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외출을 위해 어린이집 하원길부터 아이스크림을 사주며 시계가 일, 공, 공이 되면 엄마 나갔다 올 거야, 잘 있을 수 있지? 아빠랑. 이라며 밑밥을 두껍게 깔았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는 당장이라도 독립할 것 같은 기개로 응! 괜찮아! 하더니 22시에 가까워질수록 쪼그라드는 용감한 마음. 21시 30분쯤이 되어 외출 전 샤워를 하고 나온 내게 엄마 배꼽 만지고 싶어요, 몸을 베베 꼬며 다가온다. 가지 말라는 말을 이렇게나 엿가락처럼 늘려 살금살금 다가와 나를 칭칭 감기 시작한다.
아무리 엄마고 가족이라도 남의 신체는 조심스러운 것이라는 걸 가르치기 위해 나 역시 두꺼운 방패를 내세웠다. 배꼽은 엄마껀데 엄마는 다른 사람이 배꼽 만지는 게 싫어, 부끄럽거든. 그래도 만지겠다고 떼를 썼다면 내 방패는 더 강해 졌을 건데 풀이 죽은 모습으로 네, 하고 쉽게 돌아서는 모습이라니. 하... 육아에 있어서는 강약약강인 날 너무 잘 아는 노련한 녀석.
비 맞은 강아지처럼 쪼그려 누운 (그것도 등을 보이며) 첫째에게 다가가 다른 사람 배꼽에는 절대 관심도 갖지 말라는 경고와 그러겠다는 새끼손가락 약속을 받아내고는 내 배꼽을 조금 만지작거리게 했다. 그러더니 배꼽을 달라는 돼도 안 한 소리를 하기 시작하는데, 그 발상이 정말 귀엽다는 생각과 함께 이런 대화를 나누는 지금이 엄청 행복하게 느껴지는 바람에 맞장구를 쳐줬다. 근사한 연기력을 갖추어.
그래? 그래 그러지 뭐, (배꼽 부근을 잡으며) 으아ㅏㅅ아앗ㅇ사앗 초ㅑ! 자 여기!
소꿉놀이부터 병원 놀이까지 일과의 반 이상을 역할 놀이로 보내는 세 살은 없는 것도 있는 척을 제일 잘한다. 없는 토마토도 손에 올려 흘리며 먹을 줄 알고 없는 심장소리도 놓칠세라 미간을 찌푸리며 청진기에 집중한다. 하물며, 너무너무 해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배꼽 놀이다. 없는 배꼽쯤 잘 간수해야 하는 장기 하나 취급하는 건 일도 아닐 터.
엄마, 내 배꼽에 안 맞아. 어쩌지?
그렇게 몇 번 배꼽 놀이 상대를 해주다 나갈 시간이 다 되었다 싶어 혼자 얼른 현실로 돌아왔다. 자, 이제 그만하고 얼른 눈감아. 자. 엄마 숫자 일이랑 영 되면 나간다 했어.
응, 그럼 배꼽은 두고 가. 내가 갖고 있다가 집에 오면 잘 돌려줄게. 나랑 연결됐다가 집에 오면 줄게.
이 놈 자식, 두고 나가려니 시를 써서 내 발목을 잡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