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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therine Mar 28. 2019

국가부도의 날

1997년 12월 3일

모든 언론이 한국 경제의 호황을 자찬하고 국민들은 안심하던 1997년,

한국은행 통화 정책 담당 한시현 팀장은 국가부도의 날을 예견했다.

예견만을 했을 뿐이다. 막을 순 없었다.

그 시대의 그녀는 여자로서 당해야 할 모욕과 수치를 아무렇지 않게 맞설 수 있을 만큼

한 나라의 국민으로 자국의 안전과 번영을 누구보다 걱정하는 올바른 용기의 소유자였으나,

다수의 잘못된 탐욕과 삐딱한 정신이 잡고 있는 배의 키를 돌려세우기란 역부족이었다.

혼자서 모든 것을 바꿀 수 없기에 밤을 새우며 무수히 많은 보고서를 써내야 했고,

번번이 막히고 무시당하는 상황만이 반복될 뿐,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한 나라의 존영을 담보로 소수의, 지극히 개인적인, 탐욕을 위한 계획이 진행될 수 있었던 건지 이해하고 싶지 않은데 납득이 되는 것이 참으로 힘이 빠진다. 영화 속 한시현 팀장은 히어로가 아니었다. 그녀는 먼저 알았기에 그만큼 더 고통받았고 알면서도 흘러가는 형국을 지켜보았기에 역사에 남을 그 순간을 뼈에 새겼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한시현 팀장 역을 연기한 배우 김혜수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꼭 알아야 하기에 책임감을 가지고 이 영화에 출연했다고 말했다. 1997년 그때의 한시현 팀장 또한 그랬다. 국민들이 알아야 하기에, 국가부도의 위험성을 공식 발표하자고 말했고, 더 이상의 어음과 대출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아무것도 모르고 지금도 내려지고 있을 무수히 많은 선택들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같다.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사회는 가치있는 진실을 거저 주지 않는다. 내가 알아야 할 진실과 그 진실로 인한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가.


이 영화를 선택했던 이유는, 단 한가지 삶을 이해하고 싶어서 였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지금의 내 삶과 나아가 한국 사회까지 이해 할 수 있는 첫 발자국과 같은 사건이다. 한팀장은 알고 있었다. 당시 눈앞에서 허무하게 끝나버릴 결정의 대가는 나비효과처럼 대한민국을 통으로 집어 삼켜 끈질기게 뿌리내릴 것이란 걸. IMF의 구제금융을 받을 당시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지 않았던 나는 그럼에도 영화 속 모든 것을 잃고 자살을 결심하는 여러 '아버지'들과 위태롭게 휘청이던 모든 가정들이 뭣 모르고 들었던 개념없는 기사를 기억한다. 당시 엄기영 앵커는 이렇게 보도했다. 국민들의 외화소비가 나라의 국고를 텅텅 비게 했다고.  


해결책은 없다. 정확한 방향이나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대 국민들이 금모으기 운동을 벌여 모았던 22억의 돈이 해외 부채를 갚는데 쓰인 것처럼 끊어내 버릴 수 없는 존재이기에 안고 갈 다짐만이 남겨졌다.

그래, 내가 살아오고 있는 이 짧은 몇십 년 동안 나는 무수히도 많은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를 들어왔고,

점점 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을 직면해 오고 있으니, 더 놀랄 일도 없다.

97년 이듬해부터 실업자 130만 명의 시대, 자살률이 42%나 증가한 OECD 가입국이지만.

그런 와중에도 벌 받아야 할 범인들은 개의치 않고 살아가고 있다 하더라도. 저 자리에 있었다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쉽게 대답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으니 답답함 보단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는

외침에 초점을 맞추어야하겠다.


2019년, 연일 버닝 썬 연루 사건으로 나라가 시끄럽고, 경찰까지 깊이 관계된 믿을 수 없는 사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소시민의 생각과는 차원이 다른 계획을 꿈꾸고 법의 테두리 밖에서 인간의 본성을 다 드러내며 살아가는 짐승 같은 사람들. 항상 다른 세상을 사는 이들은 변함없이 존재한다. 법의 결점을 알고 양심과 돈의 거래점이 어디인지를 아는 사람들. 국가부도의 날을 막을 순 없었지만,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와 양심의 부도 날이 오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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