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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therine Jun 10. 2020

다음 세대에게 주는 숙제

여호수아 13:1-7 & 14:1-5 한홍 목사님

사람에게 있어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이다. 인간은 조금만 힘이 생기면 자기가 무적이라 생각하고, 영원히 자기가 그 자리에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계를 모르고 날뛰다가 자신도 망치고 주변 사람들도 망치는 사람들이 역사에 많았다. 하지만 아무리 위대한 인물도 능력과 세월에 한계가 있다. 어떤 인간도 불사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는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오게 된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은 자기가 아직 힘이 있을 때 자기가 없는 미래를 준비한다. 은퇴하는 여호수아에게도 그런 순간이 왔다. 


1 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


사실 돈독한 친구사이에서도 '많이 늙었다'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쁠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갑자기 이렇게 말씀하시면 얼마나 서럽겠는가, '나도 아는데, ' 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이 말의 뜻은, '여호수아야, 이제 네가 퇴장할 때가 되었다. 그 준비를 시작해야겠다.'라는 뜻이다. 누구나에게 찾아오는 순간이지만 쉽지 않다. 내려가는 것은 올라가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기 마련이다. 이때 여호수아의 나이는 백 세 가까이로 추정되는데 실제로 여호수아가 세상을 떠나는 나이는 백십 세로 기록이 되어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여호수아가 떠나기 십여 년 전부터 준비를 시키신 것이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길갈에 군영을 설치하고 전쟁을 하러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전열을 재 정비하곤 했다. 즉, 승리로 끝난 성이었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길갈로 돌아간 사이에 다시 세력이 살아나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나 무기가 적었기 때문에 승리하는 성마다 주둔시키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 주도권을 잡고 땅을 분배하는 일까지 여호수아에게 맡기신 것이다. 여호수아의 맡은 사명은 여기까지 였다. 이제 분배받은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개척하는 것은 여호수아 다음 세대에게 주는 숙제였다. 그리고 이 숙제가 쉽지 않았다는 것을 역사가 보여준다. 그곳의 부족들을 전부 소탕하기까지 다윗과 솔로몬 시대까지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성경 본문에 보면 여호수아와 더불어 대 제사장이었던 엘르아살과 각 지파의 지도자들이 전부 모여 하나님의 뜻을 받아 땅을 분배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었고, 함께 책임을 갖고 공동체의 분열을 막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왜 여호수아가 살아있을 때 모든 적을 소탕하지 않으시고 각 지파의 다음 세대들에게 개척하게 하셨을까? 첫 번째 이유는, 그들의 현실적인 유익을 위함이었다. 


신 7:2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시리니 너는 그들을 급히 멸하지 말라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를 해할까 하노라


한정된 인력에 비해 큰 땅을 받으면 개간을 잘하지 못하고 들짐승이 다니는 땅이 되어버리니 차츰차츰 세력을 키워가면서 땅을 분배받도록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타이밍은 틀림이 없다. 둘째는, 다음 세대가 영적으로 도전받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다 이루고 넘겨주면 그들은 목표의식도, 위기의식도 도태되어 나태해질 우려가 있었다. 그런데 아직 정복되지 않은 땅이 남아있고 만만치 않은 적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그들이 영적으로 날카롭고 민첩하게 살아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할 것이었다. 우리 삶에 존재하는 어느 정도의 아픔과 고난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살아있게 하려는 주님의 배려이자 은혜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그래야 기도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말씀 보고 주님 앞에 거함으로 영적인 근육이 탄탄해져 가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을 한꺼번에 몽땅 받는 것만이 축복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때는 틀림이 없다. 나를 향한 모든 계획이 정확한 하나님의 때에 은혜로 이루어진 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친구 이상으로 우리의 적 까지도 우리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도록 역사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직 정복되지 않은 땅까지도 기업에게 분배를 했다는 것은 다음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메시지가 들어있다. 주님 주신 약속을 믿고,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을 주실 것이란 약속을 굳게 믿으라는 것이다. 강하고 담대하라는 약속을 믿으라는 것이다. 모세가 가졌던 믿음, 여호수아가 가졌던 믿음이 다음 세대에게로 번져가길 원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구하면 반드시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그들은 믿어야 했다. 동시에 가만히 앉아서 차지할 수 있는 땅은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했다. 약속해 주셨다면 정복해야 하는 것이다.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개척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떡을 줄 것이 아니라 떡을 빚는 법을 알려줘야 한다. 일하는 복지를 물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돌아온 탕자와 같이 거저 주어진 물질에 맥없이 휘청이는 인생이 아니라 인생을 걸고 한 시대를 열심히 달려갈 목표와 비전을 심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다음 세대가 땀을 흘리며 실패해보고 문제의 해결을 위해 고통받아볼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직접 하나님을 만나고 성령을 체험하고 거룩한 비전을 실현시켜 나갈 수 있도록 옆에서 격려하는 믿음의 응원자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부모의 사명인 것이다. 


땅 분배에 있어서 중요한 것 하나는, 각자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분배받았다는 것이다.


민 26:5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53 이 명수대로 땅을 나눠 주어 기업을 삼게 하라

54 수가 많은 자에게는 기업을 많이 줄 것이요 수가 적은 자에게는 기업을 적게 줄 것이니 그들이 계수된 수대로 각기 기업을 주되


인구가 많은 지파에게 넓은 땅을 주었다. 그만큼 개간할 면적도, 적으로부터 지켜야 할 면적도 넓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의 세금제도를 보면 땅이 넓으면 더 많은 세금을 요구했다. 남보다 뛰어난 것이 있다면 그것에 거는 하나님의 기대도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겸손해야 한다. '돈은 그 사람의 인격의 무게만큼 가지는 것이 좋다'는 명언이 있다. 땅은, 기업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인격의 무게만큼 받는 것이 좋다. 인구수에 맞게 땅을 분배받았다는 말은, 주신 능력만큼 하나님께서 일을 맡기신 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70의 능력을 주셨다면 100을 기대하진 않으신다는 것이다. 반대로 100을 주셨는데 70밖에 드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직무 유기이다. 훗 날 정말 넓은 땅을 받아놓고 잘 개간하지 못하고 지키지 못해 쫓겨난 지파들이 많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기업을 받을 때 우리는 무거운 책임감을 잊지 말고 항상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세로 나아가야 한다. 


수 14: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의 기업을 제비 뽑아 아홉 지파와 반 지파에게 주었으니


받을 땅의 크기는 인구수대로 결정하시고 구체적으로 어느 위치에 그 면적을 분배할 것인가는 제비뽑기를 통해서 확정하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결정해 주시겠다는 뜻이다. 사실 땅의 면적보다 중요한 것은 위치이다. 강원도 야산의 천 평과 강남 중심의 천 평은 가치가 다르다. 즉, 얼마나 넓은 땅을 받았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느 목에 있는가, 어느 위치에 있는가 였다는 것이다. 불만과 불평이 터져 나올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아시고 거기에 더하셔서, 각 지파의 재능과 능력에 적합한 땅을 선물로 주셨다. 선물이란 것이 그렇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 맞는 것을 주어야 제격인 것이다. 하나님은 열 두 지파의 특성을 너무나 잘 고려하셔서 땅을 분배해주셨다. 


가나안 땅은 갈릴리 호수에서 물을 끌어올 수 있는 북쪽, 위로 올라갈 수 록 비옥한 땅이었다. 그래서 그쪽은 평화롭고 부지런하게게 목축과 농업을 잘하는 아셀, 납달리, 잇사갈 지파에게 주었다. 특히 잇사갈이 받았던 이스라엘 평야는 우리나라의 호남평야와 같이 곡창 지대이다. 


그 가운데 끼어있는 스불론은, 우리나라로 치면 개성상인들처럼 뛰어난 상인들이 많았던 지파였다. 그래서 스불론은 이 주변의 농산물과 생산품들을 가지고 지중해와 갈릴리 호수를 교통으로 이용해 엄청난 상업을 이루어낸다. 해상무역을 하고 해산물을 취해 조개에서 염료를 얻어 염색업도 발전시키고 바다의 모래를 가지고 유리산업을 하면서 큰 부를 일구어 낸다. 상술에 능한 스불론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단, 유다, 베냐민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전사들이 있는 곳이었다. 유다 지파가 분배받은 땅 중에 지중해와 만나는 구석에 블레셋 족속이 끝까지 남아서 살고 있었다. 철기 무기로 무장한 블레셋 사람들은 다윗 때까지 저항하며 그 세를 유지하는데 그들의 침략에 계속적으로 맞서 싸울 수 있는 것은 단과 유다와 르우벤과 같은 전사족들만이 가능했다. 만약 이 지역에 아셀과 납달리, 잇사갈 같은 농업에 유능한 사람들이 살았다면 단번에 정복당했을 것이다. 단 지파는 유명한 삼손이 나온 지파로, 유능한 전사부족이었다. 그들의 인구가 많았는데도 적은 땅을 분배받은 것은 그들에게 개척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이들은 저 북쪽까지 올라가 개척하게 된다. 


하나님은 이렇듯 각 지파에게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위치와 면적을 분배해 주셨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확한 인도하심을 허락하신다. 우리에게 주신 기업과 땅을 남과 비교할 게 아니다. 내게 맞는 옷을 주신 것이다. 주님께서 주신 의미가 무엇인지 묵상해 보아야 한다. 오래전 타계한 대천득 신부님 같은 경우는 대도시 목회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영성과 리더십의 소유자였지만 강원도 작은 마을에 예수원을 짓고 평생 성자처럼 살았다. 그러나 그의 삶과 영성은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얼마나 큰 자리, 작은 자리에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우리가 선 그 자리가 내게 맞는 자리인가, 그리고 나의 신실함이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한 명 한 명을 작품으로 만드셨다. 우리는 숫자가 아니고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독특한 은사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다. 우리의 DNA에 넣어놓으신 독특한 하나님의 섭리에 맞게 살아가야 한다.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똑같지는 않지만 공평하다. 그래서 내게 좋은 옷을 입혀주시기보다 맞는 옷을 입혀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괜히 불만족하고 남들보다 못하다고 투덜대지 말아야 한다. 받은 것에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은 보배로운 분이시다. 하나님은 나의 머리카락 수까지도 알고 계신 분이시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가장 적합한 맞춤형 축복을 예비하신다. 실수가 없으신 분이라는 것을 믿고 감사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4 이는 요셉의 자손이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두 지파가 되었음이라 이 땅에서 레위 사람에게 아무 분깃도 주지 아니하고 다만 거주할 성읍들과 가축과 재산을 위한 목초지만 주었으니


레위인에게는 땅을 분배하지 않았다. 그들은 예배를 섬기는 자들이었다. 이들이 세상 기업을 경영하느라고 집중력이 분산되면 안 된다는 뜻이었다. 레위지파들은 농사나 장사에 에너지를 소진하지 않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민족을 영적으로 이끄는 일이 소중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특별해서가 결코 아니었다. 열두 지파 마을 마을마다 레위인들이 흩어져 살게 하셨다. 영적 제사장들인 레위인들과 백성들이 항상 연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그들의 조언을 듣고 기도를 받고 하라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 예배하면서 살아가라는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교회와 가정, 기업이 동떨어지면 안 된다. 어디에 살든 하나님의 사람과 가까이하며 살아야 한다. 


수 19:9 시므온 자손의 이 기업은 유다 자손의 기업 중에서 취하였으니 이는 유다 자손의 분깃이 자기들에게 너무 많으므로 시므온 자손이 자기의 기업을 그들의 기업 중에서 받음이었더라


시므온 땅은 원래 유다 땅이었다. 유다가 나누어 준 것이다. 시므온 지파는 광야 생활 때 반역을 많이 해서 수가 축소된 지파이다. 그런 지파에게 하나님은 처음부터 땅을 주시지 않으시고 많이 받은 유다가 나누어 주는 방법을 택하셨다. 큰 자가 작은 자를 돌봐주라는 뜻이다. 우리의 필요보다 더 많은 축복을 받았다면, 메시지가 있는 것이다. 작은 자를 섬겨주라는 것이다. 과잉 경쟁하지 말고 서로 돕고 살라는 것이다. 내게 주신 기업이 소중한만큼 내 형제에게 주신 기업도 소중하다는 뜻이다. 


고전 12: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직접 돌보시는 게 아니라 여러 지체를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다. 


수 19:49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경계를 따라서 기업의 땅 나누기를 마치고 자기들 중에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기업을 주었으니


최고 지도자 여호수아가 제일 마지막으로 땅 분배를 받은 것이다. 우리가 가진 장유유서로 보면 성립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50 곧 여호와의 명령대로 여호수아가 요구한 성읍 에브라임 산지 딤낫 세라를 주매 여호수아가 그 성읍을 건설하고 거기 거주하였더라


여호수아가 요구하기 전에는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시골 깡촌의 산지이다. 사람이 거주할 수도 없는 곳이었고, 바닥부터 새로 일구어야 거주할 수 있는 땅이었다. 그런 땅을 최고지도자 여호수아가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약속의 땅 7년 정복전쟁의 주역 여호수아가 가장 기름진 이스라엘 평야를 가진 들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러나 여호수아는 가장 마지막에, 가장 힘든 땅을 선택함으로써 리더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를 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내려놓음의 진수였다. 약간의 불만이 있었던 지파가 있었더라도 여호수아의 선택을 보며 찍소리도 못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리더십의 권위이다. 


https://www.godpeople.com/?GO=tv_detail&tv_mv_no=13911


https://www.youtube.com/watch?v=N-HFkJx-Ew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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