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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therine Jun 05. 2020

하나님의 전략으로 승리하다

여호수아 8:1-29 한홍 목사님

아이성의 사기는 하늘 찌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패배의 기운에 사로잡혀 있었다. 전쟁 초기에 승기를 빼앗긴 여호수아는 같은 장소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격시키기 위해 본인부터 패배의 절망감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실패를 하면 보통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실패를 다시 저지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실패를 묵상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실패의 정신적 노예가 되는데, 트라우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실패를 두려워하다가 반복적으로 엎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실패를 빨리 딛고 나오는 게 중요하다.


온전하게 실패를 벗어날 힘은 우리 안에 없다. 오로지 주님께서 말씀으로 그 일을 가능하게 하신다. 


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의 땅을 다 네 손에 넘겨주었으니


여리고 성 정복 전에 사랑하는 여호수아에게 주셨던 말씀이었다. 아이성 패배로 낙담해있는 여호수아가 지금 '꼭' 들어야 할 말을 해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 잘 아셔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말씀을 해 주신다. 그 말씀을 들으면 힐링이 된다. 격려가 된다. 힘이 솟는다. 그래서 삶이 힘들수록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도 실패할 수 있다. 인간인데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다음이 중요하다. 실패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그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인가를 나타낸다. 누가 일부로 지려고 전쟁하겠는가. 누가 일부러 지려고 전쟁에 나가겠는가. 다 최선을 다했는데 무너지고 틀어진 것이다. 여호수아처럼, 여호와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라면 실패를 돌아보며 그 문제 가운데 도사리고 있는 내부의 죄를 정확하게 회개하여야 한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격려해주시고 다시 일으켜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징계는 하셔도 우리는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 이미 벌어진 실패는 얼른 잊어버리고 주님께서 주신 두 번째 기회를 어떻게 잘 따를 것인지 말씀으로 준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다시 일으키시고 아이성으로 돌아가라 하신다. 여호수아는 할 수만 있다면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은 실패의 자리, 패배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한다면 다른 곳에 가서 시작하고 싶은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전략으로 다시 해보라고 하신 것이다. 운전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교통사고가 난 후에는 트라우마 때문에 운전대를 바로 다시 잡기가 너무 힘들다고 한다. 그러나 일주일 안에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트라우마가 점점 커져서 평생 운전을 못하게 될 확률도 있다고 한다. 아이성의 패배는 쓰라렸지만 빨리 아이성으로 돌아가서 극복해야만 했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웨슬리는, 영국 전역을 활발히 돌며 야외 집회를 통해 수백 만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 목사님이다. 그를 통해 수 십만의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왔다. 그런 그도 젊을 때 미국에서 목회 사역에 크게 실패한 적이 있었다. 영국으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목회를 그 만둬야 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새로운 사람들을 붙이시고 다시 성경공부를 하며 성령사역에 눈뜨게 하셨다. 만약 웨슬리가 하나님의 격려를 무시하고 다시 목회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기독교 역사에 큰 마이너스가 되었을 것이다. 실패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 하나님 나라에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기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손을 잡고 아이성으로 데려가셨다. 하나님과 함께 라면 괜찮다.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의 능력을 구함으로 패배의 기억을 극복할 것이다. 그렇게 패배를 승리로 바꾸어야 우리는 약속의 땅 전쟁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교만하여 삼천 명만 투입했던 아이성 전투에 이스라엘 백성 전군을 투입시키신다. 60-70만 병력을 모두 투입시키신 것이다. 주민이 만 이천 명 밖에 안 되는 콩알만 한 성을 함락하는데 이 많은 인력을 명하신 것이다. 물론 그 병력이 다 필요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금 최선을 다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기브온의 전투 때는 너무 많다고 삼백 명으로 줄이셨던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삼천 명이 너무 적다고 수십만으로 늘리셨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겸손을 가르치고 계시는 것이다. 


2 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가지라 너는 아이 성 뒤에 복병을 둘지니라 하시니

하나님은 아이 성 뒤에 복병을 두라고 심플하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밤새 실시한 전략은 굉장히 복잡하다. 당시 벧엘 성과 아이성은 자매결연처럼 공조 체제로 묶여 있었다. 여호수아는 아이성의 정면에 주력부대와 함께 섰고 3만 복병은 아이성의 서쪽에, 5천 복병은 벧엘과 아이성 사이에 주둔시켰다. 여호수아의 전력은 이러하다. 본대가 성을 공격하여 성 안의 사람들을 최대한 밖으로 유인한 사이, 3만 복병이 비어있는 성을 급습하여 무너뜨리고 그 모습에 다시 아이성으로 돌아가는 병력을 주력부대가 뒤쫓아 궤멸시키는 것. 그리고 벧엘 성에서 진격해오는 구원군까지 5천 복병이 급습하여 그 부대까지 궤멸시키는 것이었다. 이 전략을 위해 여호수아는 밤새 각 포지션에 맞게 군사들을 배치시켰다. 하나님은 심플하게 한 말씀만 하셨는데도 여호수아는 그곳의 지리와 지형을 고려하여 치밀한 군사계획을 세워 실천했다. 


어떤 사람들은 반포대교로 넘어갈까, 한남대교로 넘어갈까, 자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까지도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한다. 이것은 자기를 로봇으로 격하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나님은 심플하게 한마디 하시는 분이다. 그 말씀을 실현시키기 위해 필요한 재능과 능력도 모두 주셨다.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격체로 만드셨지 로봇으로 만드신 게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은 그렇게 세세한 것 하나까지 입력해 넣는 로봇 사용법이 아니라 경기의 흐름을 크게 그려주는 감독의 명령이라 할 수 있다. 감독에게 훈련을 받고 명령을 숙지한 플레이어들은 휘슬이 울리면 경기장으로 나가 자유롭게 뛰어야 한다. 어느 선수가 공이 자기에게 올 때마다 감독을 보는가. 하나님이 큰 그림을 그려주셨다면 여호수아는 그 그림을 근거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승리를 약속받았다고 팔짱 끼고 서있으면 안 된다. 작은 그림들을 그리고 밤새 복병을 배치하며 땀 흘려야 한다. 남들이 하나를 준비할 때 두 개 세 개를 준비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가장 두려운 것은 실패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끝나는 것이다. 때마다 주시는 하나님의 영적 레슨을 뼈에 새긴다면, 우리는 앞으로 참담한 실패를 다시 맛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이성 전투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말 제대로 배웠다. 


10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백성을 점호하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더불어 백성에 앞서 아이로 올라가매


저번 전투 때 전사했던 삼십육 명의 전사들은 최선봉에 섰다 후퇴했던 사람들이었다. 이번에는 여호수아가 장로들과 맨 앞에 섰다. 이 전쟁에서 실패한다면 내가 먼저 죽겠다는 것이다. 비장한 각오를 하고 나간 것이다. 


저번 전투의 승리로 오만해진 아이성 왕은, 천하의 바보도 하지 않을 실수를 하고 만다. 전진해오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전 병력을 이끌고 전면전을 하러 성문을 열고 나온 것이다. 수십만의 대군이 진격해 올 때 더군다나 성의 위치 자체가 요새일 경우에는 성문을 걸어 잠그고 버티는 것이 지혜로운 전략인데 아이성 왕은 벧엘 성에서 오고 있는 구원군까지도 이스라엘 병력을 뒤쫓아 가게 한 것이다. 성을 텅 비워놓는 치명적인 실수를 한 것이다.


18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내가 이 성읍을 네 손에 넘겨 주리라 여호수아가 그의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그 성읍을 가리키니


하나님께서는 전쟁 전에서도 말씀하시지만 전쟁 중에서도 말씀하신다. 일차 전투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지 않지만 여호수아의 회개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이차 전투 때는 계속해서 말씀하신다. 여호수아와 하나님의 관계에 막힘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때는 어떤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이다. 여호수아는 계속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다. 단창은 긴 창이라기 보단, 짧은 칼이다. 지휘봉 같은 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단창을 들어 아이성을 가리키라고 하셨다.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이 성을 여호수아에게 주겠다는 약속도 함께 주셨다. 하나님이 주시기 전까지 그 어떤 성도 우리가 가질 수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지금 아이성이 이기고 있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외신 기자가 가서 이 전투 상황을 보고 한다면, 작은 아이성 병력이 이스라엘 대군을 마지막까지 따라가고 있고 이스라엘 병력은 코너에 몰려 보인다고 했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밀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하나님의 장치였다. 절망의 순간처럼 보이는 그 상황에 하나님은 승리의 약속을 주시며 상황을 반전시키신다. 아이성을 전멸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전략이었던 것이다.


19절 20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세운 작전이 그대로 시행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완벽한 승리였다. 첫 여리고 성 때는 승리가 당연한 것처럼 지나갔었다. 하지만 이 전쟁은 패배의 첫 전투를 만회하는 대승리였다.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감사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밤이 새도록 싸우면서도 그들은 피곤한 줄 몰랐다. 여호수아는 끝까지 전쟁터를 지키고 있었다. 


26 아이 주민들을 진멸하여 바치기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고 


아이성 왕을 죽인 곳에 큰 돌무더기를 쌓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고두고 깨달음을 주었을 것이다. 불순종과 교만으로 맛본 실패의 참담함이 어떤지 기억하고, 회개와 순종으로 거둔 승리의 감사함도 기억했을 것이다. 


여리고성과 아이성을 정복할 때의 하나님의 작전은 달랐다. 여리고 성 앞에서도 기도했듯이 아이성 앞에서도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때마다 승리를 주실 것이다. 과거의 승리에 의존하지도 익숙해지지도 말아야 한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과거의 승리에 도취되면 안 된다. 새로운 전략과 새로운 승리를 위해 나아가야 한다. 


아이성의 실패로 인해 낙담하지 말라. 한쪽 문이 닫히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새로운 문을 열어주실 것이다. 만약 여호수아가 성령의 사람이 아니었다면 회개하고 나서 아이성에 가서 여리고 성 때와 똑같은 방법으로 공격했을 수도 있다.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기에 직감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새로운 전략을 받을 수 있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새로운 전략을 기대해야 한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이성 전투의 패배를 딛고 7년 정복전쟁에서는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실패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위험하다. 나중에 그런 사람이 실패할 때는 정말 회복이 불가능하게 실패할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정결하게 하고 쉽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야 한다. 


https://www.godpeople.com/?GO=tv_detail&tv_mv_no=13296

https://www.youtube.com/watch?v=WdN8ea63Z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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