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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린씌 Apr 10. 2021

바다처럼 빛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

[책 리뷰] 노인과 바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불안


'글을 쓰고 있다.' 주위에 말하고 다닌 지 3년. 언젠가 '나만의 것'을 만들겠다는 작은 결심은, 아직까지 아무런 결실도 맺지 못한 나를 놓아주지 못하고 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멋지다! 어떤 글을 쓰는 거야?"라고 묻던 친구들은 이제 더 이상 나에게 묻지 않고, "지민이는 잘할 거야!"라는 조심스러운 응원만을 전할 뿐이다. 하나둘씩 자기만의 길로 들어서 사회로 나아가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나 홀로 뒤떨어져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아 더욱 나 자신을 옭아맨다. 아침 7시. 오늘도 어김없이 문득문득 떠오르는 나에 대한 비관을 누르기 위해, 스케줄러에 빽빽이 하루 계획을 세운다. 계획대로 잘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이라도 받듯 말이다.


글을 쓰며 살겠다는 나에게, 구체적인 계획일랑 없었다. 그저 나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글'이 너무 좋았고, 꾸준히 나의 마음을 적어내다 보면, 언젠가 나에게도 환한 길이 보일 것이라 막연히 이상만을 그렸다. 하지만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나의 글은, 내 안에서 돌고 돌아, 어디에 내놓기 힘든 글이 되어 결국은 힘을 잃고 만다. 하루에도 수십 번, 이 길이 나의 길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은 채, 글을 썼다. 마음속에 꺼지지 않는 불안을 품은 채, 언젠가를 그리며 글을 썼다.



@사진 출처-알렉산더 페드로프 <노인과 바다> 애니메이션


바다처럼 빛나던 '과정'을 그린 이야기


끊임없는 비관과 조급함에 지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던 나를 다잡아준 것은 바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였다. 굉장히 유명한 이 책의 내용은 비교적 간단하다. 84일째 고기를 잡지 못한 늙은 어부 산티아고가, 85일째가 되던 날, 4일 밤낮 바다에서의 사투 끝에 청새치를 잡는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고기를 뱃전에 묶어 집으로 돌아오던 중, 피 냄새를 맡은 상어 떼와 싸우게 되고, 결국 머리와 뼈만 앙상하게 남은 고기의 잔해만을 갖고 돌아온다.   


노인은 시종일관 보이지 않는 목표물을 눈으로 좇으며 자신의 손아귀에 넣길 묵묵히 기다렸다. 모두가 노인을 향해 '운이 떨어져 더 이상 물고기를 잡지 못한다.'라고 말하지만, 노인 자신만은 본인에게 다가올 '행운'을 꽉 움켜쥔 채 끝까지 낚싯줄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엄청난 크기의 청새치를 손에 넣었지만, 또 다른 시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인은 좌절하지 않고 담담히 자기 앞의 닥친 역경에 맞서 싸웠다. 결국 '머리와 꼬리'만 남은 물고기의 잔해만을 갖고 돌아왔지만, 그에게는 '바다만큼이나 빛났던 순간'들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그의 실패를 비웃는 자는 없었다. 치열한 사투를 끝마치고 온 노인의 원숙함 앞에 나는 왜인지 눈물이 흐른다.

 

@사진 출처-알렉산더 페드로프 <노인과 바다> 애니메이션


인생은 바다와 같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한가운데 힘을 잃은 늙은 어부가 된 것 마냥, 실체 없는 무엇인가에 매달려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끌려가곤 한다. 목표, 노력, 과정 그리고 삶. 보이지 않기에 따르는 무서움이 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는 나에게 하루빨리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라 재촉하고,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해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거대한 바닷속에 속수무책으로 한없이 작아지는 나에게, 노인의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은 나의 방황하는 과정까지도 전부 품어준다.  


꿈같은 이상만을 바라보는 나의 두 눈은 현재 내가 행하고 있는 소중한 과정을 그저 하나의 수단으로 여길뿐이었다. 평가를 위한 삶은, 성과를 내지 않으면 나의 모든 과정을 헛된 노력으로 치부시킨다. 모든 순간 빛나던 나의 방황과, 생각,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한순간 부질없는 낭비 취급을 받게 된다. 그런 나에게 헤밍웨이는 인생이라는 망망대해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끝까지 싸워나가라 응원한다. 인내심을 갖고, 현재의 모습에 집중하고, 바라보라 말한다. 나는 앞으로도 글을 쓸 것이다. 산티아고 노인을 생각하며, 나의 시간이 올 때까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시공간을 초월한 헤밍웨이의 따스한 위로로 말미암아, 모든 순간 최선을 다한다면, 뒤돌아본 나의 모든 과정은, 바다처럼 빛날 것이기에 나는 오늘도 보이지 않는 나만의 길을 걸어간다.



@사진 출처-알렉산더 페드로프 <노인과 바다> 애니메이션


@사진 출처-알렉산더 페드로프 <노인과 바다>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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