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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린씌 Apr 19. 2023

절박하게 좋아하는 것들에 대하여

[에세이] 커피와 담배 | 정은



커피와 담배


나의 아침을 깨우는 것은 한 잔의 아이스 아메리카노이다.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는 것이 습관이 되다 보니, 아침에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아침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기분마저 든다. 그러나 요즘 부쩍 위가 약해진 탓에, 되도록이면 빈속 커피를 자제하고 있지만, 도통 이 허전함을 채울 수가 없다. 오늘 아침은 평소에 먹지 않는 빵 한 조각과 사과 반 쪽을 먹고 출근했기에, 호기롭게 아침 커피로 하루를 시작했다. 역시 아침에 마시는 아메리카노의 시원함은 그 무엇도 대체할 수 없다. 빈속이 아니어서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속이 쓰렸다. 밥을 먹으면 나아지겠지 생각했지만, 커피는 이미 내 속을 뒤집어 놓았고, 밥으로도 복구가 안 돼서 결국 약을 먹었다. 


나에게 커피란 사실 큰 의미 없다. 아침잠을 깨우는 용도, 마시면 개운한 습관, 빈속에 마시면 속이 쓰린 검은 물 정도? 프랜차이즈 커피가 제일 편하고 맛있다고 생각하며, 가끔 개인 커피숍에서 원두를 골라 달라고 하면, 그냥 제일 고소한 원두로 달라고 말한다. 신 커피를 마셔야 진정 커피 맛을 즐기는 것이라는데, 굳이 신 커피까지 즐기고 싶진 않다. 처음으로 에스프레소 한 잔 마시고 이렇게 쓴 원액을 누가 마시냐며 불평했는데, 그날 밤 잠까지 못 들어서 다시는 입도 대지 않는다. 커피 맛은 물론 담배 맛도 모른다. 담배를 피워보겠다는 생각 자체도 해본 적 없으며, 담배 연기를 맡으면 기겁하는 사람이 나이기에,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내 평생 담배와 커피를 기호식품이라 소개할 날은 오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나에겐 아무 의미 없는 무언가가, 그저 잠을 깨우는 용도로만 이용되는 무언가가,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사랑하는 용도로 쓰인다. 5000원짜리 커피는 누군가에게 환대이며, 대접이며 휴식이다. 나는 기겁하며 피하는 담배 연기를 보며, 누군가는 커다란 기억들이 가득 담긴 집이라 느끼기도 한다. 각자의 커피가, 각자의 담배가 있는 것이다. 나에게선 큰 의미를 찾지 못한 무언가가, 다른 이의 삶에서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경험은 값지고 귀하다. [커피와 담배]는 커피와 담배에 얽힌 정은 작가의 이야기를 담았다. 단순히 좋아하는 것이 아닌, ‘절박하게 좋아하는 것’들에 대하여. 작가는 말한다. “기분 좋게 좋아하는 것과 절박하게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 후자에 대해서 쓰는 것은 결국 나에 대해 쓰는 것이고, 정직하게 대면한 맨 얼굴을 드러내며 쓰는 것이다.” 내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오롯이 담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부럽다.





담배에 얽힌 사랑 이야기, 금욕의 공간인 절에서 좇는 욕망, 5000원의 커피가 전해주는 사치스러운 1시간, 담배를 통한 할아버지와의 연결 등 작가의 소소하지만 내밀한 일화 12편이 담겨 있다.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담배를 태운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난생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담배를 피워본 경험은, 보라카이 여행 갔을 때 한 모금 빨아본 ‘물 담배’였다. 이 정도는 담배도 아니라는 말에 자신감을 갖고 한 모금 크게 빨고 내뱉었는데, 그날 하루 종일 머리가 아파 혼났다. ‘역시 담배는 최악이야’ 하며 그 이후로 얼씬도 하지 않았는데, 작가가 보란 듯 내 앞에서 맛있게, 담배를 태우는 바람에 처음으로 괜한 호기심이 생긴다. 


나에게도 ‘나’를 대변할 수 있을 정도로 ‘절박하게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었나? 내 인생의 챕터를 담당하고 있는 무언가.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지만, 너무 좋아서 책의 표지가 너덜거릴 정도로 다시 읽은 책은 없다. 노래 듣는 것을 좋아하지만, 유튜브 뮤직 AI를 통해 다양한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하기에,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꼽기도 어렵다. 덕질할 정도로 좋아했던 연예인도 없다. 영화도, 음식도, 뭐 하나에 완전히 꽂혔던 기억은 없다. 뭐, 비록 ‘절박하게’ 좋아했던 무언가는 없지만, 나를 이루는 수많은 것들이 있으니 아쉽지는 않다. 허나, 나도 저자처럼 좋아하는 무언가를 오롯이 바라보고 싶다. 그러면 내 취향의 범주에 깊이를 포함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그것이 몸에 좋지 않으면 어떠랴, 그것이 담고 있는 가치는 통상적인 사실 그 이상인 것을. 





[말들의 흐름]

작은 독립서점에서 만난 이 책은 <시간의 흐름> 출판사가 내놓은 [말들의 흐름] 프로젝트의 1번째 책이다. [말들의 흐름]은 열 권으로 하는 끝말잇기 놀이로, [커피와 담배], [담배와 영화], [영화와 시] 등 마지막 단어를 매개로 제목이 연결되어 있다. “하나의 낱말을 두 작가가 공유할 때 어떤 화학반응이 일어날까?”는 의문으로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아 그렇구나,’ 하며 별생각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첫 번째 책을 읽으니 두 번째 책이 궁금해진다. 두 번째 작가는 ‘담배’라는 단어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풀어놓을까? 첫 번째 책을 읽고 깨달았다. 나는 [말들의 흐름] 시리즈에 빠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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