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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못난인형 Jan 08. 2022

사랑의 언어


** 대학 과제로 제출하면서 기존 글을 퇴고하였습니다. 


  “엄마, 안아줘~” 

  딸아이와 쇼핑을 끝내고 푸드코트 좌석에 앉으려는데 서너 살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엄마에게 같은 말을 반복하며 눈물범벅이 돼서 심하게 보채고 있었다. 아이의 보챔이 오래된 듯 젊은 엄마 얼굴은 짜증과 분노로 구겨지고, 순한 인상의 아빠는 난감한 듯 거리를 두고 “이리와~ 아빠랑 놀자”라는 말로만 보탰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엄마 치맛자락만 붙들고 칭얼거렸다. 

  “나 좀 안아줘~” 

  아이 행동이 어린 시절의 나인 것만 같아 달려가 꼭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오랫동안 지켜보았는데, 아이의 모습이 무척 안쓰러웠고 지친 아이 엄마의 행동도 이해가 됐다.   

   

  너를 낳고 보니 아무리 내 새끼지만 눈은 푹 들어가고 콧잔등엔 주름이 자글자글한 게 얼마나 못생겼는지 몰라그런데 또 어찌나 순한지 배가 고파도 기저귀가 젖어도 울지를 않더라     


  엄마가 생전에 해주신 말씀이다. 엄청나게 순했다던 나는 커가면서 울 일이 많아졌다. 언니, 오빠, 여동생, 남동생 사이에 끼어 있는지 없는지 눈에 띄지도 않았는데 가정 내 성차별까지 더해져 늘 사랑이 고팠고 외로웠던 것이다. 두 살 터울의 여동생과는 자매이자 친구였지만 경쟁 상대이기도 해서 예쁘장한 동생만 주변에서 관심 받고 귀여움 받는 게 심통 나서 잘 놀다가도 문득문득 우울한 기분이 들곤 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지금 몹시 심심하고 외로우니까 나 좀 안아줘’이 말을 하고 싶었겠지만, 그때는 내가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 알지 못했다. 울어야만 엄마가 쳐다봐주고 관심을 주니까 울었고, 혼나면서도 울었다. 징징대다 엄마한테 혼나고 기어이 회초리를 들어야 울음을 그쳤는데 실컷 울고 꺽꺽거리며 지쳐 잠들 때면 마음이 편해서 그 기분을 즐긴 것도 같다. 회초리의 아픔도 어쩌지 못한 결핍에 대한 반항을. 엄마는 그때를 떠올리며 ”너도 그런 자식 키워봐라“며 혀를 내두르셨다. 돌이켜보면 내가 울보였던 이유는 아무도 나에게 관심 가져주지 않고 내 말에 귀 기울여 주지도 않았기 때문이고 천성적으로 사랑을 갈구하는 성향이었던 나는 결핍된 애정을 울음으로 표현한 것이다. 

     

  애정 결핍의 영향인지 성인이 돼서도 유독 스킨쉽을 좋아한다. 큰아이를 키우면서 열 살 무렵까지 원 없이 만지고 더듬다가, 십 년 뒤 막둥이가 태어나면서 또다시 누렸으니 해소될 만도 한데 여전히 나에게 있어 사랑은 터치다. 하지만 아쉬움인지 다행인지, 세 딸 중 누구도 나와 같은 성향을 갖고 있지 않다. 관심과 애정을 넘치도록 받으며 자라 결핍을 모르기에 그럴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집안의 우두머리가 리모컨 조정권을 가진다던데 우리 집 리모컨은 결혼 후 줄곧 남편의 차지였다. 육아와 회사 일로 집에 오면 쓰러져 자기 바빴던 워킹맘 시절엔 몰랐지만, 막둥이를 임신하고 외벌이로 바뀌면서 남편과 부딪힐 일이 많아진 내게 최대의 스트레스는 집에 오면 리모컨부터 찾는 남편이었다. 거실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화면이 쉴새 없이 바뀌고 종일 떠들어대는데 함께 보려 해도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전혀 달라 불가능했다. 참다못해 남편을 졸라 텔레비전을 안방으로 옮겼다. 소파 위에서 뒹굴뒹굴하던 남편까지 함께 보냈더니 거실이 깔끔해진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때부터 조용해진 거실은 나의 주 무대가 되었고 어렸을 때부터 들으며 자라 친숙했던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듣기만 했다. 그런데 며칠 들어보니 코너마다 있던 라디오 사연이 흥미를 끌었고 나도 저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은 거다. 사십 년이 넘도록 독서를 모르고 초등학교 때 방학 숙제인 일기도 안 쓰던 기본기도 없는 실력으로 그때부터 어설픈 라디오 사연을 쓰기 시작했다. 방송국에 사연이 채택되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라디오 사연이라는 것이 반드시 작가처럼 글을 잘 쓸 필요는 없다. 필요한 건 뭉클한 감동이거나 배꼽 잡는 웃음이거나 찐한 땀이 배어있는 일상의 모습인 진솔함이다. 어설픈 글이 한 번, 두 번 채택이 되면서 아이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A4용지 한 장의 사연을 쓸 수 있는 수준이 됐다. 선물이 줄줄이 도착했던 시기엔 아이들이 하는 ”우리 엄마 방송작가!”라는 말에 우쭐하기도 했고, 내가 듣던 C 방송국의 사은품이 약하다 싶어 괜찮다 싶은 사연은 듣지도 않는 M 방송국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쓰는 재미, 듣는 재미, 받는 재미로 만 3년을 보냈는데,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상품을 받는 기쁨보다 내 말을 청취자가 함께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에 대한 행복이 훨씬 컸다. 

     

  이후 늦둥이마저 크고 여유시간이 많아진 나이, 지천명이 넘어 비로소 블로그 이웃들과 함께 온라인 독서 모임과 매일 글쓰기를 하며 타인과 소통하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지역, 나이, 성별, 직업 등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며 생각이 조금씩 자라는 것을 느꼈고, 회원간 교류를 넘어 브런치 작가, 오마이 뉴스 기고 등 색다른 경험을 하기도 하였다.     

 

  글이란 것은 제멋에 겨워 쓰는 자기표현의 도구이며 자기 내면의 얘기를 꺼내는 것으로 누구에게나 두려움이라고. 또한, 글쓰기의 정말 좋은 선생님은 학생의 장점을 하나라도 들어서 얘기해주고 넌 어쩜 이런 재미있는 표현을 생각해냈니, 너는 참 글을 잘 쓰는구나. 또 써봐라. 또 써봐. 그러는 사람이라고 김영하 작가는 말했다.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듯이 가슴이 따끔거리는 진심 어린 충고가 도움이 될 때가 올 수도 있겠으나 아직은 나의 글쓰기 실력이 미천하여 채찍보다는 당근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러기에 이웃의 작은 관심과 칭찬이 내겐 큰 힘이 된다.      


  결혼생활과 인간관계에 관한 세계적인 학자이자 상담가인 미국의 게리 채프먼은 5가지 사랑의 언어로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스킨쉽, 선물, 봉사’라고 말했다. 이 가운데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이다. 여전히 나는 누군가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 위로받고 행복해진다. 더불어 나도 지치고 외로운 이에게 아픈 마음이 조금은 괜찮아질 수 있도록 위로와 힘이 되는 말을 건네고 싶다.    

  

  외출에서 돌아오니 창가에 앉은 새 한 마리가 경쾌한 목소리로 노래하듯 지저귀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외로움을 만져달라고, 내게 속삭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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