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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린씌 May 16. 2023

먼지가 뒤덮은 세상에서, 그들이 살아남는 법

[sf소설] 지구 끝의 온실 | 김초엽 | 서평


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작가의 책은 도통 '예측불가'하기 때문에 좋아한다. 제목을 봐도, 뒤에 짧은 책 소개를 읽어도, 심지어 책의 챕터 1을 다 읽어갈 때까지도 앞으로 다룰 내용을 도저히 예측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더 흥미진진하고 몰입하여 단숨에 책을 읽었다. 책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식물 '모스바나'에 얽힌 미스터리를 좇게 된다. 식물학자 아영은 해안 지역에 이상증식하는 '모스바나'를 파헤치며, '대재앙 시대에 살아남은 인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떡밥을 던져 놓고 회수해 가며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하나씩 퍼즐을 맞춰가며 읽는 재미가 있다. 


인류에게 닥친 재앙을 다루지만, 그보다 재앙의 시대에 작은 희망을 갖고 '내일'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김초엽 작가 책의 주인공은 대부분 '여자'다. 남성은 필요한 순간 잠깐 등장할 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지구 끝의 온실]도 예외 없이 재앙의 시대에 살아남은 여자들의 우정과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처음 그녀의 책을 접했을 때는, 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인데, 굳이 등장인물을 '여자'로만 고집할 이유가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한 편으로 생각해 보면, 만약 책의 구성 인물이 모두 남성이었다면, 구태여 '죄다 등장인물이 남자네?'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 같다. 보통의 디스토피아 소설, 영화를 살펴봐도 강인한 역할은 남자, 지켜줘야 할 역할은 여자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김초엽 작가 소설 속 여자는 지켜줘야 할 약한 대상이 아닌, 개척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로 나온다. 어린 시절부터 머릿속에 각인돼 있던 이미지에 의하여 '여성'중심 소설이 이질적으로 느껴진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한다.





▼스포 포함▼


2055년, 세계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간 '더스트 폴' 재앙이 시작된다. 환경문제를 손쉽게 해결하기 위해 발명된 작은 나노 입자의 먼지가, 인간의 욕심으로 인하여 제어되지 않는 크기까지 작아졌고, 먼지는 순식간에 세상 밖으로 나가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더스트 폴에 사람들은 급성중독 반응을 보이며 사망하게 되고, 약 15년 후인 2070년이 되어서야 과학자들에 의해 잠식된다. 먼지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하며 인간은 '돔' 형태의 구조물을 만들었고, 한정된 자원과 공간으로 인하여 돔 안에서 살아남을 인간과 돔 밖에서 죽을 인간을 구분하였다. 더스트 내성을 갖고 있는 몇몇 사람들은 돔 밖에서 대안 공동체를 만들거나, 버려진 집을 옮겨 다니며 살아남는다. 내성종의 피가 더스트 치료에 쓰인다는 말에, 내성이 없는 일명 '사냥꾼들'은 내성종을 잡기 위해 쫓아다닌다.


식물학자 아영은 더스트 시대 이전에 자랐던 식물에 대해 연구하는 더스트 생태연구센터 연구원이다. 어느 날, 센터로 순식간에 한마을을 뒤덮을 정도로 이상증식하는 식물 '모스바나'에 대한 의뢰가 들어온다. 아영은 의심쩍은 정황들을 모아 모스바나를 조사하기 시작했고, 모스바나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줄 '나오미'를 만나 인터뷰하게 된다. 나오미는 그동안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던, 더스트 폴 시대에 환상의 마을 '프림 빌리지'에서 겪었던 일들과, 온실 속에서 자란 모스바나에 대하여, 그리고 프림 빌리지를 떠날 때 사람들과 한 약속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다.





생각할 거리 | 소박한 실천


편안함에 가려져 묵인되오던 '환경' 문제가 더 이상 눈 감을 수 없을 지경까지 치닫자, 과학자들은 손쉽게 '환경오염'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한다. 그러나 세상을 구하겠다는 인간의 거창한 목표는 결국 인류 파멸이라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파멸로 향하던 인류를 구한 것은, 뜻밖에도 평범한 식물이었다. 프림 빌리지 사람들은 헤어지기 직전, 레이첼이 개조한 더스트에도 살아남는 식물 '모스바나'를 세계 곳곳 심자는 약속을 한다. 모스바나가 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지만, 사랑했던 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사람들은 모스바나를 세상에 뿌리고 다닌다. 그렇게 흩어진 모스바나는, 먼지로 뒤덮여 사막화되어 가던 지구에 악착같이 살아남아 흑색을 녹색으로 뒤덮었다.


거듭 대두되는 환경 문제는 모두가 힘을 모아서 해결해 나가야 할 사회적 문제라고 인지되지만, 거대한 세상 속 하찮은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생각에 개인의 노력은 무용하고 소극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무용함에서 나오는 '나 하나쯤'이라는 생각은 끊임없이 지구를 손상시킨다. 프림 빌리지 사람들은, 모스바나가 그들을 모래폭풍으로부터 지켜줬었던 작은 희망에 기대어, 그것을 세상에 옮겨심기로 결정한다. 평범한 식물이 세상을 구원해 줄 수 있는지, 지금 그들이 하고 다니는 행동이 옳은지에 대해서 아무런 확신도 할 수 없었지만, 그들은 약속을 이행하기 위하여 묵묵히 행동했고, 그것은 크지는 않지만 더스트 농도를 줄여주는 확실한 결과를 초래했다. '세상을 구하겠다'라는 거창한 목표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그저 자신의 위치에서,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을 취하는 것만으로 뜻밖의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책은 말해주는 듯하다. 환경을 위한 작은 행동을 무용하고 하찮게만 생각할 것이 아닌, 조그만 실천이 모여 내 주변에 작지만 확실한 결과 하나쯤 초래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책은 과학기술이 초래한 멸망의 시대에 파국으로 치달은 인간성, 그럼에도 그 안에서 싹트는 믿음과 우정, 사랑을 그린다. 인간은 ‘과학’에 기대에 전지전능한 신의 위치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건 인간이 아닌 이 세상을 뒤덮고 있는 식물과 자연 스스로의 치유를 인간이 함께 돕는 것임을, 인간은 그저 지구에 잠시 방문한 손님임을 다시금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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