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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therine Jun 06. 2020

인생의 하프 타임

여호수아 8:30-35 한홍 목사님



축구 경기를 보면 전반과 후반전 사이에 하프 타임이 있다. 선수, 혹은 코치로 뛰어본 사람이라면 이 하프타임이 얼마나 중요한 시간인지를 알 것이다. 하프타임은 숨 고르기를 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다. 나아가 하프 타임은 전반전을 돌아보며 후반전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아무리 잘 훈련받은 군인이라도, 전장에 나가 총알이 옆으로 휙휙 날아다니고 전우들이 쓰러지는데 간신히 살아 돌아오는 경험 후에는 180도 달라진다. 그때부터 눈빛이 달라지게 된다. 만만치 않은 상대를 직접 겪어 본 사람들의 마음가짐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하프 타임'이라는 책이 있다. 저자는 미국의 젊은 CEO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와서 비교적 이른 나이에 CEO가 되었는데 그는 인생의 중반에 '나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열심히 살고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소중한 것들을 돌아보지 못하고 달려온 전반전이었다. 책의 저자는 인생의 하프타임을 40대 중반으로 보았지만, 꼭 그 나이가 아니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에 하프타임을 찍어주시는 때가 있다. 잠깐 숨 고르기를 하라는 것이다. 이 시간 안에 들어온 이상, 우리는 전반전과 똑같은 전략으로 후반전을 뛰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전반전이 승리를 위한 시간이었다면, 이제 후반전은 의미를 위해 뛰어야 한다. 전반전엔 속도가 중요했다면 후반전엔 방향이 중요한 것이다. 모험과 실수도 가능했던 전반전과는 다르게 이제 후반전에서는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집중해야만 한다. 중요한 것은 후반전의 스코어로 게임의 승자가 판가름 난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영적 하프타임을 선언하셨다. 


여호수아는 아이성에서 북쪽으로 48km가량 떨어진 에발 산으로 향한다. 이곳은 적진도 아니고 그렇다고 교통이 좋은 요충지도 아니었다. 이 결정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상당히 의아했을 것이다. 병법에서는 속전속결이 핵심이다. 아이성을 무너뜨렸다면 기세를 몰아 다른 성으로 향해야 할 텐데 산으로 가버린 것이다. 전쟁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장소로 이동시킨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영적 하프타임을 선언하셨기 때문이다.


지금 이스라엘은 이기고 있었지만 속은 지쳐있는 군대였다. 자신을 대입시켜 생각해 보라. 그들은 40년 광야 생활을 하다가 지난 두 달 동안 천지개벽하는 일들을 많이 겪었다. 처음 미국으로 이민 가면 그 땅에 적응하는데만 1-2년이 걸린다. 근데 40년 동안 광야 생활하다가 약속의 땅에 들어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인도하던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로 리더십도 바뀌었다. 기적 같은 요단강 도하를 하자마자 할례를 받고 만나가 끊겼다. 40년 동안 만나만 먹고살다가 이제 가나안 땅의 소산물을 먹어야 하는 체제에 적응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전쟁이 이어졌다. 난공불락이었던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아이성에서 패배했다. 아간 일가를 공개 처형하는 끔찍한 일을 겪고 다시 아이성에 대반격을 시도해 큰 승리를 얻는다. 이 모든 일이 두 달 사이에 일어났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쳐있었다. 그들은 이기고 있었지만 육체적 정신적으로 탈진한 상태였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이대로 후반전은 무리이다. 전열을 재정비하도록 에발 산으로 가자."


사실 이 명령은 여호수아에게 일찍이 내려졌던 명령이었는데 이 시기를 언제로 할지만 공란으로 비워져 있었다. 우리의 속 사람은 어떠한가. 삶이 바쁘게 잘 돌아가서 문제없는 거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온갖 슬픔과 분노가 마음에 엎질러져 있진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성경책이 눈에 잘 들어오는가. 잘 버티고 있지만 누가 건드리면 언제라도 툭 쓰러질 것 같진 않은가. 그런 상태라면 지금 우리도 영적인 하프타임이 필요한 때이다. (이 설교는 한홍 목사님께서 한 달간 미국에서 하프타임을 가지고 돌아오셔서 하신 첫 설교이다. 하프타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진실되게 체험하며 설교하신 것이다.)


30 그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 한 제단을 쌓았으니

31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물과 화목 제물을 그 위에 드렸으며


이들은 다듬지 않은 새 돌로 제단을 만들었다. 당시 우상숭배를 위해 만들어졌던 다른 제단들은 장인들이 깎아 아주 멋있게 만드는 추세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의 손을 거치지 않은 울퉁불퉁한 그것을 그대로 사용하라고 하셨고 그곳에서 예배하게 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위적인 쇼로 예배를 만드는 것을 싫어하신 다는 것이다. 주님은 내 모습 그대로의 소탈하고 심플한 모습으로 가식 없이 진실하게 나오기를 원하신다. 


이 곳 에발산은 원래 저주의 산으로 지명된 곳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약속의 땅에 들어와서 저주의 산에 왔냐면 이 사건이 훗 날, 골고다 언덕 십자가 사건을 예표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목 제물이 되셨다. 예수님의 보혈은 저주받은 에발 산을 은혜의 갈보리로 바꾸어 준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보혈로 만나주시는 곳은 더 이상 저주의 땅이 아니다. 


영적 하프타임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냥 말씀 보고 쉬다가 다시 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혈에 푹 잠기었다가 나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지치고 힘들 때 반드시 십자가 앞으로 나아와서 보혈의 은혜를 새롭게 체험해야 한다. 그래야 진짜 회복과 치유가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예수 보혈의 은혜, 제사를 드린 뒤에 율법의 말씀을 돌 위에 기록한다. 다른 왕들과 여호수아의 차이점이다. 다른 왕들은 그들의 업적을 남기기 위해 큰 비석을 세웠다. 광개토대왕릉비나 이집트의 피라미드처럼 말이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새겼다. 승리가 자신의 힘이 아니라 말씀으로 인함이었음을 선포하기 위해서였다. 승리를 선포할 때 이것은 우리의 업적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승리한 뒤에 잘해야 한다. 약속의 땅에서 승리보다 중요한 것은 이 것이 말씀에서 왔다는 것을 아는 것이었다. 그래서 늘 그 근원 되는 말씀을 묵상하고 암송하는 것이 중요하다. 돌에다 말씀을 새기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새겨지는 말씀을 다 집중해서 보았다. 이스라엘 백성은 돌에 말씀을 새겼지만 우리는 마음속에 말씀을 새겨야만 한다. 


마침내 말씀이 다 준비되자 여호수아는 백성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다. 그리고 그들을 북쪽의 에발산과 남쪽의 그리심 산에 서게 했다. 두 산 사이에 있는 세겜 골짜기에 리더십들이 언약궤 쪽을 향하여 서게 했다. 구약 성경 신명기에 나오는 중요 구절들을 거의 다 낭독한 것으로 보인다. 반나절 이상은 족히 걸렸을 거라는 말이다. 그런데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 집중하여 이 말씀을 듣는다. 특히 리더십들은 더 가까운 곳에서 이 말씀을 들었다. 영적 권위는 말씀에서 오기 때문이다. 부모가 말씀을 가장 앞장서서 들으면 자녀들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이 주신 권위가 생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 안에서 쉼을 가진 것을 보면 우리 삶의 우선순위도 어디에 두어야 하는 지를 알 수 있다. 그들은 전쟁 중이다. 사방이 적이었다. 가나안의 민족들이 보낸 스파이와 복병들이 언제 어디서 그들을 공격할지 몰랐다. 우리는 전쟁같이 힘든 삶을 산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정말' 전쟁 중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그 와중에 모든 액션을 멈추고 말씀에 집중했다면 우리는 말할 것도 없이 말씀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더 바쁘고 더 긴장되고 더 힘든 사람이 있을까. 


바빠서 말씀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은, 도가 지나친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이상으로 바쁜 것이다. 지금 지치고 피곤해서 말씀을 들을 여력이 없다면, 다른 곳에 힘을 너무 많이 쓰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나 너무 바빠서 차에 기름 넣을 시간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당장은 아무 일이 안 생기겠지만, 한 밤중에 원치 않는 장소에 원치 않는 시간에 차가 딱 서버릴 것이다. 우리의 삶이 이 원리와 결코 다르지 않다. 영혼에 충분한 하늘의 안식을 공급하지 않는다면 외부에서 오는 압박에 어느 날에는 멈춰 서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시 가운데서도 말씀 앞에 섰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사람의 말 백만 마디가 주지 못하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말씀 안에 들어가야 한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지혜와 능력이 이 말씀 속에 있음을 믿어야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이해와 위로와 공감이 있고, 세상이 알려주지 않는 진정한 형통과 성공의 길이 말씀 안에 있다. 한 시간 집중해서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가 인간적으로 백 시간 발버둥 쳐도 안 되는 일들이 풀리는 역사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삶이 바쁘고 복잡할수록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 영적인 하프 타임의 핵심은 십자가 보혈 안에 있는 말씀을 붙잡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완전하다. 사실 이 신명기 말씀은 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었던 말씀이다. 약속의 땅에 들어오기 전에 모세를 통해 한번 들었었다. 그런데 아까도 말했듯이, 상황이 두 달 사이에 많이 변했다. 그때 듣는 말씀과 지금 듣는 말씀은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약속의 땅을 정복하는 것이 장난이 아니구나, 실전을 치르고 말씀 앞에 선 그들의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이다. 이전에는 설렁설렁 졸면서 들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달라졌다. 실전을 치른 군인들은 작전 브리핑할 때 졸지 않는다. 지금 거론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자신의 생사가 걸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두 개의 전쟁을 치러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고난과 생사가 이 말씀 안에 다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말씀이 자신들의 현실을 해석해주고 있음을 알았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떨어질 때 주목해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 말씀에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휘감겨 돌아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유대인들이 그래서 안식일 날 세 가지를 한다. 그들은 과거 지나간 한 주를 돌아보고 말씀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묵상하고 다음 주 한 주를 계획한다. 따라서 이 말씀은, 나랑 동 떨어진 상관없는 말씀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비춰주는 살아있는 레마의 말씀인 것이다.


목사님들도 그렇다. 성경을 많이 읽고 묵상하는 분들이지만 자신의 목회를 시작하고 일 년의 시간이 지날 때마다 시편과, 바울의 목회 서신과 같은 모든 성경말씀들이 살아서 다가온다고 간증하신다.


이 말씀을 잘 쏙쏙 흡수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 밭을 잘 일구어야 한다. 항상 그 상태를 잘 유지해야 한다. 우리의 내면세계에서 하나님과 함께 평화롭게 거니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때 우리와 거니시면서 우리의 상처도 싸매어 주시고 위로도 해주신다. 하늘의 지혜도 주시고 칭찬도 해주시고 꾸짖기도 해주신다. 방향을 제시해 주시기도 하고 비전을 제시해주시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의 내면세계는 아주 민감한 곳이라서 잘 가꾸지 않으면 금방 황폐해질 것이다. 


잠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영어성경에서 생명의 근원은 'Wellspring'으로 생명수라는 뜻이다. 마음을 지키라는 것은, 누군가가 우리 마음을 계속 공격하려 한다는 것과 같다. 누가 공격하겠는가. 마귀가 공격한다. 세상 권세를 잡고 있는 마귀가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을 공격해온다. 누가 대놓고 나 마귀가 공격했다고 하는가. 마귀는 우리가 자주 보는 티브이, 잡지, 모든 것을 통해서 모르게 우리의 마음을 공격한다. 수많은 사람들과의 잡담과 광고와 눈에 걸리는 모든 것을 통해서 들리는 모든 것을 통해서 끊임없이 음란과 욕심과 탐욕을 집어넣고 있는 것이다. 금방 우리 내면세계를 황폐하게 만드는 미세먼지와 쓰레기들이다. 우리 마음의 정원을 항상 질서 있게 가꾸지 않으면 하나님이 거니실수가 없다. 주님의 임재가 함께 거닐지 않는 내면세계는 유령의 집처럼 변해버릴 것이고 이렇게 나약한 내면세계를 가지고서는 겉으로 보이는 삶이 아무리 멋져 보여도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크고 웅장한 건물도 기초 공사가 부실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듯이, 사람 또한 작은 공격만 받아도 무너져버리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 조그마한 일 하나 생기면 덜컥 자살해 버리고, 불륜을 저지르고 도박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인 하프타임이 필요한 것이다. 영적인 하프타임은 우리가 단순히 하와이 놀러 가서 즐기는 시간과는 차원이 다르다. 하프타임은 멈춰 서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서버리는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서버리기 전에, 쉼표를 찍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것, 그것이 영적 하프타임이다. 


스피드와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예전보다 더 잘, 편리하게 살게 되었지만, 말씀을 읽지 않아도 웃고 감동받을 수 있는 가짜 유흥거리들이 많이 생겼기에 그것이 진짜라고 생각하며 하루, 또 하루를 그냥 넘어가고 있다. 삶의 여유가 사라졌기에 일 하고 쉬기에 바쁘다. 그렇게 내면은 메말라 가는 것이다. '묵상'이라는 영어단어의 어원은 라틴어인데, 그 어원의 뜻은 흐르는 물에 영상을 비춰 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유속이 조금이라도 빨라지면 영상은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 영상을 보이려면 물을 멈춰야 되는 것이다. 방금 막 뛰어온 사람하고는 바로 대화가 되지 않는다. 숨을 고르고, 물이라도 한 잔 마신 뒤에나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하다. 하나님과 깊이 있는 영적인 하프타임을 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용기를 내기를 강력히 추천하다. 하나님과 매일 깊이 있게 대화하는 일을 권하는데 어쩌다 용기까지 필요해졌는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조금씩 더 바빠지고 있는 세상에서 용기 있게 스마트폰을 끄고 세상의 소리를 끄고 성경 앞으로 다가가 앉아야 한다. 오늘 응답이 없어도 내일, 내일 응답이 없어도 그다음 날이면 아니, 어느 순간 하나님의 세밀한 목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침묵과 고독의 시간이 쉽지는 않다. 알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께 묵상하는 시간이 익숙하지 않아서 불안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야 하나님과의 대화가 시작된다. 하나님 음성을 좀 듣고 싶은데 안 들리는 이유는 내가 너무 시끄러운데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명심해야 한다. 세상의 소리를 죽이고, 성령을 초대하고 숨 고르기를 해야 한다. 우리 내면의 정원에 어질러져 있는 것들을 성령께서 정리하실 때 옆에서 함께 시간을 내어 도와야 한다. 그 후에 왕들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함께 거닐어 주실 것이다. 


말씀이라는 씨앗의 품질은 변함없다.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다. 어디에 뿌리든 파워풀하게 열매 맺을 것이다. 밭이 중요하다. 좋은 밭에 떨어져야 한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나 피폐한 곳에서 계속 일하고 생활하다 보면 내면 속에 떨어진 말씀의 씨앗이 뿌리를 내릴 수가 없다. 말씀이 열매를 맺지 않으면 주의 능력이 우리 안으로 흘러들지 않는다. 상처가 치유받지 않은 채로 그냥 가야 한다. 능력을 채우지 못했는데 또 일해야 하는 것이다. 재앙이다. 더 심각해지기 전에 쉼표를 찍어주신 주님께 순종하여 영적 하프타임을 제대로 보내야 한다. 우리가 스스로 멈추어 서야 할 때도 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때로 브레이크를 걸어주신다. 초대된 그 쉼을 제대로 누려야 한다. 사업이 망하기도 하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갑자기 병에 걸리기도 한다. 천지가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깜깜 해지는 때가 있는데 너무 당황하지 않아도 된다. 그 시간이 하나님 쪽에서 볼 때는 영적 하프타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홍 목사님의 삶에도 하프타임이 있었다. 목사님은 본래 일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셨다. 여행을 가도 계획을 세워 그 지역의 괜찮은 곳에서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 사명감을 가진 사람이라, 가족들이 다 피곤해한다고 하셨다. 부목사 시절에는 월요일날 놀아본 적이 없이 이런저런 사역을 하며 시간 나면 책까지 써가며 바쁘게 사셨다고 한다. 하루를 25시간처럼 살았기 때문에 지나가다 돌도 누워있으면 세워놓고 갈 만큼 게으른 것을 두고 볼 수 없으셨다고 한다. 그렇게 몸을 돌보지 않고 열심히 뛰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인 줄 알았다고 하셨다. 그런 목사님께 12년 전 심한 안면마비가 찾아와 석 달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쉬시는 사건이 있었다. 얼마나 답답한지 속이 다 상했는데, 나중에 지나고 나서야 그 시간이 축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셨다고 한다. 목사님은 그 3개월의 시간 후에 성령 세례를 새롭게 받으실 수 있었고, 그때 깨달은 것을 바탕으로 현재는 영적 과부하가 걸릴 것 같을 때 스스로 한걸음 뒤로 물러나 숨 고르기를 한다고 하신다. 일주일에 하루, 분기에 며칠씩 기도원에 가기도 하고 묵상의 시간을 가지면서 내면세계 아주 깊은 곳까지 주님께서 들어오셔서 다스리실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내어드린다고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주시고 지친 것은 어루만져 주신다고 한다. 답답한 상황을 헤쳐나갈 지혜도 주신다고 한다. 


우리의 내면세계가 정돈되어있고 항상 열려있다면 주님은 언제나 오신다. 그분이 말씀하시면 우리는 들으면 된다. 그분이 문을 두드리시면 우리는 마음의 문을 열면 되는 것이다. 그분이 말씀의 씨앗을 심어주실 때 우리는 좋은 내면의 밭을 오픈해 드리면 되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발버둥 치는 것을 멈추고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만지시도록 내어드릴 때 우리 인생에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수영을 정말 잘하는 사람은 물과 싸우는 사람이 아니다. 물이 가진 에너지를 이용해서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이다. 


성경의 위대한 영웅들은 하나님과의 깊이 있는 하프타임의 비밀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다니엘은 십 대 때부터 이방 나라의 정권이 두 번 세 번 바뀌는 동안 80세가 되기까지 고위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발했던 사람이었다. 그를 몰아내려는 술수와 온갖 모함이 가득했지만 그는 100배는 더 출중했다. 왜? 그는 하루에 세 번 영적 하프타임을 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를 따라갈 자가 없었다. 하나님의 깊은 임재가 그를 통과하여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까지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최고 권력자였지만 왕궁에서 천년 왕으로 있기보다 주님의 장막에서 하루 문지기로 있는 것을 더 사모했던 사람이었다. 다윗이 가진 강렬한 예배자의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축복하셨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도 그러셨다.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아무리 바빠도 새벽 미명에 일어나 한적한 곳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영적인 하프타임을 놓치지 않으셨다. 


지금, 나에게 영적인 하프타임이 필요하진 않는가? 혹은 이미 하프타임을 가지고 있는가? 폭풍 같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잔잔한 내면세계의 파워가 필요하다면 우리가 향할 곳은 주님 품밖에 없다. 주님만이 나의 내면세계를 온전하게 회복시켜주시고 채워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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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HjON62K9_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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