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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한 Sep 06. 2023

불청객의 행복 엿보기

행복은 나눌수록 커져서 참 다행이야

평소 어디론가 가기 위해 길을 걸을 때는 주위를 둘러보기보다는 정면만을 응시하며 걷는 편이다. 신호등을 기다릴 때도 쌩 지나가버리는 차나 바닥을 구경한다. 이런 나도 운전을 할 때는 자주 두리번거리며 이것저것 살피고 구경하는 편이다. 전방주시도 중요하지만 양 옆을 포함한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라고 그럴싸한 이유를 들어본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쳐다봐도 상대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불편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호가 걸려서 나는 멈춰야 할 때, 반대로 길 위의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야 할 곳이 있어 바삐 움직이는 어른들, 부모님 손을 꼭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이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있는지 리듬을 타며 걷는 사람, 버스에서 내려 기다리고 있는 여자친구에게 뛰어오는 남자친구,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재밌는 일들을 얘기하는지 깔깔거리고 있는 학생 무리들. 그들을 보고 있으면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뭔지 모를 몽글거리는 감정이 피어오른다.


낯선 동네에 있는 고등학교로 한 달 동안 수업을 하러 다닌 때가 있었다. 몇 차례나 가도(갈 때마다 다른 길을 안내해 주는 내비게이션의 영향도 분명 있었을 거다) 익숙해지지 않는 동네였다. 그날도 아침 일찍 낯선 동네의 고등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도시고속도로에서 내려 동네로 진입했고, 우회전을 해야 하는 곳이 이번 블록인지 다음 블록인지 하며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처럼 창문 너머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서로 반대 방향에서 걸어오던 두 아주머니께서 갑자기 반갑게 손을 흔들며 길을 멈춰 섰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이웃인 듯 환한 웃음으로 서로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대화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반대 방향인 각자의 길을 나섰다. 동네에서 이웃과 마주쳐 반갑게 인사하며 짧게 근황을 나누는 일상. 아니, 이제는 일상이 아니라 특별한 일. 하지만 이 특별한 일의 목격으로 인해 몇 차례나 왔는데도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던, 낯선 이 동네가 편안하고 정겹게 느껴졌다. 같은 동네에 산다는 이유로 친구가 되고, 가족 같은 존재가 되었던 시절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너무 오랫동안 꺼내보지 않아 잊혀 갔던 기억과 감정에 쌓인 먼지를 누가 후-하고 불어준 기분이었다.


학교에 다닐 때 매일 지나다니던 거리가 있다. 고즈넉한 분위기에 봄에는 벚꽃으로 가을에는 단풍으로 예쁜 거리라 사시사철 관광을 하는 외국인들과 데이트를 하는 커플들이 많다. 매일 새로운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라 지나갈 때마다 다른 재미를 구경할 수 있다. 선글라스를 끼고, 한복을 입은 채로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매일 봐도 흥미롭다. 이에 반해 데이트하는 커플들은 사실 딱히 신박한 재미는 아니다. 여느 때처럼 천천히 사람들을 구경하며 그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평범해 보이는 남녀 커플이 걷고 있었다.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는 커플이었고, 남자가 오른쪽에 서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도 남자친구가 여자친구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여자친구는 정면을 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남자친구는 그런 여자친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의심의 여지없이, 사랑에 푹 빠진 사람의 눈빛이었다. 그는 마치 세상에 둘밖에 없는 기분일 텐데 나라는 사람이 그 세상에 허락도 없이 침범해 버린 걸까 우스운 죄책감이 들 정도의 눈빛이었다. 누군가를 그렇게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말없이도 적극 말해주는 그 눈빛. 눈치 없이, 의도치 않게 그들의 세상에 끼어들어 봐 버렸지만 그들 세상의 뜨거움이 내 세상엔 따뜻함으로 전달되어 나의 하루를 데워주었다.


차를 타고 학교 캠퍼스를 돌아다니는 것은 유난히 더 재미있다. 아는 얼굴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이 다른 공간보다 크고, 그에 대한 기대감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캠퍼스 안에서는 서행을 해야 하는 규칙이 있는데, 그런 규칙이 없었더라도 학생들이 우르르 끝없이 지나다니거나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때문에 밖에서보다 현저히 낮은 속도로 운전했을 것이다. 천천히 운전하며 사람들을 구경해야 아는 얼굴이 있는지 더 잘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날도 아주 천천히 운전하며 수업을 마치고, 우르르 몰려나오는 학생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우리 학교는 가파른 경사길 끝에 있는 건물이 하나 있다. 위에서 내려오는 학생들은 쉽게 아래에서 올라오는 친구를 발견할 수 있다. 아는 얼굴들은 아니었지만 선후배로 보이는 두 학생들이 멀리서부터 서로를 알아보고 크게 손을 흔들었다. 아래에 있는 후배가 "선배~~~~"라고 외치며 두 손을 흔들고,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렸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는 중이라 그런 후배가 쑥스러웠는지 혹은 터져버린 웃음을 숨기고 싶었는지 고개를 숙이며 선배가 내려왔다. 서로가 마주한 순간 후배는 선배를 끌어안으며 반가움을 표했다. 사랑스러운 장면을 뒤로하고 내가 가야 하는 건물의 주차장으로 갔다. 주차를 하고, 시동을 끄고 잠시 앉아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들이었지만 그 두 친구가 늘 행복하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쁨과 행복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다는 말은 참 공감이 된다.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은 솔직히 나에게 그렇게까지 큰 공감을 얻지는 못한다. 내 슬픔을 주위 사람에게 나눌 때면 주위 사람도 함께 슬프다는 사실이 나에게 다시 돌아와 곱절이 되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함께 슬퍼해주는 주위 사람들 덕분에 위로받고 다시 일어서는 것은 사실이고 그에 항상 감사하지만, 그 슬픔이 반이 된다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행복은 나누어도 작아지지 않고, 더 커지기만 해서 정말 다행이다. 지인들이 행복한 일이 있을 때 나를 초대해 주고 함께 축하하며 기뻐하는 일도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초대받지 못한 손님으로 일상 속에서 살짝살짝 엿보는 세상 사람들의 행복도 참 좋다.


(커버 이미지는 예쁜 노부부께 허락을 맡고 촬영 및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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