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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못난인형 Dec 23. 2020

아버지를 추억하며(편지글)


오래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문득문득 난다. 

중학교 시절에는 시골 할머니 집에 떨어져 지냈고, 고등학교는 춘천에서 자취했기에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어 동생의 기억 속에 있는 아버지에 관해 물었다. 그리고 며칠 전, 동생으로부터 펀지를 받았다. 


 아버지 생각하면 식탁에 앉아 김치나 멸치에 소주 마시던 생각만 나. 

가정적이진 않았지만, 평소에 멸치도 발라주고, 김장할 때 쪽파 다듬어주고, 생새우 골라주고, 마늘도 빻아 주고, 그런 소소한 건 항상 잘 도와줬어.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자다 깨서 한밤중에 엄마가 없어서 울었는데 아버지가 업어준 기억이 있어. 아버지가 나를 업고 밖으로 나왔는데 칠흑같이 깜깜한 밤이더라. 신작로 위에 시끄럽게 탱크도 지나가고 군인들이 줄지어 행군하고 있는데, 그때 내가 엄마 찾으며 우니까 아버지가 "저 군인들이 엄마 데려갔다."라고 했어. 그래서 더 펑펑 울었더니 그제야 부엌에서 목욕하고 있는 엄마 보여주며 달래주었지. 울면서도 아버지 등에 업혔던 기억이 좋았었나 봐. 그때 기억이 잊히지 않아.     

그리고….

청소부인 아버지를….

매일 술에 취해 있는 아버지를….

혹시나 친구들과 가다가 길에서 마주치면 어쩌나 하고, 청소차만 지나가면 괜스레 먼저 피하고 그랬어. 지금 생각하면 그때 아버지를 그렇게 부끄러워했던 내가 매우 부끄럽네…. 

요즘 드라마 전원일기 몰아보는 중인데 그 시대 남자들 가운데 아버지보다 잘난 놈 하나도 없더라. 울 아버지도 그 시대를 처음 살아보는 어리숙한 한 인간이었을 뿐이었어. 

나도 마찬가지지만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살아가는 건데 얼마나 완벽할 수가 있겠어.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도 모르겠고…. 그냥 다들 최선을 다해 사는 거지.

우리 아버지도 미숙했지만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던 사람 중 한 명이었을 거야.

지금 만나면 불쌍한 인생~ 꼭 안아주고, 위로해주며 같이 술 한잔할 텐데….

아침 일찍 잠에서 깼는데, 언니가 울 아부지 생각나게 하네;;

마침 엄마 동영상 만들려고 앨범 뒤지다가 찾아놓은 아버지 사진이 있어서 보고 또 보고…. 주름은 많지만 잘생긴 아버지!  


 나는 동생에게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내 동생이 글 쓴다며 시끄럽게 설치고 다니는 언니보다 글을 훨씬 잘 쓴다는 걸 이제야 알았네. 어려서부터 철부지 어리광 쟁이인 나보다 성숙해서 생각이 깊고 공부도 잘했던 동생아. 지금은 효심이 지극해 딸 셋 중에서도 가장 살뜰히 엄마를 챙기고 있구나. 항상 고맙고 대견하다.      

사춘기 시절엔 이기적인 나 때문에 우린 정말 많이도 싸웠지. 머리끄덩이 붙들고 빨래하다 구정물 끼얹고 발차기도 서슴지 않던 우리가 어느 틈에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의지하며 살고 있으니 꿈만 같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슴 아픈 건 우리가 겉은 늙었지만 속은 여물었기 때문일 거야. 어려서는 몸서리치게 싫었던 아버지가 가엾고 불쌍해서 눈물 나고 쓰린 마음. 이제 다 이해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는 그런 나이가 된 거지. 요즘 문득문득 아버지 생각이 자주 나고 옛 추억이 떠오르곤 하는데 편지를 읽으니 동생은 나보다 더한 거 같네.      

오늘 밤 꿈속에선 아버지를 만나 힘든 세상 사느라 고생했다고 꼭 안아주고 좋아하시던 술과 고스톱으로 밤새워 놀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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