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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린씌 Apr 12. 2023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들에 대하여

[에세이] 상관없는 거 아닌가? | 장기하



책을 읽게 된 계기 | <그건 니 생각이고>


우연히 유튜브 서핑을 하던 중 약 4년 전에 발표된 장기하와 얼굴들의 <그건 니 생각이고> 노래를 듣게 되었다. 유쾌한 리듬감과 귀에 딱딱 꽂히는 가사가 매력적인 노래였다. 집중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가사가 저절로 귀에 들어와 박히는데, 노래 가사에만 오롯이 집중해서 노래를 들은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보통 노래를 따라 부를 만큼 좋아해도 가사의 의미보단 멜로디에 집중하곤 하는데, 이 노래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쓰인 가사의 의미를 되뇌며 들었다. 누군가에게 툭툭 내뱉는 듯한 말투가 꽤나 공격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 무심한 말투에 되려 위로를 받는다. 역시 노래하는 음유시인의 노래답다.



'장기하'하면 그저 '특이하고 도전적인 노래를 부르는 밴드 보컬' 정도의 인식을 갖고 있었다. 마니아 층이 두껍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 노래를 계기로 그의 노래를 하나씩 찾아 듣다 보니, 그의 음악에 매료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10여 년의 세월 동안 그는 줄곧 꾸밈없이, 단순하고 담백한 목소리와 멜로디로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한다. 대중가요지만 대중적이지 않은 그 노래들은 '장기하'라는 가수를 대변하는 듯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는 그가 멋있었다. 조금 더 긴 글로 쓰인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리고 노래만큼이나 책에도 그의 목소리가 짙게 묻어 있었다.



그동안 나는 노래와 말, 이 두 가지를 통해 남들에게 내 생각을 전달해 왔다. 둘 다 훌륭한 방법이지만, 올해 들어 그 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오직 글로만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종류의 생각들이 내 안에 가득 쌓였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자마자 더럭 겁이 났다. 나에게 책을 쓸 자격이 있나? (...) 그리고 그냥 이렇게 생각해 버렸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

[상관없는 거 아닌가?] P13






나다움


책은 낮과 밤 두 파트로 나뉘어 있다. 낮 파트에는 장기하의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를, 밤 파트에는 더 심오한 생각들을 담고 있다. 뒤로 갈수록 이야기의 깊이는 더 깊어지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심지는 변하지 않는다. 묵묵히 외로움과 막연함이라는 자유의 대가를 치르며, 사회가 요구하는 삶이 아닌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선택해 자유롭게 사는 저자. 작은 일상 속에 묻은 자신의 모습들을 조용히 사색하며, 타인이, 과학적 사실이, 사회가 뭐라 하던, 오로지 현재 '내'가 느끼는 '나'의 마음에 충실한다.


책을 잘 읽지 못하더라도 책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음을, 과학적 사실이 쌀밥은 몸에 안 좋다고 말하더라도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쌀밥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음을, 좋은 외제차를 타지 않아도 '나'에게 불필요한 무언가를 취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음에 쾌감을 느낄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 책이 유독 나에게 깊게 와닿았던 이유는, 물론 작가님이 글을 아주 기깔스럽게 잘 쓴 덕택도 크겠지만,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그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 감명을 받았고,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일전에 읽었던 [자존감 수업]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자신의 기호를 소중히 여기고, 자기감정을 사랑하는 사람. 자기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당당한 사람은 매력적이다. 주변 사람과는 거리를 두고 자신에게 충실한 사람을 사람들은 동경한다."


어렸을 때는, 작은 일에도 호들갑 떠는 나와는 다르게, 대범하고 인자하신 아빠를 보면서, 어른이 되어 많은 경험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남'보다 '나'를 더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작은 일에 신경 쓰며 스트레스받는 나를 보며,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꾸준히 자신을 되돌아보고, '나'의 감정을 위하고, 나다움을 찾아가는 노력을 해야만,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나'를 우선시할 수 있게 된다.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목소리에 담으려고 노력하는 장기하처럼 말이다.





잘 쓰인 글


군더더기 없이 정말 잘 쓰인 글을 읽으면, 나도 당장 글이 쓰고 싶어 진다. 인상 깊었던 책의 글쓰기 방법을 모방해서 내 글에도 적용해 보고 싶기 때문인데, [상관없는 거 아닌가?]는 책을 읽는 매 순간 글이 쓰고 싶었다. 내가 느낀 이 책의 큰 특징으로, 글 속에 작은 디테일들이 생생히 살아있다는 것이었는데, 저자는 일상의 작은 부분 하나하나까지 정확히 짚어 줬기에, 글의 생동감이 깊어졌고, 저자와 한층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다양하고 적절한 예시를 들어 이야기를 진행하다 끝에는 결국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로 모아진다. 누군가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가 이렇게나 흥미롭고 재밌다니.. 나도 언젠가 ‘내’가 듬뿍 묻은, 나를 대변해 주는 글들을 엮어 나만의 책을 만들어보고 싶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


나는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들까지 껴안고 꽤나 예민하게 사는 편이었다. 자주 남들의 눈치를 살폈고, '어떻게 하면 나만 이상하게 튀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고 잘하는 것처럼 비춰질까?', '어떻게 하면 무시당하지 않을까?' 등 모든 포커스는 '남의 생각과 평가'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세월을 '나'보다는 '남'을 더 신경 쓰며 살아온 듯하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은, 내가 타인의 눈치를 보는 것만큼, 정작 나에게 관심 갖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항상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모두에게 더 좋은 사람, 더 완벽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사회적 통념에 비친 나의 모습에 대한 욕심이 빚어낸 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작년, 내 안의 시선들을 죄다 신경 쓰고 사는 게 갑자기 너무 귀찮아져서 그냥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에휴 뭐 어쩌라고, 맘대로 들 생각 하라지, 바보 같던 뒤처지던 내 인생인데 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 순간이 어찌나 통쾌하던지, 매일 양옆으로 곁눈질 치기 바빴던 눈이 드디어 내 안으로 모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여기서 포인트는, 약간의 썩소를 지으면서, 살짝 욕을 섞어서 정말 어쩌라는 투로 시니컬하게 툭, 내뱉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 마법 같은 말을 내뱉으면 정말 희한하게 속이 뻥 뚫리고 후련해진다. 그 이후부터는 혼자 안 봐도 될 눈치를 또 보려 할 때면 '뭐 어쩌라고'를 상기시키곤 한다. 무심하고 냉소적인 태도는 오히려 정신건강에 도움을 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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