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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미 Nov 11. 2019

그들은 애를 낳지 않으면 말년이 외로울 거라 했다

퍼블릭 애너미

엄마는 아기를 흙먼지 날리는 공사장에 데려갔다. 그건 최후의 수단이었다. 몇 시간씩 우는 아기를 달래보고 화도 내봤지만 도무지 울음을 그칠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대체 뭐가 문제니 응? 아기는 여전히 빽빽 울어댔지만 공사장의 소음이 이를 상쇄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공사장의 한가운데서 오랜만에 평화를 느꼈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가 나에게 준 깨달음은 '나는 저런 엄마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 세계 평화를 위해 아이를 낳지 말아야겠군'이었다. 히피스러운 성향의 에바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행을 하던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그런 그녀가 계획에 없었던 임신으로 아들을 출산하게 되고 집에만 틀어 박히게 된다. 그녀는 억울했다. 그래서 엄마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을 아이에게 하고 만다. "나는 네가 태어나기 전에 더 행복했어."라고.



어느 날, 나는 내 귀가 의심되는 대화를 하게 되었다.


"지미씨는 만나는 사람은 있어? 결혼은 언제  거야?"


"결혼 생각은 아직 딱히 없어요."


"너무 늦어지면 애 낳기 힘들 텐데. 확실히 젊을 때 애를 낳을수록 자기한테 편해"


"애는 안 낳으려 구요."


"야~ 정부가 싫어하겠다. 요즘 출산율이 얼마나 낮은데."


출산율 높이는데 일조하기 위해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희생해야 한다니. 이건 언제적 철지난 전체주의 사상인지. 오랜 고민 끝에 나는 한 명의 인간을 길러내기에 너무나 나약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스스로 결론을 내린 것인데 나는 어느새 애국심 없는 공공의 적이 되어 있었다.  



아이가 없는 말년의 삶은 외로울 것이고, 너는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성취를 해낼 기회를 영영 잃고 말 거야.


그들은 이 외에도 다양한 레퍼토리로 나를 설득하려 들었다. 아이를 기르는 건 누구나 처음이며 다들 과정 속에서 배워가는 것이니 무서워할 필요 없다고. 아이들이 인생에서 주는 기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며, 내가 아이를 가지는 행복을 꼭 누렸으면 좋겠다고. 심지어 협박도 했다. 아이를 낳지 않으면 말년에 외로울 거라고. 내가 아는 누군가는 오십 대에 접어들고 아이가 없는 것을 후회하며 살 고 있다고.



나는 이기적이고 내 한 몸을 겨우 부지하는 나약한 인간이다. 식사는 일 인분 밖에 만들지 못한다. 변덕스럽고 까다로우며 가끔은 나 자신도 스스로를 종잡을 수 없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내가 원할 때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자유다. 나는 최소한 3개의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고 내 전 남자 친구는 내가 고양이 같다고 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추고 자기가 내킬 때 가끔 찾아오는. 나는 내 아이를 불행하게 만들 소지가 다분한 여자다. 어쩌면 아이의 아빠까지 더 해 삼인분의 삶을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트릴지도 모른다. 역설적으로, 나는 내가 낳을 아이가 행복하길 바라기 때문에 낳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오늘도 아이를 유치원에 맡기고 출근을 한 엄마를 본다. 나는 도무지 그녀처럼 해낼 수 없음을 오늘도 확인한다. 그녀들은 경이롭다. 생명을 창조한 신적인 존재들이다. 엄마는 위대하다고 하지만 여전히 그녀들의 역할은 평가절하 되어있다. 한 인간을 길러내면서 자신을 지키는 것은 그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는 자신이 없다. 누군가는 말한다.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아냐고. 엄마가 되면 다 강해진다고. 하지만 그저 내가 엄마로서 자질이 있을지 없을지 알기 위해 아이를 한번 낳아보기로 결정하는 것은 너무도 무책임한 것 아닌가? 삶이 걸려있는 문제다. '저 옷이 나에게 맞을지 안 맞을지 한 번 입어보고 결정하자'와는 너무나 다른 차원의 이야기란 말이다. 태어난 생명을 되돌릴 수는 없지 않나.



세상에는 엄마가 되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있다. 더불어 출산은 개인의 온전한 선택이며 여성이 사회에 진 빚이 아니다. 나는 말년에 성취감을 누리고 그저 외롭지 않고자 출산하지 않겠다. 나에게는 고단한 내 늘그막의 삶을 기댈 수 있는 아이보다 자기만의 방이 더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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