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추천] 노르웨이의 숲 | 무라카미 하루키
시간이 흐르면 가슴 아린 쌉쌀한 사랑도, 슬픔도, 이별도, 죽음도, 내 청춘도 언제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추억이 되어 나의 뒤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때의 나의 세계는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게, 나는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로 발을 들인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무언가를 계속 상실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되풀이되는 그 상실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받아들이기도 하고, 슬픔에 짓눌려 잠식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은 또 그렇게 흐르고, 그 모든 순간들로부터 나는 성장한다.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한 곡의 노래 속, 아픈 추억으로 담아 놓은 채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와타나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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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 이후, 남아 있는 자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갓 성인이 된 청춘들이 경험하는 '순수한 사랑'과 '상실의 아픔'을 선명하게 포착한 현대 일본 문학의 대표작이다. 주인공 와타나베를 중심으로 가느다란 철사로 연결된 관계들 속에서, 중요한 것을 끊임없이 잃어버리는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면서도 밀도 있게 그려냈다. 작품 속 인물들은 방황하거나 어딘가 뒤틀려 있다. 인물들의 건조한 분위기 속에서 깊은 고독과 외로움, 공허가 느껴진다. 다소 특이하고 사회성이 떨어져 보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현실에 없을 법한 그들만의 오묘하면서도 매력적인 세계를 만들어 간다. 우정, 사랑, 이별, 삶과 죽음, 자살 등 언제나 우리 곁을 둘러쌓고 있는 삶의 면면을 섬세하게 그려 낸 성장소설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은 역시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듯하다. 내 친구는 그의 작품을 지루해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는 작가의 살아 숨 쉬는 묘사와 밀도 있는 스토리 라인에 매우 극찬을 하며 읽었다. 저번에 읽은 '프랑수아즈 사강'이 인간 심리 묘사의 대가라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세밀한 장면 묘사의 대가가 아닐까. 작가의 치밀한 표현력에 책을 펼쳐 읽는 순간 그가 창조한 세계에 빠져 들어간다. 마치 주인공들과 함께 그 장소에 있는 듯 나의 감각도 함께 살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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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故기즈키- 나오코
와타나베- 故나오코- 레이코
와타나베- 미도리- 故미도리 부
와타나베- 나가사와- 故하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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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는 여러 사람의 죽음이 등장한다. 기즈키의 자살, 나오코 언니의 자살, 나오코의 자살, 미도리 부모님의 죽음, 하즈키의 자살. 정든 이들의 죽음으로부터 와타나베는 하나의 진리를 깨닫는다. '죽음은 대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잠겨 있다.' 죽음은 삶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 그저 떠다니는 먼지처럼 모든 일상에 묻어 있다. 가장 친한 친구였던 기즈키의 자살은 와타나베에게 처음으로 '죽음의 진리'를 깨우쳐 주었고, 사랑했던 나오코의 자살은 그에게 '어떤 진리로도 사랑하는 것을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 없음'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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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말한다. "어떤 진리도, 어떤 성실함도, 어떤 강인함도, 어떤 상냥함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 없다. 우리는 그 슬픔을 다 슬퍼한 다음 거기에서 뭔가를 배우는 것뿐이고, 그렇게 배운 무엇도 또다시 다가올 예기치 못한 슬픔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저 맞닥뜨린 감정에 최선을 다해 슬퍼하고, 남은 자들과 그 아픔을 함께 공유하고 추억하며 끊임없이 마음의 굳은 살을 만들어가는 거다. 그렇게 '상실의 시대'를 견디어 내는 것이다. 상실의 아픔으로부터의 배움이 다음에 다가올 슬픔에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 굳은 살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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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이러니하게도, 절대 잊히지 않을 것 같던 상실의 아픔은, 시간이 흐르며 삶의 가장 작은 조각 속으로 들어간다. 예상치 못한 무언가로 치환되어 조용히 잊히다가, 예상치 못한 때에 불현듯 소환된다. 상실의 시대는 우리의 삶 속에서 영원히 불멸하는 특별한 시간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나가는 작은 삶의 일부로 남을 뿐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죽음 이외에도 어떤 모양새로든 계속해서 '상실'을 경험한다. 되풀이되는 상실의 아픔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일상 속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무언가에 나의 아픔을 고이 담아 놓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가장 큰 아픔을 삶의 작은 일부분에 놓아두고, 또 다른 세계로 발을 내딛는다. 와타나베의 '노르웨이의 숲'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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