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못난인형 Nov 13. 2019

남편의 애인 그리고


"밖에 나가 펴~"

조용히 애인과 만나고 있는 남편의 전용 화장실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소귀에 경 읽기다. 옆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막둥이가 지독한 애연가인 아빠에 관해 묻는다.

"엄마, 아빠가 결혼 전에도 저렇게 많이 피웠어?"

"웅, 그랬지."

"그런데 왜 결혼했어?"

"그때는 오물오물 담배 물고 있는 모습도 귀엽더라고"


오 년 전쯤, 황소고집인 남편이 웬일로 금연을 선언하고 두 달간 노력한 적이 있었다. 처음 보름은 너무나 잘 견디길래 담배란 놈도 별거 아닌가 보다 했다. 하지만 웬걸. 갑갑해서 잠을 못 자겠다며 호소하고, 죽을 것 같다며 밤새 내 손을 붙들고 잤다. 우울해서 뛰어내리는 사람 심정이 이해 간다 하질 않나, 오래전 회사 동료가 스스로 목숨을 버리기 전 위로해 주지 않고 호통을 친 게 후회된다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러더니 결국은 못 이기고 한 개비, 두 개비 피기 시작해서 원위치가 되었다. 요즘엔 예전보다 오히려 더 핀다. 남의 남편은 하나같이 금연 성공도 잘하던데 하여간 남편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어이없게도 남편은 줄 담배 수준의 담배를 보약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담배를 피워 뱃속에 회충이 없고, 담배를 피우면서 화를 풀게 되니 뇌졸중에 걸릴 위험이 줄어든다고 여긴다. 술과 담배를 많이 해도 장수하는 집안이라 당신보다 오래 살 거라며 항상 자신만만하다. 이렇듯 고집불통 외골수인 남편에게도 자잘한 장점은 있다.     

 

일요일 낮, 철 지난 선풍기를 들여놓으려고 커버를 씌우다가 남편의 말에 따르면 "손에 들면 뭐든지 고장 낸다"라는 내 손에 생활용품점에서 이천 원하는 선풍기 커버가 찢어졌다. 남편이 없을 때 고장 냈으면 그냥 버리면 될 텐데 하필 남편이 보는 앞에서 찢고 말았다. 깔끔하게 바느질하고 지퍼까지 달며 커버를 멀쩡하게 고친 남편. 잔소리는 덤이다.

작가의 이전글 그대 이름은 웬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