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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못난인형 Dec 19. 2022

소중한 너에게

  

  맑은 계곡에 가면 주로 맨발 사진을 찍는다. 나중에 사진을 보면 그 시간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며 기분전환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여름휴가로 다녀왔던 오색약수터 부근 계곡은 강원도 산골에서 나고 자란 내가 고향을 제치고 으뜸으로 꼽은 국내 제일의 청정지역이었다. 함께 간 지인이 즉석에서 산삼을 캐기도 한 곳이다. 산삼이 자라기 위해서는 침엽수와 활엽수가 많고 유기물이 풍부한 토양과 적절한 일조량과 적당한 수분 공급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곳에서 공기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한층 건강해지는 듯했다. 올여름 프로필 사진은 줄곧 그때 찍은 발 사진으로 저장하고 자주 들여다보며 무더위를 잊으려 애썼다.   

   

  나의 발 치수는 230이다. 치수만 보면 앙증맞다 하겠지만 사진 속 발목, 발등으로 이어지는 모양이 통통해서 작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발가락도 빚다 만 찰흙처럼 몽톡하게 생겼다. 볼이 넓고 살이 많은 마당발인 것이다. 요즘이야 운동화 신고 출근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내가 사회초년생이던 90년대에는 구두를 신고 출근해야 했다. 

  그때 생활비를 아끼고 모아 큰맘 먹고 산 가죽 구두는 매번 두려움과 고통을 안겨주었다. 대부분이 선호하는 품질 좋은 가죽일수록 내게는 실패확률이 높았다. 운동화에 적합한 발이라 새 구두를 신으면 살이 꽉 끼어 혈액순환이 안 됐고 뒤꿈치는 살이 벗겨지고 피가 흘렀다. 구두 수선집에서 인위적으로 볼을 넓히고 뒤꿈치에 밴드를 붙이고 뒤축을 구겨 신으며 힘들게 길들여야 편안해졌다.      


  젊어서는 돈벌이를 위해 뾰족구두 위에서 버둥거렸던 발이 중년이 된 지금도 운동화 안에서 여전히 분주하다.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고 우울해서 잠깐이라도 야외에서 콧바람을 쐬어줘야 기분이 좋아지는 몸이고, 통통 튀는 활달한 성격만큼이나 하고 싶은 것이 많아 굳은살이 박이도록 움직이는 탓이다. 직장 일과 여러 취미활동과 만 보 걷기로 톱니바퀴 돌듯 빽빽한 일상을 삐걱거리지 않고 묵묵히 수행하는 고마운 발. 생김새는 짧고 굵어 볼품없지만, 활동적인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부위다. 이토록 중요한 발이지만 신체의 가장 아래에 있어 눈에 잘 띄지 않기에 소홀하게 되는데, 마음이 정하는 대로 조용히 자신의 임무를 다하니 새삼 발의 수고를 생각하며 고마움을 느낀다.      

  사람은 누구나 손가락처럼 발가락에도 두 개의 마디가 있다. 그런데 내 발의 오른쪽 발가락 중 하나는 관절이 한 개뿐이라 의아해하며 엄마에게 물었었다. 

”엄마, 나 발가락에 관절이 하나밖에 없어. 왜 그런 거야?“

그때 엄마의 대답은 ”글쎄….“로 본인도 모른다는 거였다.      


  얼마 전 냉동실에서 음식물을 꺼내다 문제의 발가락에 떨어뜨렸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통증은 시간이 흐를수록 심해졌고 참다못해 동네 정형외과에서 x-ray 촬영한 결과 실금이 보이는 발가락 골절로 판명이 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랫동안 궁금했던, 친정엄마도 몰랐던 기형적인 발가락에 대한 원인을 알게 되었다. 선천적인 기형이 아니었다. 뼈의 상태를 보면 추정할 수 있는데 아주 어릴 적 원인 모를 이유로 다쳤지만, 치료를 받지 않고 내버려 두어 그 상태로 굳었다는 것이다. 의사 선생님은 무척 아파 심하게 울고 보챘을 텐데 어떻게 부모님이 모르실까 궁금해하셨다. 


  끝마디가 구부러지지 않는 발가락을 어루만지면서 그 당시 아파 울던 나를 본다. 부모님이 부재중인 상태에서 남매들의 장난이 사고로 이어진 건 아닐까. 말을 배우기 전이라 오래도록 자지러지는 울음으로 아픔을 표현했으리라. ‘오늘따라 왜 이리 유독 보챌까?’ 싶으면서도 바쁜 농사일과 병원비 부담 때문에 그저 아이를 둘러업고 쩔쩔맸을 가난하고 여유 없던 젊은 부모님의 힘겨웠을 상황도 보인다.     

  몸의 균형을 잡아주고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는 역할 외에 온몸에 퍼져있는 혈관들이 모여있어 제2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발은 따뜻하게 해주어야 체내의 혈액순환이 좋아진다고도 한다. 요즈음 의학 전문가들에 의해 발 관리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발바닥 지압과 족욕이 유행이다. 나도 일과가 끝나는 저녁 시간, 뒤꿈치 각질 제거 후 따뜻한 물에 발을 담가 노폐물을 빼주고 편히 쉬게 한다. 크림도 듬뿍 바르고 구석구석 마사지를 하며 애정 어린 눈길로 말을 건넨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202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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