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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못난인형 Jul 24. 2019

그대 이름은 웬수

사는 이야기


남편은 땡돌이라 보통은 회식을 한다한들 10시 이전에는 귀가하는데 지난 금요일 밤, 고향 친구들을 만난다고 서울 갔다 자정 무렵 들어온 몰골은 인간이 아니었다. 눈동자, 와이셔츠 단추, 다리까지 풀어져서 갈지(之) 자로 들어와 신발장 앞에서 안방까지 걷는 걸음걸이가 불안하더니 급기야 거실 장에 헤딩한 남편.

휘청휘청 힘들게 다시 일어나 옷을 여기저기 마구 벗어 놓고는 우당탕탕 침대 위로 직행하는 것 같던데 보기 싫어서 외면하고 소파 위에 누워 잠을 설쳤다. 새벽에 혹시 죽었나 하고 들여다봤더니 쌀쌀한 10월 하순 날씨에 두꺼운 이불을 다 내던지고 얇은 침대 시트만 돌돌 말고 차디찬 방바닥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꼴이라니.


토요일인 오늘 휴일근무한다고 했지만 '설마 출근할 수 있겠어, 분명 아프다고 전화하고 결근하겠지' 하며 내버려 두고 있는데 7시에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말하기를

"여보~ 나 출근인데 밥 안 줘?"

"뭐라고 지금 밥이 넘어가?"

툭툭 거리며 콩나물 김칫국과 따신 밥 반 공기를 놓고 불렀더니 왜 반찬이 없냐고 따지기까지 한다.

이제 조금 살만한가 보네 "입맛 없어 못 먹을까 봐 안 꺼냈지" 했더니 "이 사람이 못 먹긴 왜 못 먹어"

몇 개 안 되는 찬이지만 서둘러 꺼내 주고 지켜봤더니 정말로 먹는다.

그것도 그냥 먹는 게 아니라 우걱우걱 아주아주 잘 먹는다.

그다음 이어지는 더 골 때리는 한마디 "여보, 밥 세 숟가락만 더 줘"


시부모님이 딸 둘에 이어 뒤늦게 귀하디 귀한 아들을 낳고 목숨만 길라고 지어준 이름 <흥할 흥, 목숨 수>

네덜란드에 유명한 철학자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했으나 새벽 4시에 들어와도 6시에 밥을 먹는 삼식이 흥수는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나는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온다해도 오늘 한 그릇의 밥을 먹으리라"

어쩌면 한 그릇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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