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태와 형태 아닌 것

[에세이] 사물의 뒷모습 | 안규철 | 리뷰

by 경린이의 경제공부



인터넷을 서핑하다 한 아이가 민들레 꽃씨를 꺾어 불고 있는 쇼츠를 보게 되었다. '귀엽다'라는 댓글이 대부분이었는데, 그중에서 "민들레 꽃씨는 열매를 다 날린 후 자연스럽게 탈락해요. 그러니까 꺾어도 됩니다 :)"라는 댓글이 눈에 띄었다. 민들레 꽃대는 바닥에 붙어 자라는 초록 이파리와는 다르게 길고 곧게 자라, 자신이 품고 있는 열매를 세상에 날려줄 바람을, 동물의 움직임을 기다린다. 짧은 시간 예쁜 꽃을 피우고 품고 있던 자식들을 바람에 태워 모두 날려 보내면 스스로 탈락해 다시 땅으로 돌아간다.


잡초라며 무시받으며 사람들의 발에 무수히 밟혀도, 그들은 죽지 않고 봄이 되면 또다시 노란 꽃을 피운다. 때가 되면 자연스레 피고 지는 줄만 알았던 작은 꽃에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역사가 들어있다. 나는 살아가는 동안, 나의 눈과 귀에 세상의 얼만큼을 담을 수 있을까? 관심을 기울이면 가려진 것들을 바라볼 수 있다.




[사물의 뒷모습]의 저자 이규철은 이 세상의 '형태'를 만들기 위해, 버려져 남게 되는 '형태가 아닌 것'들에 주목한다. 묵묵한 속도로 고유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자연물과,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사물, 언어 그리고 세상을 채우는 각종 소음들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말을 가만히 듣다 보면, 빠르게 달리던 열차에서 내려 고즈넉한 시골집에 도착한 기분이 든다. 저자는 말한다. "세상에 남아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 오래 기억해야 할 것과 빨리 잊어야 할 것의 경계를 정하는 자의 고독과 근심을 이해할 수는 있다. 다만 버려지고 사라지는 쪽에 나의 시선이 더 많이 머무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동안 바라보지 못했던, 잊혀진 것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형태와 형태 아닌 것>
조각가란 돌 속에 갇혀 있는 형상을 해방시키는 사람이었다. (...) 나는 문득 조각가가 자신의 작품을 위해 망치와 정으로 깨어낸 파편과 가루들이 궁금하다. 귓전을 울리던 그 무수한 망치질의 소음과, 잘게 부서져 사방으로 흩어지고 바닥에 쌓이던 대리석의 파편과, 땀에 젖은 그의 온몸과 작업장을 하얗게 뒤덮었을 두터운 먼지를 생각해 본다.

여기서 세계는 형태와 형태 아닌 것, 남는 것과 버려지는 것으로 나뉜다. 작품을 만드는 일은 기억될 것과 잊힐 것을 구분하고 그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일이었다. 미켈란젤로와 그의 후배들이 세상의 모든 대리석 속에 숨어 있는 형태들을 끌어낸 지금 우리는 결국 그 잔해들 속에서, 버려진 파편과 먼지 속에 숨어 있는 형태를 찾고 있다.
P11-12





가끔 너무 좋았던 책이라, 서평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에 오히려 글을 망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욕심은 끝이 없어 생각을 계속 수정하다 보면 결국 내가 하려고 하는 말의 핵심을 놓치게 된다. 글을 쓰면 쓸수록 잘 쓰고 싶은 내 마음과 멀어져 버리는 듯한 기분. [사물의 뒷모습]이 나에게 딱 그런 책이다. 너무 좋아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그런 책. 작은 독립서점에서 만난 이 책은 올해 2월, 아직은 추웠던 겨울날 구입했다. 녹색 표지와 내지의 그림들을 넘겨보다 보니 다가올 봄의 모습이 그려졌고, 봄에 읽을 책으로 미리 구매해두었다. 숨어 있던 새싹이 파릇하게 피어나는 봄날의 시작을 이 책과 함께해서 다행이다.


단순히 완독이 목표가 아닌, 그저 저자와 교감하며 그의 말을 섬세히 듣고 받아들이는 것이 목표였던 책. 내가 채 소화하기 전에 날아갈까, 조급해하지 않고 그가 담아 놓은 사유들을 약 1달에 걸쳐 나눠 읽었다. 고요한 새벽, 주변 소음을 배경음악 삼아 아침에 두 세장, 자기 전에 대 여섯 장. 오랜만에 꼼꼼히 필사도 해둔다. 언젠가 나에게도 드러나지 않은 세상의 모습을 풍요롭게 바라볼 깊은 통찰력과, 나를 채우고 있는 것들을 바라볼 여유와 심미안이 생기길 바라며. 손만 뻗으면 닿는 침대의 한구석에 이 책을 놓아두었다. 보이는 것들에 상처를 입은 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하고 있을 것들을 만나기 위해, 나는 또 책을 펼칠 것 같다.





<나무에게 배워야 할 것>
뒷마당의 느티나무에서는 여름내 마른 가지들이 떨어졌다. (...) 어떤 가지는 살리고 어떤 가지는 버릴지를 판단하고 실행하는 것이 나무의 일이다. 자기 몸에서 자라는 가지들을 하나하나 유심히 지켜보다가 어떤 것들을 스스로 잘라내는 것이다. 이 일을 게을리하면 가지들이 한쪽으로 치우쳐 자랄 것이고, 결국 나무는 언젠가 균형을 잃고 쓰러지게 될 것이다.

나에게도 나무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수많은 가지들이 있다. 그것들 중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정하고 잘래낼 것과 살릴 것을 정해야 한다.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버릴 것을 버리는 나무의 결단을 배워야 한다. 나무의 미덕은 인내와 여유로움만이 아니다. 치열한 자기성찰과 말 없는 실천에 나무의 미덕이 있다.
P79-80





<어제 내린 비>
어제 내린 비는 앞으로 여러 날 동안 그렇게 골짜기를 흘러 내려갈 것이다. 비가 오는 시간이 있고, 비가 가는 시간이 있다. 바위와 모래 틈 사이에 머무는 물방울들의 시간. 그 시차가 숲을 만들고 풀벌레를 키우고 새들을 먹여 살린다. 빗물이 곧바로 강과 바다로 돌아가지 않고 세상 구석구석에 스며들며 순환의 시간을 지연시키는 동안, 나무와 풀과 들짐승들이 자란다.

비가 내리는 것과 같은 하나의 사건과, 그 사건이 완전히 종결되어 흔적 없이 사라지기 전까지의 시간,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왔던 곳으로 돌아가기까지 물방울이 겪는 숱한 우여곡절의 시간, 뜻밖의 급류와 흙탕물의 시간, 얼음처럼 차갑고 어두운 지하수의 시간, 누군가의 땀과 뜨거운 눈물이 되는 시간을, 우리도 빗물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P243-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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