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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못난인형 Dec 01. 2019

그분은 그럴 분이 아니다.


한 달이 넘는 긴 겨울방학을 앞두고 에세이 동아리 반을 만들기 위해 심화 반 박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심화 반 반장님인 박 선생님은 60대 초반의 남성으로 온화한 인품에 베풀기 좋아하고 이미 등단도 하시고 이번에 두 번째 책도 준비 중이라니 에세이 동아리 반 리더로 안성맞춤이다.

“여보세요?”

그런데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소리는 60대 남성이 아닌 20대 여성분 목소리였다.

따님이 대신 받았을 수도 있으니 다시 한번 물었다.

“죄송한데, 박 선생님 전화 아닌가요?”

“아닌데요.”    


사실 지난여름 방학을 앞두고도 동아리 결성을 위해 박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다. 에세이 입문 반 동료들에게 함께 할 것을 권유하고 연합 활동 신고 서류를 작성하고 박 선생님을 찾아가 회장 직을 맡아달라고 부탁드렸던 것. 박 선생님은 선한 미소를 지으며 흔쾌히 승낙해 주셨고 기쁜 마음으로 가입 의사를 밝힌 회원들과 마무리 의견을 듣기 위해 단체 톡(talk) 방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회장 직을 맡기로 하신 박 선생님을 초대했다. 그런데 인사말 한마디 없이 쌩하니 나가버린 박 선생님. 내 마음엔 심한 스크래치가 생겨 버렸다. 인품 훌륭하고 배려심 많고 글쓰기와 강의도 강사급이라는 그분. 직접 찾아가서 확답까지 받았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그 일이 있은 후 마음이 상해 동아리 결성을 중단했다.     

소심한 성격에 직접 따지진 못하고 속만 끓이다가 친한 동료에게 하소연했더니 대신 가서 물었나 보다. “심화 반 박 선생님 말씀이 그런 연락 온 적 없다던데.”

에세이 반 선생님도 “그분은 그럴 분이 아니에요."라고 하신다.

‘흥~ 그럴 분이 아닌데 왜 나한테만 못되게 구는 거지’

마음에 난 상처 부위가 다시금 따끔거렸다.     


오늘 에세이 반 선생님이 주신 연락처를 확인해보 숫자 하나가 잘못 음을 알았다.

단체 톡(talk)에 불렀던 분은 60대 박 선생님이 아닌 가냘픈 목소리를 가진 20대 아가씨였던 것이다.  

그분은 잘못이 없다.

그분은 그럴 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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