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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린씌 Jun 15. 2021

사랑, 그 난해하고 모호한 감정

[고전 추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눈에 띄는 특별한 사건도, 복잡한 인물 관계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한 여자와 두 남자 사이의 사랑에 관한 일련의 감정들을 치밀하고도 견고하게 쌓아 올렸을 뿐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제목 뒤의 말 줄임표가 포인트라는 이 소설은, 미묘하게 변하는 내면의 감정을 세밀하게 포착한 ‘연애 소설’이다. 그 심리 묘사가 얼마나 현실적인지 마치 독자가 각 인물의 마음속에 들어가 방황하는 내적 자아를 직접 마주하는 느낌이다. '기다 아니다' 정의 내리기 어려운 인간의 복잡하고도 난해한 사랑의 감정을 섬세하게 따라가 진솔하게 그려냈다. 특별한 사건 없이, 묘사만으로도 이런 몰입도와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랍기만 하다.


약 60년 전에 발간된, 이 연애소설은 쉬이 믿기지 않을 만큼 세련됐다. '이런 사랑이 가능했었나?' 생각이 들 정도로, 고전소설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요즘 젊은 작가가 쓴 것이라고 해도 충분히 믿을 것 같다. 실내 장식가인 서른아홉 살의 '폴'은 한 번의 이혼을 겪고, 현재는 6년째 '로제'라는 남자와 연애 중이다. 로제는 소위 '책임'에서 자유로운, 무심하고 이기적인 남자로, 다른 여자들과의 관계를 일삼으며 필요할 때만 폴을 찾아가는 나쁜 남자다. 기다림의 연애를 그만두지 못하는 폴 앞에 스물다섯 젊고 잘생긴 청년, '시몽'이 등장해 열정적인 사랑을 토로한다. 극명이 다른 두 사랑 앞에, 과연 폴은 사랑이라 믿고 있는 그녀의 오랜 습관을 떨쳐내고, 새로운 사랑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오늘 6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의 중력은 옷감의 견본이나 늘 부재중인 한 남자에게 향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자기 자신의 흔적을 잃어버렸고 결코 그것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가 아직도 갖고 있기는 할까?
p60


 제목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시몽’이 자신을 내치기만 하는 ‘폴’에게, 거절당할 것을 불안해하며 제안한 데이트 신청이다. 그리고 그의 질문은 ‘고독한 사랑’에만 매몰되어 있던 폴이 스스로의 모습을 자각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시몽과 폴에게, 브람스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짧은 질문 안에는 그들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존재했고, 작가 사강은 그것을 물음표가 아닌, 말 줄임표에 담아냈다.





사랑, 그 난해하고 모호한 감정 | 결말 포함


고독함과 외로운 사랑에 지쳐있던 폴은, 바람결에 풀잎이 너울거리듯, 시몽의 불나방 같은 사랑에 잠시 흔들리지만, 결국  다시 그녀의 오랜 습관인 로제에게로 돌아간다. 그녀는 또다시 둘이지만 혼자가 된다. '폴'이 다시 '로제'를 선택했다는 사실은, 독자로 하여금 허무함과, 짜증 섞인 불만을 불러일으킨다. 잘생긴 남자와 사랑에 빠져 상처만 주는 똥차를 차 버린다는, 아주 완벽하고 드라마틱 한 결말을 남겨둔 채, 폴의 선택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나 역시 책의 막바지를 다가가며, "제발 폴,, 그러지 마,,"를 속으로 외치며 읽었다. 하지만 나의 외침을 보란 듯 뻥 차 버리고 폴은 결국 로제에게 돌아간다. 드라마나 영화의 '해피엔딩'은 현실에 흔하지 않기에 더욱 감미롭게 다가온다. 그러나 현실에선 꽃처럼 어여쁜 사랑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강'은 그런 꿈같은 드라마를 독자에게 결코 선사하지 않는다.


화가 나지만 폴의 사랑을 되짚어 보면 그녀의 선택에 쉽게 반박하지 못한다. 서른아홉, 한 번의 이혼과 6년간의 '을'의 연애. 뜨겁게 불타오르는 사랑의 판타지에 빠지기엔, 그녀는 사랑이 끝난 후 찾아올 공허와 권태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다가오는 새로운 사랑을 받아들일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모든 사랑이 그렇듯, 한차례 타오르던 사랑은 현실세계에 발을 디디는 순간, 덧없고 변하기 쉬우며 불완전한 것이 되어버리기에, 그녀에게 또 다른 사랑은 또 다른 위험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녀는 더 이상 그녀를 외롭게 하지 않을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는 사람을 원했지만, 시몽은 뜨거운 사랑만을 줄 뿐, 그녀에게 그 이상의 안정감은 선사하지 못한다. 스물다섯의 시몽은, 자신의 정체성도 아직 찾지 못한, 소년티를 벗지 못한 남자에 불과하니까. 그렇기에 그녀는 또다시 불행해질 것을 알면서도 로제의 품으로, 외로움의 늪으로, 기다림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폴이 고독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진정으로 필요했던 건, 사실 로제도, 시몽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공허와 외로움을 타인으로부터 채우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고독함을 달래 줄 '누군가의 사랑'이 아니라, 스스로를 향한 사랑만이 그녀를 외로움의 늪으로부터 탈출시킬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의 화살을 자신에게로 돌리지 않는 한, 그녀는 앞으로도 쭉 누구를 만나던 '을'의 연애를 하게 될 것이며, 그녀를 따라다니는 공허함은 그 누구도 채워줄 수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수십억의 각기 다른 사랑이 존재하고, 그들의 사랑이 감미로운 선율에 맞춰 노래된다. 그러나 '사랑'은 종종 자신의 신성스런 이름을 앞세워, 다양한 형태로 그 모습을 달리한다. 가장 숭고하고 선한 기쁨을 주는 단어 속에는 온갖 치욕과 집착, 족쇄, 욕망, 고독, 찌질함, 슬픔 등의 무차별한 감정들이 무질서하게 내재되어 있다. '...... 그럼에도 사랑이었다.' 사랑은 쾌락과 만족, 자신의 진정성을 무기로, 손쉽게 다른 감정들의 발언권을 묵살시킨다. 어쩌면, 사랑은 인간에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장 아름답지만, 난폭한 행복을 선사하는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으로부터 마음앓이를 해본 기억이 있다면, 남들이 모두 말리는 사랑에 눈이 멀어본 적 있다면, 아니 그냥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해본 적 있다면, 분명 이야기에 순식간에 빠져들 것이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 인간의 모호한 감정이라지만, 사강의 앞에선 그저 물 흐르는 풍경이 되어버리는 듯하다. 내가 느꼈던 복잡한 감정들을, 사강은 친절하고도 무섭게 대신 캐치해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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