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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chu Aug 25. 2021

배고파. 진짜로.

 이 영화가 나오고 나서부터 누군가 나에게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뭐야?'라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리틀 포레스트. 억지 감동 짜내기 영화나, 이것 저것 다 부수는 액션 영화에 질린 나는 영화에 잠시 권태기가 왔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어떠한 사건을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고, 한적한 시골이 배경인 곳에서 정말 시골스럽게, 삼삼하게 영화가 흘러간다. 


 혜원은 현대 사회의 2-30대를 Ctrl+C, Ctrl+V 한 듯 똑같다. 평범하게 연애도 하고, 평범하게 알바도 하고, 평범하게 취업준비도 하고 있다. 그러다 문득 고향인 시골로 돌아와 고향 친구들과 사계절을 지낸다. 음식을 만들어 먹을 때마다 생각나는 미운 엄마를 떠올리면서. 


 영화 중간에 은숙은 혜원에게 왜 내려왔냐는 질문을 하다 혜원의 아픈 곳을 쿡쿡 찌르며 이야기한다. 

 '알겠다. 시험 떨어지시고, 남친은 붙고, 존심 상해서 잠수 타려고 여기 왔네. 으이그.. 너 예전에도 그랬다?'라는 은숙의 말에 혜원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게 아니고. 배고파서 왔어. 진짜 배고파서.

리틀 포레스트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저 말이 너무 공감이 갔다. 한 때 기숙사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때문일까? 근처 식당은 슬로푸드인 척하는 패스트푸드들 뿐이었고, 혼자 지내다 보니 끼니는 그냥 거르게 되는 게 일상이다. 냉장고에 쌓아둔 간식들도 잠시 안 열어보면 금방 상해버린다. 돈 없는 학생에게 과일은 사치였고, 음식이 나오는 시간대에 바로 가지 않으면 차게 식어있는 기숙사 밥도 질려버렸다. 집을 나와 있다 보니, 항상 배가 고팠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집만 오면 엄마가 만들어준 밥상이 너무 맛있었다. 기숙사에서 제대로 못 먹어 1킬로가 빠지면, 집에 있는 주말 동안 3킬로가 쪄가는 느낌? 갓 지은 밥과 가족들의 입맛에 딱 맞게 맞추어진 반찬들은 밥그릇을 뚝딱 비우기에 정말 좋았다. 그리고 엄마한테 이렇게 말한다. 

 "엄마, 진짜 밥 먹은 것 같아."

집밥을 먹고 난 후의 그 포만감은, 밖에서 살기 위해 아무거나 먹고 배부른 그 기분 나쁨과 정말 달랐다.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진짜 배부르다"라는 말로 밖에 설명을 못하겠다. 

잘 먹고 난 후에 찾아오는 그 포만감과 행복감. 인간의 3대 욕구 중 식욕이 제대로 충족되었을 때만 나올 수 있는 기분인 것 같다. 


2학년 이후로는 통학을 해서 항상 잘 먹고 다녔다. (뭐, 밖에 있으니 대충 거르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건 대충 넘어가자.) 그러다 2020년 갑자기 찾아온 코시국. 밖도 못 나가고, 집에 있는데 똑같은 반찬으로 삼시 세 끼를 먹는 게 힘들어질 때쯤, 하트시그널 3가 방영을 했다. 그중 내 이목을 끈 것은 박지현이 좋아한다는 웹툰 단행본이었다. 


오묘 <밥먹고 갈래요?>


네이버 웹툰 <밥먹고 갈래요?>  - 오묘 작가


 한 끼를 먹어도 제대로 해 먹는 '백미이'의 일상 요리툰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님에, 좋아하는 힐링 요리툰이니 정말 추천한다. (네이버에서 여전히 무료로 볼 수 있다.)


 코시국이라 학교도 잘 안 가고, 집에만 있자니 할 것도 없겠다! 어차피 밥은 삼시세끼 꼬박꼬박 먹기에 '한 끼를 먹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 맛있게 먹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평생 요리라고는 생존형 요리인 라면, 볶음밥, 계란말이 정도밖에 못했었던 나로서는 설레는 도전이었다. 처음 만들었던 요리는 감자 크로캣. 하지만 무참히 실패!! 모양이.. 크로캣이 아니었다. 그건 '그로겟' 정도라고 부르는 게 적당할 것 같다. 


 하지만 뭐든 만들고 하다 보면 실력이 느는 법! 이후로도 많은 요리를 도전했던 것 같다. 처음 성공시켜본 음식이 아마 밀푀유나베였던 것 같다. 요리에 흥미가 생기고 유튜브를 보면서 만들었었는데, 한 겹 한 겹 꽃잎처럼 펼쳐 만들었었다.(내가 꼽은 예쁘고 맛있는 음식이다.) 야채와 고기 육수도 맛있게 우러나왔고, 아빠도 나베에다 소주를 함께 드셨었다. (이런 음식에 술을 안 마시면 예의가 아니라며..ㅎㅎ)  부모님이 해 준 집밥만 먹다, 내가 직접 요리를 해 먹는 것도 기분이 좋았다. 기분이 좋음을 넘어 잘 먹어주는 가족들을 보니 뿌듯하고, 한 편으로는 이게 엄마의 마음일까 싶기도 했다. 


이건 내가 만들었던 가츠돈. 반응이 좋아 동생에게 자주 만들어주었다.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다. 은근히 직접 요리를 해 먹는 프로그램들은 대대로 인기가 많았다. 기본적으로 나영석 PD가 진행한 프로그램은 대부분 음식이 메인이었던 것 같다. '1박 2일'에서는 각 지역의 고유 음식들이 자주 나왔고, '삼시세끼'시리즈, '윤식당'에서는 연예인 패널들이 요리를 직접 해 먹거나, 사람들에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다른 채널에서 진행하는 '집밥 백선생' '백파더: 요리를 멈추지 마!'에서도 백종원이 패널들과 일반인 요린이들에게 레시피를 알려주고 함께 먹는 방송을 진행했다. 어쩌면 이 프로그램들이 사랑받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정말 배가 고파서 아닐까?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오늘 저녁은 직접 만들어 먹어보는 것은 어떨까? '배부른' 진짜 한 끼, 먹고 난 후 행복해지는 한 끼를 드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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