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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린씌 Apr 15. 2023

편지가 전하는 진심

[일본소설] 츠바키 문구점 | 오가와 이토


카톡이 대신하는 진심


카톡과 이메일이 편해진 세대이긴 하지만, 편지가 전해주는 그 따뜻한 감성을 잊지 못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내 인생 가장 많은 편지를 받았던 시절이다. 옆 자리 친구가 '지우개 빌려줘서 고맙'다며 적어 준 작은 쪽지부터, 공책 쭉 찢어 선생님 몰래 적었던 비밀 편지, 어린이 잡지책을 오려 만든 온갖 귀여운 모양의 편지, 엄청 큰 편지지에 가득 채워 적어 준 편지 등, 참 다양한 편지를 받았다. 그땐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이 쭉 찢은 종이에 투박하게 적은 글씨였다. 


보통 생일 때 편지를 많이 받아서 '생일축하해!!'라는 내용을 적은 편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막상 편지를 펼쳐보면 아이들의 글씨체부터, 편지지의 모양, 세세하게 담고 있는 내용까지 전부 다르다. 지금은 만나지 않는 친구들이지만, 편지를 보면 오래전 희미해진 친구들의 얼굴이 선명히 떠오른다. 한때 편지지 접는 방법에도 유행이 돌았어서, 금손 친구들이 잎사귀 모양, 편지봉투 모양, 하트 모양 등 신기하게 접어줬었다. 손재주 없는 나는 다시 따라 접기 어려워서 접는 방법을 기억하며 조심스럽게 펼쳤던 기억이 난다. 그 순수한 마음들에 웃음이 절로 난다. 


고등학생 때 이후에는 조금 컸다고 나름 신경 쓴 '줄 편지지'에 "우리 우정 영원히! 생일 축하해"와 같은 편지를 받았고, 대학생 때부터는 받은 편지의 수가 현저히 적어져서, 1년에 두세 번 정도 받으면 많이 받은 편에 속했다. 이제는 편지보단 카톡으로 간단히 "생일 축하해! 오늘 하루 즐겁게 보내!"와 같은 형식적인 멘트를 주고받을 뿐이다. 편리해진 만큼 '진심'에 묘한 거리감이 느껴진다. 별생각 없이 축하 메시지를 보내는 나도, 별 의미 없는 축하 메시지를 받는 나도, 가끔은 이게 무슨 의미인가, 생각하곤 하지만 그럼에도 또 귀찮으니까, 그냥 형식적인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편안함은 내 귀찮음의 레벨지수를 높여 놓은 듯하다. 





츠바키(=동백나무) 옆에 위치한 작은 동네 문방구, 츠바키 문구점.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어서 학생들이 종종 들리기는 하지만, 세련되고 예쁜 최신 필기구를 취급하는 대신 기본을 중시하는 평범한 문구들만 진열되어 있어서 손님이 많이 찾진 않는다. 대신 각자의 사연을 품고 있는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이 문구점에 종종 방문한다. 츠바키 문구점을 운영하는 '아메미야가'는 에도시대부터 내려온 유서 깊은 대필가 집안이다. 어린 시절부터 먹 가는 법, 도구 다루는 법, 글씨 쓰는 법 등을 꼼꼼히 배워, 대필업을 이어가고 있다. 아메미아 가는 '글씨 쓰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의뢰를 받는다. 


'포포'는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엄격한 선대, 즉 할머니 밑에서 자라며 글씨 쓰는 법을 배웠다. 당근보단 채찍만을 주던 선대에게 불만을 품은 포포는 고등학생 때 선대를 떠나 외국을 방랑하게 된다. 그러다 선대가 돌아가신 후 다시 집으로 돌아와 선대의 뒤를 이어 대필 가업을 물려받는다. '왜 편지를 대신 써줘야 하냐?'라는 포포의 질문에 '누군가의 행복에 도움이 되고 감사를 받는 일'이라며 대답한 선대. 포포는 선대의 가르침에 따라, 츠바키 문구점에 방문한 손님들의 의뢰를 최대한 정성껏 받고, 마음을 담은 편지를 대신 적는다. 





편지


포포의 첫 대필 의뢰는 "지인 애완 원숭이의 죽음에 대한 애도 편지"였다. 처음엔 의아했다. '아무리 아날로그 편지가 익숙하지 않은 시대라고 하지만, 이 정도도 혼자 못 써? 편지에 자신의 진솔만 마음만 잘 담기도록 적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러나 편지를 대하는 포포의 자세를 보며, 대필 의뢰 맡길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편지와 어울리는 질감과 느낌의 편지와 편지봉투 선택부터, 편지를 적을 필기구, 우표까지 고심해서 고른다. 그리고 마치 자신이 편지의 주인이라도 된 듯, 최적의 언어를 고르기 위해 몇 날 며칠 고민하며 진심이 가득 담긴 편지를 완성시킨다. 


누군가에게 전달될 편지를 소중하게 다루는 포포를 보며, 나 역시 소중한 이에게 편지가 쓰고 싶어 진다. 진심을 담은 편지를 써본지가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시금 누렇게 변색된 펼쳐봤을 때 우리를 추억해 줄 만한 기억이 담긴 편지. 간단하고 편리한 디지털 세상에 익숙해질수록 진심을 주고받을 기회가 줄어든다. 그러나 '편리함'이 아닌 '마음쓰임'이라고 읽히는 편지가 쓰고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과 사람 관계에 편리함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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