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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therine Jun 07. 2020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한 결과

여호수아 9:1-27 한홍 목사님

고후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뭘까, 하나님은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계신 걸까, 하나님이 궁금하다.


나치 독일과 일본을 물리치기 위해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소련의 스탈린과 손을 잡는다. 무서운 기세로 뻗어나가는 공산당의 붉은 물결을 보며 사람들은 경악했지만 루스벨트는 '이 다리를 건널 수만 있다면 악마와도 손을 잡겠다'라고 말하며 그 연합전선을 정당화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너무 위험한 동거였다. 연합군의 승리로 전쟁은 끝났지만, 스탈린의 소련은 순식간에 동유럽과 중국, 중남미 곳곳으로 번져나갔고, 60년대 초반에는 레닌이 예언했던 데로 세계 지도의 2/3가 붉은 깃발로 물들 정도로 공산화의 파급속도는 엄청났다. 우리 인생도 바로 앞의 난국을 처리하기 위해 잡지 말아야 할 손을 잡는 경우가 있다. 당장 상황이 너무 어렵고 또 상대의 속임수가 너무 그럴듯해서 그랬겠지만 나중에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지혜와 능력의 사람 여호수아도 오늘 본문에서 그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이성 전투에서 다시 승리하고 에발산 앞에 가서 영적인 하프타임을 가졌다. 가나안 전쟁 초반에 하나님은 영적 숨 고르기를 하게 하셨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말씀과 기도로 다시 재충전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 영적 하프타임을 제대로 보내면 어떠한 세상의 시련도 이겨낼 힘이 생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발 산에서 말씀을 들을 때 산 밑에서는 그들을 향한 무서운 공격이 준비되고 있었다. 


1 이 일 후에 요단 서쪽 산지와 평지와 레바논 앞 대해 연안에 있는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들이 이 일을 듣고

2 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맞서서 싸우려 하더라


가나안 사람들이 그렇게 사이가 좋은 관계는 아니었지만 이스라엘이라는 막강한 적 앞에서 순식간에 연합군을 결성한 것이다. 지금까지 개별적으로 적들을 상대해 온 이스라엘은 이제 강력한 동맹군의 공격을 받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적으로 무장하고 승리하며 전진하면 어둠의 세력들이 더 무서운 공격을 준비하여 반격해온다. 그래서 은혜를 받고 현실세계에서 어려운 일을 직면할 것이라는 것을 각오하고 준비해야만 한다. 


한 자리에 모인 가나안 리더들은 이스라엘을 상대로 전략회의를 했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히스토리를 공부했을 것이다. 애굽에서 어떻게 탈출했고, 광야에서 40년을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요단강은 어떻게 도하했는지를 공부하면서 이스라엘의 허와 실을 찾아 빈틈을 노리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회의가 끝날 때, 다른 부족들과는 다른 결론을 내린 부족이 있었다. 그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싸울 상대가 아니라 화친을 맺을 상대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거대한 히위족속 안에 포함되어있었던 이들이 다른 부족들과는 달리 화친조약을 맺겠다고 독자노선을 택한 것은 상당히 독특한 일이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한 왕의 독재정치 체제를 가진 다른 가나안 민족과는 달리 기브온은 장로들과 평의원들의 결정을 따르는 민주체제를 가졌었기 때문이다. 3절과 11절에 보면 '우리 주민이' 결정하였다 라는 표현들이 나온다. 다른 나라들은 왕들의 이기심으로 무모한 전쟁을 많이 하면서 백성들이 희생하는 일이 잦았지만 기브온은 지혜로운 원로들이 모여 합리적인 의견교환을 통해 일을 진행했기 때문에 무모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정면 승부를 하기보다는 화친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기브온은 결코 나약하고 힘없는 국가가 아니었다. 힘이 있는 나라였다.


10:2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


영어성경에 보면 'all its men were good fighters'라고 나온다. 주민들은 모두 전쟁에 능한 전사들이었다. 강한 전투력을 가진 곳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강한 주민들이 왜 싸워보지도 않고 화친하겠다는 결론을 내렸을까? 강자만이 진정한 강자를 알아보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넘을 수 없는 이스라엘의 저력을 실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냉정하게, 싸우지 않아야 할 때는 싸우지 않는 것이 백성을 위한 길임을 이들은 알았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브온의 지도자들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좋은 판단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결론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어려운 난제였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의 모든 민족을 진멸하고 이 곳을 정복하러 온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여리고성과 아이성을 잿더미로 만들며 행군해오고 있는 민족이었다. 이들이 쉽게 기브온과 화친하려 할리 만무했다. 그래서 기브온은 첩보전에 들어가 모든 정보를 샅샅이 뒤지다가 기가 막힌 정보를 하나 알아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움직이는 정신적인 지주인 모세의 율법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보며 연구하다가 중요한 원리를 발견해 낸다. 

말씀에, 모든 가나안의 적들은 진멸해야 하지만 가나안과 멀리 떨어진 성들과는 화친해도 좋다는 명령을 발견한 것이다. 이 중요한 정보를 접하고 기브온이 방향을 잡은 것이다. 


그들은 배우급의 사람들을 모집하여 위장술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촘촘한 경계망을 펼치지 않고 있었다. 이 실수가 앞으로 나올 치명적인 실수의 단초가 되었다. 


눅 16:8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믿음이 없었던 이들의 교활함과 부지런함이 믿는 자들보다 뛰어남을 예수님도 칭찬하신 적이 있다. 


7 이스라엘 사람들이 히위 사람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에 거주하는 듯하니 우리가 어떻게 너희와 조약을 맺을 수 있으랴 하나


반면, 여호수아와 장로들이 처음부터 호락호락하게 의심 없이 넘어간 것이 아니었다. 영어 성경에 보면 'perhaps you live near us.'라고 나온다. '너희들 우리 근처에서 온 것 같은데?' '너희들 진멸 대상인 것 같은데?' 의심한 것이다. 직감이 정확했다. 지도자로서 그들은 당연한 경계심을 발휘한 것이다. 문제는 이 경계심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한 데에 있다. 이스라엘이 이 정도 경계심을 보일 것이라는 것은 기브온도 예측하고 있었다. 그들은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의 옷과 음식이 먼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헤어지고 상했음을 어필했고,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까운 과거를 추앙했으며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왔다고까지 말했다. 우상숭배를 하는 가나안 민족들 과는 다르다고, 같은 하나님을 믿는 형제들이라고 이스라엘의 닫힌 마음의 빗장을 두들겼다. 여기서 우리는 조심하여야 하는 사람들의 유형을 알 수 있다.


1. 자신을 지나치게 낮추고, 덮어놓고 사장을 높이는 사람들.

2. 항상 논리 정연하게 말을 하는 사람들

3. 하나님의 이름을 파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 기브온 사람들은 이 모든 전략을 이용해 여호수아의 명민함을 흔들어 놓았다. 그들이 정말 그렇게 먼 곳에서 온 사람들이라면 왜 이렇게 조급하게 화친을 맺으려 하는 것인지 물었을 수 있다. 또 이렇게도 물었을 수 있다. 그렇게 먼 곳에서 온 사람들이라면, 당신들의 옷이 헤어질 것을 예상하지 못했느냐고 말이다. 음식이 떨어질 것을 대비하지도 않고 중간 상인들을 찾지도 않은 채 길을 떠났느냐고 말이다. 이런 준비도 없이 떠나는 사절단이 어디 있냐고 그들에게 유도심문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의 빗장이 다 풀어져 있었다. 그들은 너무나 쉽게 화친 문서에 도장을 찍어주고 말았다. 


명민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어이없이 넘어가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는 제삼자의 입장에서 이들에게 질타의 시선을 쉽사리 던질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이것인데, 바로 그들에게 존재했던 인간적인 외로움이다. 애굽에서 노예생활 400년, 광야생활 40년 그리고 가나안 땅에서 전쟁을 치르면서 보낸 이 시간 동안 이스라엘은 그 어떤 민족으로부터도 나이스 한 대접을 받은 적이 없었다. 애굽에서는 짐승과 같은 취급을 받았고 광야생활 때는 아말렉에게 급습당하고 에돔 민족에게 길을 거절당했다. 온갖 구박과 무시, 적대시하는 대접을 받아온 것이다. 유대인들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집시와 같이 구박받고 천대받는다. 그런 이들에게 친구가 되겠다는 이들이 덜컥 찾아온 것이다. 게대가 먼지방에서 찾아왔기 때문에 하나님이 진멸하라고 하신 리스트에도 없는 민족인데, 거기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왔다고까지 얘기하며 불쌍해 보이기까지 한다. 겸손하고 따뜻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가온 것이다. 긴장이 확 풀린 것이다. 


목사님이 14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을 때도 주위에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났었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 간 교포 청소년들이 종종 현지 백인이나 흑인 갱에 들어가 어울리다가 범죄 행위에 휩쓸려 경찰에 체포되고 신문에 대서특필되는 사례들. 그들은 범죄가 좋아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외로워서 들어간 것이다. 낯선 미국 땅에서 부모들은 다 일하느라 정신없고 어리둥절 해 있는데 갑자기 한 무리가 와서 잘해주는 것이다. 많은 조직들이 자기들을 가족이라 부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다 외롭고 힘든 청소년들을 데려와서 새로운 가족에 넣어주며 범죄의 길로 빠지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들도 세상을 살다 보면 외롭고 힘이 들 때가 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하나님을 믿어도 세상에서 왕따 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누구에게나 그렇듯 우리에게도 있다. 세상적인 방법으로, 친구들의 방법으로 외로움을 해소하고 싶고 그들 가운데 속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귀는 결정적인 순간에 그 마음을 역이용한다. 외로우니까 손을 잡으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외롭고 힘들 때일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 아무 손이나 붙잡으면 안 된다. 그러면 기브온의 손을 너무 쉽게 잡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된다. 외로워도 주님의 손을 잡고 견뎌야 한다. 외로움의 해결책으로 이상한 손을 잡으면 더 큰일이 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쉽게 넘어갔던 이유는 그들이 눈에 보이는 객관적인 정황으로만 상황을 판단했다는 데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탐사팀은 기브온 사절단의 모든 물건과 행색을 살펴본 뒤 여호수아에게 보고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본 결과, 그들의 말과 다른 점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을 것이다. 범죄자들, 사기꾼들 일수록 알리바이가 정확한 법이다. 논리가 정확하다. 그래서 노련한 형사들은 알리바이가 너무 정확하면 오히려 더 의심한다고 한다. 너무 상황이 매끄러울 때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인 방법이 아닌 과학적인 방법을 의지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논리적이고 타당성은 성립되었지만 핵심은 놓친 것이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항상 떨어진다. 인간관계 자신 있다고 생각하는가? 뒤통수 맞을 때가 있다. 머리 좋다고 너무 자신 있어하면 안 된다. 그 머리 때문에 속을 것이다. 마귀는 항상 자기 자신을 과신하는 사람을 노린다. 눈에 보이는 상황만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쉽게 판단하려는 교만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상황을 판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브온 부족에게 속아 넘어간 가장 결정적인 이유, 그것은 기도하지 않아서 그렇다. 


14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는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이게 결정타였다. 기브온의 계략이 아무리 감쪽같았다 할지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리 외롭고 힘든 상황이었다 할지라도, 마지막 도장 찍기 전에 기도만 했더라면 하나님이 알려주셨을 것이다. 그러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신다. 문제의 중앙에 서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문제의 핵심을 뚫어 볼 수 있는 분별력을 허락해주실 것이다. 


약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구하라, 그리하면 주신다. 안 구하면? 안 주신다. 작고 부족한 인간의 지혜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가? 사태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찬스를 날려버리고 본인의 뜻대로 움직이고 싶은가? 여호수아가 실수를 두 번 저지르는데 한 번은 아이성의 패배이고 나머지 하나는 기브온과의 화친이다. 공통점? 두 번 다 여호수아가 기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패가 가장 가까이 온 순간은 성공한 직후이다. 교만과 자만이 하나님으로부터 나를 가장 멀리 떨어 뜨려 놓는 장애물인 것이다. 준비가 아무리 완벽해도 기도가 빠진다면 하나님의 사람은 그때가 가장 약하다. 마귀는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빈틈을 정확하게 찾아서 치고 들어온다. 기도했더라면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을 메꿔주셨을 것이다. 기도했더라면 하나님은 적의 강점을 무너뜨려주셨을 것이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아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열심히 한다고 세상이 다 되는 것인가? 이스라엘 백성들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이렇듯 우리가 정말 열심히 살더라도 기도하지 않는다면 정말 중요한 핵심은 모르는 수가 있다.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포인트를 모르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안갯속을 운전하듯이 시야가 가려진 상태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기도하지 않고 결정하면 낭패를 볼 수 있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결정의 순간들은 많이 다가온다. 기도해야 한다.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기도응답의 축복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데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대부분 모른다. 기도하면 보여주실 크고 은밀한 일을 아는가? 우리가 마귀의 계략을 알고 있는가? 교활하기 이를 데 없는 마귀의 속내를 훤히 보고 있는가? 하나님의 놀라운 미래의 섭리를 알고 있는가?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왜 기도하지 않고 결정하는가. 기도응답의 축복은 우리가 모르는 크고 은밀한 일을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데 있다. 현실이 답답하고 미래가 불안하거든 결사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그 수밖에 없고, 다행히 그 방법이 제일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한계를 넘어서게 하는 힘은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영역이다. 우둔한 자가 명민하게 움직일 힘도 오직 기도로 얻을 수 있다. 안개 같은 미래 속으로 흐트러짐 없이 인도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다. 인생의 모든 크고 작은 결정들 가운데 열심히 기도 함으로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을 것을 결단해야 한다. 


결정을 잘못하면 리더십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여호수아가 찍은 도장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기브온의 거짓말이 들통난 것이다. 왜냐하면 고대 국가에는 화친 조약을 맺은 당국들이 서로 상대국을 친선 방문하여 조약의 세밀한 조항들을 확정하는 관례가 있었기 때문에 여호수아의 사절단들이 장거리 여행 채비를 하고 길을 따라나섰는데 이틀도 안 가서 도착한 것이다. 불과 40km도 안 가서 웅장한 기브온의 성 앞에 도착한 것이다. 사절단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그 보고를 받는 여호수아와 지도자들도 자신들이 너무 한심해 보였을 것이다. 이렇게 어이없이 속은 것에 한탄스러웠을 것이다. 마귀의 속임수는 심오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화려해 보이는 마술도 언제나 그 비밀은 시시하듯이 마귀의 속임수도 항상 그 뚜껑을 열어보면 뻔한 함정인 것이다. 마귀의 속임수 중에 성경에 안 나온 것이 있는가? 하나님이 경고해 주지 않은 공격 패턴이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경계했더라면 당하지 않았을 텐데 넘어진 것이다. 놀라서? 문제가 어려워서? 아니다. 우리의 영혼이 방심했고, 지쳐있었고, 교만했기 때문이다. 기도하지 않아서 뻔히 눈뜨고 당한 것이다. 


18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도자들을 원망했다고 나온다. 이 원망은 광야에서 했던 반역의 원망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영적 권위가 이미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올려 들려야 할 영광을 못 올려드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기브온과의 화친은 너무나 큰 아픔을 이스라엘에게 안겨주었다. 여호수아는 이때부터 이미 엎질러진 물을 수습해야 했다. 중요한 것은 비록 기브온에게 속아서 맺은 조약이었지만 다시 이 조약을 엎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조약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희에게 평화를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속을 할 때, 언약을 할 때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사 55: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브온의 악한 문화가 그들에게 영향을 줄 것을 대비하여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21 무리에게 이르되 그들을 살리라 하니 족장들이 그들에게 이른 대로 그들이 온 회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었더라

22 여호수아가 그들을 불러다가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어찌하여 심히 먼 곳에서 왔다고 하여 우리를 속였느냐

23 그러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나니 너희가 대를 이어 종이 되어 다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가 되리라 하니


이스라엘 족장들은 그들을 종의 신분으로 화친하도록 하였고 여호수아는 하나 더 나아가 그들이 하나님의 집, 성전을 위하여 일하는 자들이 되게 하였다. 어차피 살려야 한다면 이들이 이스라엘을 타락시키기 전에 우리가 이들을 성화시키자는 의도였던 것이다. 그래서 특히 하나님의 성소를 섬기는 자가 되게 하여 제사장들과 접하며 예배를 배우게 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위험할 수도 있는 도박을 한 것이다. 그렇지만 수백 년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다. 여호수아의 계획이 성공한 것이다. 예배를 섬기는 레위지파의 성읍이 기브온 영토에 있었다. 나중에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렸던 장소도 기브온의 땅에 있었다. 훗날, 이스라엘이 망하고 성전도 무너지고 바벨론의 포로로 많이 끌려갔다가 다시 귀환한 무리들 중에 500명의 기브온 사람들이 돌아왔다. 그들은 돌아와 봤자 종이 될 것이면서도 굳이 돌아와서 다시 성전을 짓는 일에 동참했다. 이 모든 역사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브온 사람들이 처음에는 살기 위해 거짓말로 이스라엘 안에서 살게 되었지만 그래서 마지못해 하나님의 성소에서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자가 되었지만 점점 진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해져 간 것이다. 세월이 지나며 진짜 하나님의 성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 간 것이다.


하나님이 반전은 이처럼 멋있다. 속여서 화친을 맺은 기브온의 잘못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었다. 그렇지만 기도해 보지도 않고 화친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도 분명 경솔했다. 둘 다 잘못했기 때문에 가만두면 둘 다 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둘 다에게 새로운 회복의 역사를 주셨다. 하얀 도화지에 실수로 사람들이 물감을 엎질렀는데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주신 것이다. 


나의 실수로 삶이 망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오면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잘못해서 잡지 말아야 할 손을 잡아서 인생이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되는가? 기도하지 않고 경솔하게 결정한 것 때문에 삶이 엎질러졌다고 생각하는가? 절대로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이끌어 내실 것이고 엎질러진 물감으로 더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하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을 다시 회복시키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의 손에 모든 시간을 의탁해야 한다.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https://www.godpeople.com/?GO=tv_detail&tv_mv_no=13675

https://www.youtube.com/watch?v=0FhiduxAc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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