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돌아여행의시작

Ep001

by 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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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01_20150124_돌고돌아여행의시작

1월 시린 한국의 공기를 품고 태국 햇빛을 받으러 나는 갔다

Ep.001
오후 5시면 인천공항에서 치앙마이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는 나는 오전 7시 매탄권선역으로 향하는 분당선 열차를 기다리는 구룡역 플랫폼에 내 등을 모두 감싸는 뚱뚱하고 긴 배낭을 업고 앉아있다. 곧 만날 치앙마이의 후덥한 공기를 감당할 자신은 없고 당장 추운 개포동과 수원의 공기를 감당할 자신도 없어 적당히 타협점을 찾은 내 옷차림은 두텁한 후리스에 또 두텁한 패딩조끼.

이 무슨 기행인가.

나는 올해 5년 차 사원 말년을 맞이한 대한민국 30대 직장인이다. 2013년 10월 내가 퇴사를 하지 않았다면. 나올 듯 버틸 듯 나오지 않는 나의 동기들은 어설픔이 뚝뚝 흐르는 사회 초년생 장그래에서(내 동기 중에서 안영이 씨나 장백기 씨는 없었다) 어느새 사회의 진한 단물이 뚝뚝 흐르는 뽀대리가 되어있었고, 우리는 순식간에 가버린 그 아득하고 지루한 공기로 가득했던 우리의 오 년을 기념하기 위해 늙은 MT를 계획하기에 이른다. 반천년전에도 임금이 행차하셔 목욕을 즐겼다는 아산에서 우리도 온천을 즐기자. 정말이지 대리스러운 생각이다.

하루 저녁, 마주 앉아 고기를 구워 먹는 자리조차 이런저런 일로 쉽지 않은 이들이 늘자, 자율과 자유만이 어울릴 MT라는 단어에 선입금이라는 굴레를 씌워버린 우리들. 나 역시 선입금의 굴레를 쓰고 손꼽아 우리의 잔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림은 길었고 뼛속까지 인간인 나는 실수를 저지른다. 작년부터 노래를 지어 부르던 치앙마이, 그곳으로 떠나는 비행기 표를 충동적으로 샀다. 그것도 MT가 있는 토요일에. MT는 저 어딘가에 묻어버린 채. 며칠 뒤, MT의 존재와 함께 성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얼굴이 함께 떠올랐다. 그리하여 나는 반십년 기념 잔치에 오후 반차를 쓰기로 했다. 새벽같이 천안에 내려가 무릎을 꿇고 반성하는 나의 마음을 보여준 뒤 공항으로 향한다는 빡빡한 일정. 사실 두려운 마음에 얼굴을 보고 무릎을 꿇겠다는 이유 말고도, 그들에게 조잘조잘거리면 내게 돌아올 도닥임과, 어디에서 오는지 모를 그들이 뿜어주는 따뜻한 공기가 필요했다. 나의 이 대책 없는 여정의 시작을 무리라며 말리는 이들도 있었지만 나는 출발하고 말았다. 기행문의 시작이 기행으로 시작된 것이다. 아침 일찍 매탄권선역에서 일행 셋을 만나 근처 또 다른 일행의 집에 들러 아침 간식을 먹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내가 가지도 않을 MT에서 먹을 고기와 술을 사는 일을 도왔다. 배가 고파진 우리는 전날 기계처럼 공을 쫓은 차두리 선수의 활약을 칭찬하는 재방송을 보며 육개장을 먹었다. 육개장을 마지막으로, 그들과 함께한 반나절을 마무리했다. 미영 언니의 걱정과 따뜻한 포옹 그리고 그들이 사준 캔맥주를 넣은 배낭을 업고 생판 처음 보는 수원 라마다 호텔 앞에서 공항버스를 탔다. 편하게 앉아 맥주를 까면서 이번 여행은 조금 피곤하지만, 시작부터 마음에 든다-라는 생각을 반쯤 할 때쯤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이런 기행으로 시작한 이번 기행은 기행으로 끝났다. 수미쌍관을 미학을 따랐다고나 할까.

일단 시작의 기록은 여기까지.





듣는여행기 듣고보니 치앙마耳 출판 프로젝트!

https://www.tumblbug.com/chiangm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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