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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린씌 Apr 09. 2021

그저, 자기 자신이 되는 것

[고전소설 추천] 버지니아 울프 디 에센셜 | 버지니아 울프


Virginia Woolf 


그동안 고전작품을 읽으며 애써 무시해왔던 것이 있다. 보일 듯 말 듯 존재감 없이 남성의 그림자 속에 살고 있는 ‘여성’의 존재. 소설 속 그녀는 옷치장과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만을 신경 쓰며, 오직 ‘사랑’과 ‘결혼’을 중시하는 인물로 나타난다.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고, 남자에게 구박을 받으며, 천박하게 묘사된 여성들에게, 쓰고, 읽고, 생각하고, 탐구하는 행위란 얼토당토않았다. 깊은 사유와 복잡한 내면, 사회적 지위 등 모든 지적인 영역은 남성들의 것이고, 그 외 세상의 관심사에서 멀리 떨어진 것이 여성들의 차지였다.


여성은 단지 남성의 부속품 정도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 것을 보며, ‘그때 그 시절엔 어쩔 수 없었겠지’, 생각하며 애써 모른 척 넘어갔다. 그렇게 못 본 척 지나쳤던 그녀들의 존재를, 나는 버지니아 울프의 사려 깊은 말들을 통해 처음으로 만날 수 있었다. 울프는 인정받지 못하고 남자의 그림자 속에 가려 익명을 강요받던 여성들을 세상 밖으로 등장시켜, 오랜 세월 그녀들을 가리고 있던 검은 그늘을 걷어 올린다.



@google이미지


A Room Of One’s Own, 1929


‘역사는 여성을 거의 언급하지 않’기에, 울프는 기록에 없는 그녀들의 존재를, 서재에 꽂힌 책들을 통해 긴밀히 추적한다. 여성은 우리에게, 그녀를 판단할 척도가 될 만한 희곡이나 시 한 편 남기지 않았다. 울프는 그런 그녀들의 삶 속으로 제법 가깝게 다가가, ‘여성과 픽션’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성은 어떤 존재인가, 왜 과거에는 셰익스피어와 같이 위대한 여성 작가가 존재할 수 없었는가. 여성은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언제나 가난했고, 남으로부터 침해받지 않을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 없었다. 여자가 펜을 들면, 남성의 비웃음을 샀고, 쓸데없는 어리석음과 주제넘은 결함이라 여겨졌다.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한 명의 주체로서 떳떳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경제적 독립을 위한 충분한 돈과 홀로 조용히 사유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폭넓은 창조력을 가진 작가가 되기 위해선, 한쪽 ‘성’에 매몰되어 편향성을 가지고 쓰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기 자신”이 되어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두 ‘성’의 조화를 추구하여야 한다는 말도 덧붙인다. 여성으로서 정체성의 문제에 눈을 떠, 한평생 여성의 인권과 삶에 대한 글을 쓴 버지니아 울프. 그녀의 용기 있는 외침이 있었기에, 오늘날 여성들도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어, 자신의 권리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Feminism


급속도로 변해가는 세상 속, 여성의 지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책 속의 여성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여성도 한 사람으로 당당히 인정받기 시작했고, 무한한 기회와 자유가 주어졌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도, 우리 사회에 가부장적 사고, 남아선호 사상 등의 남녀차별은 당연시되어왔다. 생생히 기억나는 기억의 파편 하나를 소개해보자면, 어린 시절 제사 때 친척집에 가면 어머니와 큰어머니가 항상 부엌에서 가족들이 남긴 음식으로 식사를 하시던 모습이다. 어린 나는 그저, 어머니와 큰어머니가 부엌이 편하셔서 그런 줄만 알았다. 또, 사랑만 받고 자란 것 같은 우리 어머니가, 항상 오빠들의 뒷전에서 차별을 받으며 자랐다는 것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도처에 남아있는 ‘여자가-‘, ‘여자는-‘과 같은 지루하고 진절머리 나는 단어에 부당함을 느낀 여성들은 소리 내어 ‘남녀평등’을 외쳤다. 울분에 찬 목소리는, 우리 사회에 “여성 인권”이라는 화두를 던졌고, 많은 여성들은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속되어 오던 남녀차별 인식에 조금씩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귀에 거슬릴 정도로 서로의 성을 인식하는 시대가 함께 도래하였다.

 

여성의 인권 신장을 그토록 바랐던 버지니아 울프지만, 그녀는 두 성의 단절과 구분을 경계했다. 대신 남녀가 한 사람으로서 서로에게 협력하는, 마음의 통일성을 주장했다. 현재 우리는 조화를 위한 과도기의 시대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아직은 서로의 말을 듣는 것보다, 자신의 입장을 소리쳐 알려야 하는 시기. 하지만 분리된 목소리의 외침에는 뛰어넘지 못하는 한계가 존재한다. 나는 지금 '구름 위를 걷고 싶다'는 잡히지 않는 꿈을 꾸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세월이 흘러, 더 높은 차원의 평등을 추구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두 성이 대립구조를 취해 남녀를 구분하는 것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같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연결될 수 있는 세상이 오길, 조용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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