 물건이 사람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는 듯 보였다.


가방은 다 예뻤지만 그렇다고 몇 백을 흔쾌히 투자해도 괜찮을 정도로 내 마음을 끄는 것은 없었다. 그래도 대충 적당히 다음번 결혼식에 멜 가방을 사자. 한 참 어슬렁거리며 구경하니 그나마 마음에 드는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부드러운 토피색 가죽에 견고한 핸들이 달린 가방이었다.



"이건 얼마죠?"


"네. 본 제품은 이태리산 램스킨으로 만든... 가방이고 가격은 오백만 원입니다. 이 라인에서 가장 고가의 상품이죠."



적당히 삼백만 원 선의 가방을 사려고 했는데. 이는 내 예산을 훌쩍 넘는 가격이었다. 관심이 없는 척 다른 가방을 가리키며 "얘는 요?"하고 말을 돌렸다. 나는 감흥 없이 가방을 만지작 거리며 고민했다. 이걸 삼백만 원이나 주고 사야 하나? 이 돈이면 인도에 가서 그동안 따고 싶었던 요가 자격증을 따고,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기를 해도 남을 것이고 치킨은 이백 마리 정도 먹을 수 있을 텐데 하며 머릿속 계산기를 두들겼다. 결국 나는 친절한 직원에게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매장 밖을 나왔다.


그들은 명품을 사는 게 자기 자신에 대한 '투자'라고 말한다. 투자라 함은 RoI가 있어야 하는데, 그럼 몇 백을 주고 명품을 사서 내가 얻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이 이야기를 하니 친구가 손사래를 치며 명품 가방은 자기 자신에 대한 투자라고 했다. 무엇보다 나중에 중고로 팔아도 값이 꽤 된다고. 오히려 한정 샤넬백 같은 것을 사서 수년간 묵혔다가 프리미엄을 붙여파는 일명 '샤테크'도 있다고. 무엇보다 명품은 질이 좋고 튼튼하다고. 그 말을 믿고 얼마 후 명품 지갑을 샀지만 1주일 만에 스크래치가 나고 말았다. 잘가라 내 오십만원아. 그날 뼈저리게 깨달았다. 명품의 가격과 내구성은 절대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죽은 사용하는 순간부터 닳기 시작하는 소모품이며 투자라는 것은 그저 내 마음 편하자는 합리화였다는 것을.



그래서 동창 모임에 잠깐 들고 가기 위한 명품 가방을 사는 건 잠정 보류하기로 했다. 굳이 좋은 가방에 내 자아를 위탁하고 싶지도 않고 누군가 나를 은근히 무시할까 봐 두려운 마음에 겁쟁이처럼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에 내 노동력의 대가를 헌납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솔직히 내가 명품을 턱턱 살만한 재력이 없는 것은 사실 아닌가? 3으로 시작하는 월급은 혼자 먹고살기에 나름 넉넉하지만 아직 나는 내 명의의 집도 사야 하고, 언제 대감집 노예의 자리에서 쫓겨날지도 모르니 4차 산업혁명에 대비도 해야 한다. 나중에 내가 성공해서 루이뷔통을 중저가 가방처럼 별무리 없이 살 수 있게 되면 모를까.    




30대가 다 되어 가는데 명품 가방이 없으면 50점짜리 인생인 걸까?


세상은 공포 소비를 조장하는 듯하다. 30대가 다 되어 가는데 명품 하나 없는 것은 루저야. 동창 모임에 명품 가방을 들고 가지 않으면 다들 네가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할 거야. 그런데. 그들의 의견이 그렇게 중요한가? 나라는 사람이 오백만 원짜리 가방을 들지 않았다고 내 인생을 일일이 재단해 가치를 매길 사람들이라면 내 인생에서 그다지 중요한 사람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하면 사실 다 알고 있지 않나. 단순히 비싼 가방 하나가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인격과 수입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걸. 비싼 가방은 완벽한 포장이 돼주지 못한다. 그들은 다음 단계로 우리의 구두를 내려다볼 것이고, 이다음엔 우리의 직장과 사는 아파트에 대해 물을 것이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서로에게 관심이 많고 서로를 스캔한다. 아마 내가 루이뷔통 중에서도 '급'이 높은 오백만 원짜리 루이비통을 팔에 메고 나타났다면 그들은 내심 나를 부러워했을 수도 있다. 딱 5분만. 그리고는 집에 가서 아마 발 씻고 핸드폰 좀 하다가 내가 오백만 원짜리 루이비통을 들고 나타났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잠에 들겠지. 그렇다면 단지 그 5분의 스포트라이트를 위해 몇백만 원을 투자하는 게 진정 RoI가 나오는 투자인지 계산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내가 합리적인 소비만 하는 인간인 것도 아니다.  이렇듯 명품 지갑 하나 사는데 벌벌 떨면서 대학시절에는 과외로 번 천만 원을 배낭여행에 모조리 쏟아부은 전적이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의 나에게서는 루이뷔통 매장에서 가방을 만지작 거리며 고민하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거다. 나는 여행에 전재산을 탕진해놓고는 "와 진짜 멋진 경험이었다. 이 추억으로 앞으로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 경험들은 나 자신을 이루었고 지금도 일말의 후회는 없다. 말하자면 나는 '경험 소비'를 우선시하는 사람인 것이다.



어디 명품 가방뿐이겠나. 자본주의는 딱히 우리에게 필요도 없는 물건을 꼭 필요한 것으로 둔갑하게 하는 특출 난 재주가 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게 얼마나 무서운 굴레인지 알 수 있다. 필요 없는 물건을 사기 위해 내 시간과 노동력을 바치고 이 악순환은 결국에 우리는 인생을 통째로 낭비하게 한다. 명품 가방이 당신의 심장을 뛰게 하는 무엇이라면,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면 그 길로 가면 된다. 다만, 괜찮은 어른처럼 보이기 위해 명품 가방을 사야 하는지 고민하는 당신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볼만 하다. 이 욕망이 진짜 내 마음의 소리인지 아니면 바깥의 소음인지.











작가의 이전글 그들은 자꾸 나에게 웃으라고 강요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