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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therine Jun 11. 2020

Christ 그리스도

요1:41/ 마16:16/ 눅24:26-27 한홍 목사님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다른 이름으로, 신약성경에 무려 500번이나 나온 만큼 이름의 의미를 잘 알고, 깊이를 묵상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1: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하고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이것은 예수님께서 막 사역을 시작하시려고 하실 때 안드레가 자기 형제 시몬을 찾아가 한 말이다. 성경이 얘기하는 것처럼, 히브리어 메시아를 헬라어로 번역하면 그리스도이다. 즉, '메시아'의 뜻을 이해하면 '그리스도'의 뜻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뜻은 '기름 부으심 받은 자'라는 뜻이다.


(히브리어) 메시아 = (헬라어) 그리스도 = 기름 부으심 받은 자


구약에서 특별한 사명을 위해 선별하여 세웠다 할 때 기름 부으심 받은 자라고 했다. 영어성경에 이 본문을 보면 Found라는 동사를 이용해서 서술하고 상태를 나타내는데, 바로 우리가 메시아를 '발견했다'라는 것이다. 그것은 애타게 찾다가 발견했다는 뜻이다. 그 당시 안드레뿐만 아니라 모든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다윗의 후손 중에 메시아가 나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옛날 다윗처럼, 오실 메시아가 정치/ 군사적으로 영웅이실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마의 압제를 몰아내고 강대한 유대 왕국의 영광을 다시 실현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메시아를 향한 대중의 기대는 당시 상황이 힘들었기 때문에 점점 더 강렬해지고 있었다. 나라가 망해서 포로로 끌려가 70년 동안 고생하다가 귀환했는데 그 뒤에도 그들은 수백 년 동안 외세의 침략에 유린당했었다. 이제는 로마의 식민지로 신음하고 있는 나라의 현실이 너무 고통스러웠던 까닭에 다윗처럼 정치/ 군사적인 영웅을 간절히 바랬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기대하던 것과는 다른 차원의 메시아로 오셨다. 사람들은 땅의 제국을 바꿀 정치적인 영웅을 원했지만 주님께는 하나님의 나라가 초점이었다. 당시 예수님은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밝히실 때부터 그 뜻이 어떤 의미인지를 정확하게 알려주셨다. 구약성경에서는 실제로 사람 위에 기름을 부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앞으로 특별한 일을 위해서 따로 구별하여 세우실 것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보통 세 가지 역할로 세우셨었는데, 선지자이거나 제사장이거나 왕이었다. 예수님은 구약시대에 기름부음 받았던 엘리야 선지자, 아론 제사장, 다윗 왕과는 또 차원이 달랐다. 요1:41과 마16:16 영어성경을 보면, 예수님 앞에 정관사 The가 붙어 있는데 그것은 '딱 하나', '절대적인 메시아'라는 것을 나타낸다.


구약시대에 기름부음 받았던 자들과 첫째로, '완전하심'에서 다른 점이 있었다. 구약에 선별된 사람들은 훌륭했지만 다 인간적인 약점이 있었다. 엘리야 선지자는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기도의 선지자였으나 이세벨이 한번 협박하니까 도망가기도 했었고 영적인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던 심약한 사람이었다. 제사장 아론은, 백성들의 압박에 못 이겨 황금송아지를 만들었던 전적이 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으로 기름 부으심 받았음에도 밧세바와 불륜 사건을 벌여서 가정과 나라를 위기에 빠뜨렸었다.


둘째로, 구약의 인물들은 각자 하나의 역할을 감당했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선지자 되시고 왕 되시고 제사장 되시기 위해 기름부음 받으셨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모실 때 그분을 우리 삶에 선지자요, 왕이요, 제사장으로 모시게 되는 것이다. 


선지자는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입'이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성육신 된 분으로 오셨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항상 대변인의 신분으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며 말을 전했다면 예수님은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렇게 바로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대변인이 필요 없는 하나님 자신이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래서 이전의 선지자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파워 있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되었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바디메오가 눈을 뜨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마귀가 떠나가는 역사가 일어났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거친 파도가 잠잠해졌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고 마침표가 찍혔다. 그러므로 우리 삶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모신 다는 것은 그 말씀이 나의 모든 것을 결정하게 한다는 뜻을 내포하는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마음에 합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말씀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면 우리만 손해이다.


우리는 왕 되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왕의 명령에 따라 그분의 법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왕의 다스림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왕이신 그리스도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약속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제공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엡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 되시면서 가만히 멀리서 지켜보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각 마디마디로 들어오셔서 연결하시고 결합해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교회가 교회 되려면 왕이신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중보자'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사장이시면서 그분이 직접 희생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그 보혈의 은혜를 통해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간극이 메워진 것이다.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이다. 그것은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졌다. 우리는 그 보혈의 권세 아래에 거하는 자들이다. 우리의 중보자 되신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나아가야 한다. 그분의 보혈을 의지하여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 은혜로 우리가 오늘도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갈 수 있음에 소망을 잃으면 안 된다.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의 사역이 이 땅에서 한창 진행 중일 때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이때는 유대 전국에서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로 소문이 퍼졌을 때이다. 귀머거리가 듣고,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시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셔서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듣고 알고 있었던 때인 것이다. 산상수훈 같은 놀라운 설교에 사람들이 마음을 쏟던 시기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물으셨던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사실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보는지에서 우리의 신앙이 결정된다. 몸이 아픈 사람에게는 의사이신 예수님이 간절하고 자식 문제로 교회 나오게 된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교육전문가여서 주님이 잘 키워주셔야 하고, 또 돈 문제로 교회 나오게 된 분은 예수님이 사업 컨설턴트와 같이 자기 사업에 대한 조언을 잘해주시길 바라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이 땅의 문제로 인해 예수님을 보게 되고 그 방향으로 예수님을 찾게 되지만 그것이 끝까지 가면 안 된다. 시작은 그럴지라도 예수님의 핵심 사역으로 옮겨가야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제자들은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의견을 정리해서 말씀드렸다. 이 시대의 부패함을 불같이 고발하는 세례 요한 이라고도 했고 어떤 사람은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기적의 사람 엘리야라고도 한다. 어떤 사람은 구약시대에 보냈던 선지자가 다시 나온 거라고도 했다. 예수님은 다 들으신 후에 제자들에게 되물으셨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은 깜짝 놀랐을 것이다. 마치 지휘자가 합주를 리드하다가 갑자기 멈추고 '김집사님부터 혼자 연주해보겠습니다.' 하는 상황인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시각에 제자들도 같이 선동되어 잘못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살피고 싶으셨던 것이다. 너희들, 나에 대해 혹시 정확하게 모르고 있는 거 아니야? 물으신 것이다. 3년 동안 동고동락하며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삶을 나누었던 제자들이었고 그들은 이제 교회의 지도자들이 될 사람들이었기에 예수님의 핵심 사역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했다.


지금도 그렇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별로 귀 기울일 필요 없다. 그러나 믿는 우리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베드로는 교회의 초석을 놓는 귀한 고백의 깊이를 모르고 대답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도 그렇다. 당시 베드로가 하나님의 감동으로 이 엄청난 대답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결코 우리의 지정의로는 하나님을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할 수 없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우리는 그분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의 깊은 내면까지 바꾸시며 고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제자들에게 깊이 새기라고 하셨다.


마 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이때부터 예수님의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로 소개가 된다. 그러면서 십자가 사건 이야기도 본격적으로 하신다. 후에 십자가 고난을 겪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제자들에게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눅 24: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십자가 고난과 부활이 바로 그리스도의 핵심 사명이라는 것이다. (박스로 표시된) 가장 처음에 나온 오늘의 본문 말씀은 예수님 사역의 초창기, 두 번째 본문은 예수님 사역의 절정기, 마지막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부활 후의 말씀인데 다 똑같은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핵심은 바로 '십자가 보혈'이라는 것.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예수의 뜻이 그리스도 안에도 들어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의 필요에 따라 예수님을 다르게 바라보았지만 그리스도의 핵심 사명은 십자가 구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부를 때 십자가를 생각하듯이 그리스도를 부를 때에도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도 예수님을 향한 인간적인 기대가 깨지고 산산이 부서져야 한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함부로 이용해 먹을 수 있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셨다. 물론 그분은 우리의 병도 고쳐주시고 우리의 사업에도 조언을 주시는 분이시지만 우리의 핵심문제인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결코 다른 문제들을 봐주시지 않는 것이다.


신구약 성경에서는 기름 부으심을 얘기할 때 꼭, 성령의 임재를 붙여서 설명한다. 성경에서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신다는 것이 바로 그런 뜻이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잡을 때는 그 안에 충만히 흐르고 있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우리에게 흘러온다는 확신과 소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다녔던 베드로의 고백을 더 추가로 보면, 성령과 능력을 충만히 기름 붓듯 하셨다고 진술한 것을 볼 수 있다. 나사렛 예수라는 시골에서 온 사람에게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이 임하자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다 지켜봐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의 육체를 입고 오셨지만 실제로 성령의 임재가 충만하신 분이셨다. 예수님은 어떠한 문제 앞에서도 막힘이 없으셨고 두려움도 없으셨다. 어떤 힘 앞에서도 비굴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령의 기름을 계속 부어주고 계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선포할 때 그분께 흘렀던 성령의 능력이 내 안에도 흐르길 믿음으로 선포하는 것임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에게 새로운 일을 주실 때는 반드시 그것을 감당할 기름도 함께 부어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능력 없어서 일 못하겠다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기대해야 하고 항상 겸손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성령은 어둠 권세를 쫓아내는 강력한 능력의 이름이다. 마귀가 두려워하는 이름이다. 예수 그리스도 능력의 비밀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인함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붙들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하셨듯 동일한 기름 부으심을 부어주실 것이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어둠을 몰아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될 것이다.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이다.


눅 4: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즈음, 회당에 들어가셔서 이사야의 예언서를 읽으신 것이다. 이것은 메시아의 하실 사역에 대해 예언된 것을 읽으시면서 예수님이 직접 사역 출사표를 던졌다고 볼 수 있다. 이 말씀 그대로 사역이 이루어 지기 때문이다.


첫째,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셨다. 돈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사람을 말한다. 영적으로 메말라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수가 그리스도를 통해 흘러가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목마른 자와 강퍅한 자로 구분되는 것이다. 


둘째, 우리에게 영적인 자유를 주셨다. 포로 된 자를 자유케 하시고 눌린 자를 풀어주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임하실 때 어둠이 물러나듯이 그 지역에 자유가 선포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중독으로부터 자유하고 감정의 노예가 되어있던 사람이 해방되어 기쁨과 자유와 회복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깊어질수록 영적 자유함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치유 역사는 과감한 쇼맨십에서 온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계셨다. 오늘 우리에게도 사랑의 예수님이 오실 것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신다.


은혜의 해는 희년을 가리킨다. 가난해서 팔렸던 땅들이 원 주인에게 돌아가고 노예들이 해방되는 해이다. 메시아가 오실 때 희년이 선포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오실 때 우리 죄로부터 해방된다는 예언인 것이다.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우리 삶에 안식이 깃들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 자리하게 된다.


https://www.godpeople.com/?GO=tv_detail&tv_mv_no=17765

https://www.youtube.com/watch?v=yChGxdCmCW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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