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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린씌 Oct 01. 2022

가해자들

[책 리뷰] 가해자들 | 정소현 | 층간 소음



층간 소음


최근 우리 사회를 강타한 사회적 이슈 중 하나인 층간 소음 문제. 가장 편하고 행복해야 할 집에서 신경 거슬리는 쿵쿵 소리가 밤낮 가리지 않고 날마다 따라다닌다면, 그것만큼 사람을 미치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가끔 진행되는 아파트 공사 소리에도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소음에 귀가 트여 매일 이웃이 내는 각종 소음과 함께 살아야 한다면 아마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 것이다. 나는 여태껏 층간 소음을 경험해 보지 못해서 그들의 고충을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하지만, 층간 소음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에게 물어보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왜 이웃 간의 칼부림이 일어나는지 알겠다고 답하더라. 인터넷에 조금만 찾아봐도 층간 소음 때문에 정신병에 걸릴 것 같다는 사람들의 고충이 끊이지 않고, 심지어 보복 방법과 보복 도구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적혀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소음에 취약한 오래된 건물 혹은 배려 없는 이웃에 의한 소음도 큰 문제지만, 반대로 정신적으로 굉장히 예민한 이웃 주민으로 인해 자신의 집에서 마저 숨죽이고 사는 분들도 TV에서 꽤나 많이 접했다. 이웃의 조그만 움직임, 생활 소음에도 끊임없이 민원을 제기하고, 나아가 이해되지 않는 보복행위마저 서슴지 않는다. 결국 사람들은 예민한 이웃 주민을 피해 자신의 집을 떠나야만 했다. 그리고 이러한 예민한 이웃 중 대부분은 사회와 격리되고 사람으로부터 소외되어 자기 안의 심연에 깊이 갇혀 있었다. 이 책의 1111호 여자처럼 말이다. 




 




 간단 줄거리 & 감상평


1212호에 사는 사람의 조카가 어느 날 밤 칼에 찔려 중상을 입었다. 이유는 층간 소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1111호에 층간 소음 문제로 이웃들을 괴롭히는 미친 여자가 살고 있었다. 모든 아파트 주민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당연히 그 미친 여자가 하다하다 사람을 칼로 찔렀구나 생각했는데, 정작 칼로 찔은 가해자는 1112호 여자란다. 조용하던 그녀는 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칼로 찔렀을까? 이 칼부림 사건의 진정한 가해자는 누구인가?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피해자라고 말했다. 이상하게도 가해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 상황이 무서워 그곳을 영영 떠났다. 



가족으로부터, 사회로부터 외면과 무시로 인한 극심한 외로움은 점점 커져, 밝고 쾌활했던 한 인물을 어둠이 단숨에 집어삼켰다. 그렇게 1111호의 여자는 자기 안에 갇혀 미쳐갔고, 그녀의 불행은 가족을 넘어, 이웃에게까지 번져 아무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칼부림을 불러일으켰다. 이 짧은 소설 안에는 “천장과 바닥과 벽을 공유하고 사는” 여러 사람들의 삶이 등장하고, 층간 소음으로 인한 이웃 간의 불화가 개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얼마나 사실적인지 읽는 내내 불편하고 섬뜩한 한 편의 다큐를 보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조금씩 조금씩, 한 사람이 망가지는 과정과, 조그만 외로움이 커다란 분노의 파편으로 변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층간 소음의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복수는 복수를 부르고, 서로를 갉아먹으며 마침내 자기 자신마저 파멸시켰다. 이 진흙탕 같은 싸움 속에서 그 누구도 온전한 가해자는 없었다. 


뉴스 속 <층간 소음으로 인한 이웃 간의 칼부림> 이 단적인 짧은 헤드라인 속에는 드러나지 않은 복잡한 인과관계가 얽혀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누구 하나 제대로 된 가해자로 명명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펼쳐진다. 우리는 이러한 뫼비우스의 띠같이, 풀리지 않는 모순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간다. 마음이 복잡해진다. 


 
 






끄적끄적…


이 층간 소음의 해결법은 없을까? 아무리 시끄럽다고 말해도 들은 척하지 않는 윗집,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계속 시끄럽다고 말하는 아랫집.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은 두 집의 갈등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진다. 서로 간의 배려와 존중, 대화를 통해서 해결한다? 만약 위/아래층이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알아먹을 수 있도록 똑같이 보복하는 것이 정답일까? 책을 읽으며 이제껏 한 번도 층간 소음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든다. 


� 사람들은 이 일이 누가 중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둘 중의 하나가 떠나야 한다는 것을 모른다. 한 번 트인 귀는 막히지 않고 사람은 쉽사리 변하지 않으며 상한 마음과 망가진 관계는 고치기 힘들다. 얼른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당신들도 언제든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려다가 입을 틀어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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