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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therine Jun 14. 2020

The King of kings 왕

슥9:9/ 요12:12-13/ 마28:18-20/ 계19:16 한홍목사님

1. 두 왕국의 충돌

예수님이 왕이시라면 왜 이 땅에서 그렇게 가난하고 무시받는 삶을 사셨던 걸까? 로마 왕국이나 촉망받는 귀족 자제로 태어났으면 누가 봐도 '와, 정말 왕이시네' 했을 텐데 말이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세상에서 인정하는 왕이라고 내놓기에는 초라하고 없어 보이는, 그런 왕이셨다. 그래서 그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예수님이 왕이 실 수 있냐면서 그분의 초라한 겉모습을 보고 많이 웃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왕이 맞으시다. 그것도 세상 어떤 제왕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의 왕이시다. 예수님이 왕이시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분의 왕국이 이 세상에 속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점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다윗 같은 영웅을 기대했던 것이다.


예수님의 나라는 이 땅의 존재하는 나라들처럼 한정된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나라는 500년 1000년 왕조를 갖지 못한다. 계속해서 무너지고 새로운 왕조가 세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간다. 세상의 나라는 영토적이고 지리적인 제한을 받는다. 그 어느나라도 세상의 땅 이상을 가지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열방과 모든 백성과 방언과 지구와 모든 우주까지 광대하게 다스리신다. 


성경에서는 한때 이 광활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개명 성', '새벽 별'로 불린- 하나님의 총애를 받았던 하나님의 천사장, 루시퍼의 반역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그는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천국에서 쫓겨났다. 그가 바로 마귀의 우두머리이다. 그들은 이를 갈며 하나님께 다시 도전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그렇지만 감히 하나님께 맞설 순 없으니까 하나님이 너무나 사랑하시는 그분의 창조물, 인간을 공격하기로 했던 것이다. 마귀가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안되니까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인간을 유혹해서 죄를 짓게 만들었다. 그 순간 마귀는 인간을 인질로 잡았다.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이제 인간은 꼼짝없이 죽게 되었다. 이때 마귀는 하나님께 항복을 요구했고, 그 어이없는 요구에 하나님께서 져주신 사건이 바로 십자가 사건이다.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죄의 값을 치르고 돌아가셨다. 그 후에 사건은 마귀의 예상과는 다르게 흘렀고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 뿐만 아니라 예수를 믿는 누구나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이것은 마귀가 생각하지 못했던 엄청난 반전이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멸망하기 전까지 무섭게 저항했었듯, 마귀는 자기의 마지막을 직감하는 요즘 더 기승을 부리며 저항을 하고 있다. 어떻게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려 하고, 이미 믿고 있는 사람들도 타락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다. 두 왕국의 충돌이 일어나는 무서운 시대인 것이다.


요일 5: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우리가 무지했을 때는 가짜 왕에게 속아 노예처럼 살았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 임마누엘, 우리의 주인 되신 진짜 왕의 보호를 받으며 그분의 백성, 자녀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바로 이 사실에 마귀는 치를 떤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엄청난 공격을 퍼붓는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선포하고 믿은 그 순간부터 우리는 마귀의 타깃이 되었다. 전쟁의 한 복판에 서게 된 것이다. 그 전쟁 가운데 중립은 없다. 싸울 것이냐 말것이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 어떻게 싸울 것이냐만 남은 것이다. 


이 영적인 전쟁을 하기 위해 몇 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다.


2. 우리의 왕,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사랑을 원하신다.


마 22: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왕이신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절대명령은 마음을 다하여 왕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 후에 두 번째 명령이 네 이웃, 네 양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수제자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확인하시고 그다음에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왕을 위해 할 수 있는 그 어떤 사역보다도 중요한 것, 그 어떤 사역보다도 앞서야 하는 것은 왕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기도를 통해 왕에게 우리의 사랑을 고백하고 확인받는다. 아가서는 보잘것없는 우리의 사랑을 보배로운 주님께서 그토록 목말라하신다는 절절한 러브레터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목말라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의 사랑을 목말라하시는 것이다. 그분은 우리가 권위에 눌려 덜덜 떨면서 명령을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연인처럼 뜨겁게 사랑하며 교제하길 원하신다. 그러기만 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모든 약점과 실수는 커버하시고 우리에게 능력과 힘을 주신다.


대표적 인물로 다윗 왕이 있다. 그는 하나님께 '내 마음에 꼭 합한 왕'이라 칭찬받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삶에 수많은 고비와 환난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금쪽같이 보호하시고 승리를 주시고 축복을 주셨다. 왜? 그가 하나님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시 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다윗은 광야에서 목동 생활을 할 때부터 왕궁에서 살 때까지 항상 하나님을 향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사람이었다. 예배하고자 하는 열정이 너무나 뜨거웠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것 한 가지로 다윗의 모든 약점을 커버해 주셨던 것이다. 영적인 전쟁의 초점은 마귀가 아니라 예수님이다. 영적인 전쟁을 이길 수 있는 힘은 마귀를 증오하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왕이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영적 전쟁 잘못해서 자꾸 마귀를 대적하는 것에만 신경 쓰면 잘못하다간 나도 마귀 비슷하게 닮아가는 수가 있다. 그래서 영적 전쟁 너무 지나치게 하시는 분들은 말과 표정이 사납고 어딘가 평안과 기쁨이 없어 보인다. 그것은 영적 전쟁의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다. 우리는 왕이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즐거워하면, 마귀는 자연스럽게 물러간다. 늘 예수님과 동행하고 예수님과 즐거이 대화하는 사람 곁에 어떻게 마귀가 설쳐댈 수 있겠는가.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 안에 온전히 거한다면 그 어떤 마귀의 계략에도 끄떡없는 영적인 전사가 될 줄 믿는다. 


3. 우리의 왕은 우리의 완전한 항복과 순종을 원하신다.


왕이라고 다 왕이 아니다. 영국 같은 경우, 버킹엄 궁에 왕족이 살지만 실권은 하나도 없다. 영국 왕은 완전히 보여주기고 실권은 수상과 내각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이름만 있고 실권이 없는 그런 왕이 아니시다. 예수님은 실제적으로 무한한 힘과 지혜를 가지고 계셔서 우리의 삶을 구체적으로 다스리길 원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를 창조하셨고 나아가 그분의 생명으로 사망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다스릴 자격이 있으시다.


우리가 그분을 왕으로 고백하는 것은 단순히 입으로만 하는 고백이 아니다. 실제적으로 그분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것이다. 365일 내내 우리의 삶 속에서 그분의 통치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홍해를 건너고 광야 생활이 시작되고 나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했었는가? 애굽의 우상들, 바로 왕들을 그리워하지 않았는가. 옛날 왕국의 음식과 문화를 그리워하지 않았는가.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광야가 시작될 기미가 보이면 자기가 몸 담고 있었던 세상 문화를 찾고 싶어 하고, 세상적 사고방식을 살아나게 해서 따라가려 하는 것이다. 옛날 임금을 다시 따르려고 하는 것이다. 입으로는 예수님을 왕이라고 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다른 왕들의 영향도 너무 많이 받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녀가 왕이라 기도해보지 않고 자녀가 하고 싶다는 데로 휙 휘둘리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돈이 왕이다. 기도해보고 결정하지 않고 돈이 된다고 하면 그냥 하는 것이다. 어떤 이에는 권력이나 명예, 어떤 사람들에게는 직장상사가 왕이다. 물론 상사 눈치 안 볼 수 없겠지만 마지막 결정권을 누구에게 쥐어주느냐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이중적인 삶, 어떤 영역에서는 다른 왕이 실세를 쥐고 있는 삶이 시작되면 예수님의 왕권과 충돌이 일어난다. 그러면 마음에 평안이 없어진다.


예수님은 그러 실수 있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시다. 예수님에게 왕권을 넘겨드려야 한다. 그것을 가장 힘들게 만드는 것이 바로 나 자신임을 기억해야 한다. 구원자 예수만 원하고 왕이신 예수는 배척해서는 안된다. 구원만 받고, 이 땅에서 사는 것은 자기 맘대로 살고 싶어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마귀는 항상 우리에게 우리 삶의 왕은 바로 너다 하고 속삭인다. 네 인생은 네가 좌지우지해야 한다고 속삭인다. 왜 남의 말을 듣느냐, 이게 기도할 일이냐 하고 유혹하는 것이다. 진정한 왕의 통치에 교묘하게 반발하면 안 된다. 우리 인생의 왕좌에 그 어떤 것도 올라가지 못하게 막고 예수님께 온전하게 내어드려야 한다. 왕은 둘일 수 없다. 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신 예수님 한 분뿐이다. 예수님을 왕으로 부르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특히 주님의 뜻과 우리의 뜻이 일치할 때는 순종하기 쉽지만 주님 뜻이 우리 뜻과 다르면 그의 통치를 받는 게 너무나 어려워서 도망치거나 무시해버리기 일수다. 그것은 순종이라 할 수 없다. 내가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나는 예수님의 다스림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나의 구주로 고백한 그 순간부터 내가 예수님께 맞춰야 하는 것이다. 나는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기 위해 항상 내뜻을 예수님이 밀어줄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뜻이 뭘까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반역을 일으키면 안 된다. 반역자의 삶에는 기름 부으심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우리가 중요한 기로에 설 때마다 무조건 덮어놓고 도와달라는 우리의 기도에 앞서 '내가 진짜 너의 왕이냐?'하고 물으시는 것이다. 여리고 성 전쟁을 앞두고 전날 밤 홀로 기도하며 서성이던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군대장관이 칼을 빼고 나타났었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시작으로 정복전쟁을 해 나가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정한 왕은 예수님이심을 인정하고 모든 지휘권을 넘겨드리는 작업이 필요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백성의 리더인 여호수아까지도 기대고 의지하며 명령을 따라야 할 진정한 왕이신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신정주의다. 


'하나님 살려주세요.'하고 기도하면 이렇게 물으실지도 모르겠다. '내가 널 도울 수 있게 나를 좀 도와다오. 내가 너의 진정한 왕이 맞니?'하고 말이다. 이 중요한 질문에 확신을 드려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왕권을 인정하지 못한 영역은 지금 세상 권세 마귀에게 유린당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부모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니라 직접 낳은 부모인 우리가 주인이라고 꽉 붙들고 주장하고 있는 한은 마귀가 자녀들을 공격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어느 순간 우리가 포기하고 '이 아이의 진정한 주인은 하나님, 바로 당신이 왕이십니다.'라고 마음으로부터 진실로 고백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자녀의 삶을 고쳐주시고 즉각 역사해 주실 것이다. 그분은 우리를 천국에 데려갈 분이시며 동시에 이 땅에서부터 천국의 삶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 


왕권의 인정, 통치권의 이양, 완전한 항복은 우리에게 달렸다. 예수님이 내 삶이 모든 영역에서 왕 되실 때 그때부터 일어나는 것이 기적이다. 그때부터 왕이신 예수님의 축복과 능력이 우리에게 흘러와서 우리를 통해 만물에게까지 흘러갈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원한다면 항복해야 한다. 하나님의 축복을 원한다면 항복해야 한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의 뜻이 무엇인가? 먼저 그를 왕으로 인정하라는 뜻이다. 그분에게 삶의 우선순위를 맞추면 그때부터 이외의 모든 것들을 다 책임지시겠다는 뜻이다. '왕권'은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내가 왕으로 군림하고 싶으면 그만큼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이다. 특권보다 책임이 더 큰 자리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왕이신 예수께서 부어주시는 축복을 자기의 고집 때문에 잃어버리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의 직장과 재물과 인간관계와 자녀와 모든 것에서 주님의 다스림을 구하면, 그때부터 주님이 다 책임지실 텐데 그만큼 하지도 못할 거면서 그 고집을 못 꺾어서 모든 축복이 막혀있는 것이다. 나의 그런 강퍅한 고집은 하늘 창고의 문을 더 꽉 잠기게 한다. 그 문을 여는 열쇠는 항복이다.


예수님과 함께 살았던 사도들은 자신들을 '둘로스'라고 칭했었는데, 그 단어의 뜻은 '신하'라는 뜻이다. 당시 신하를 뜻하는 여러 계급 중에 가장 천한 계급이었다. 사도들은 그들의 삶 속에 예수의 왕권을 100% 인정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들의 인생을 100% 책임지셨다. 초자연적인 기적이 그들을 통해서 일어날 수 있었다. 단지 죽어서 천국 가는 미니멀 크리스천이 아니라 사도들처럼 이 땅에서 예수님의 능력을 나타내 보일 수 있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 맥시멈 크리스천의 삶을 살기를 소망해야 한다. 이것이 정말 중요하다. 단순히 믿는 것에서 그치면 안 된다. 그 정도는 마귀도 한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마귀는 예수님이 나타나면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하고 두려워 떨며 도망갔다. 그것은 마귀의 믿음이다. 우리의 신앙, 우리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믿음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내 인생의 마지막 결정권이 되게 해야 한다. 절대 충성이 흔들린다면 내 삶 전체가 흔들릴 것이다. 피곤하고 힘이 든다면, 마음이 외롭고 쓸쓸하고 이해가 가지 않고 슬프고 억울하고 화가 난다면, 항복해야 한다. 숨김없이 예수님께 말해야 한다. 바로 그 자리에서부터 회복이 시작되게 해 달라고, 말씀이 그 순간을 해석하여 나를 이해시켜 주시고, 감정의 앙금이 남지 않도록 내 영혼의 창조자이신 그분의 품에 안겨서 나 자신이 완전한 안식을 누릴 때까지 밤을 새워서라도 하나님과 기도로 대화해야 한다. 그것이 옳은 일인지, 맞는 일인지 되묻는 말도 안 되는 마귀의 속삭임들은 보혈로 물리치고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마음의 물결이 잔잔해질 때까지 그분의 품에 안겨 울어야 한다. 그래야 한다면 그래야 한다. 


4. 우리의 왕은 우리가 어둠의 권세와 싸우기 원하신다.


영적 전쟁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우리의 숙명이다.


딤전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들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던 선과 악의 싸움에서 나를 구원하신 왕께서 전쟁의 중요한 임무를 맡기시며 이를 위해 내가 너를 구원했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우리 각자가 모두 동일하게 중요한 전사라는 것이다.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대 전투에서는 각 전투의 장군들이 중요했다. 적군의 장군이 먼저 쓰러지는 순간 사기가 높아진 병력이 적군을 전멸시키는 것이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리기 전까지만 해도 블레셋 사람들은 좋은 무기와 힘을 가진 강병이었는데 골리앗이 쓰러진 후에 오합지졸로 변해버린 것처럼 말이다. 가장 무서운 적인 죽음의 권세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무너뜨리셨다. 적군의 장이 쓰러진 것이다. 이제부터 아무것도 아닌 우리도 그리스도의 승리를 힘입어 엄청난 파워를 가지고 승리하는 군대가 되었다. 마귀의 마지막 발악은 엄청날 것이다. 긴장은 늦추면 안 된다. 


예수님은 우리가 수비만 하는 군대가 아닌 공격하는 군대가 되길 원하신다. 


마 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주신 가장 큰 명령인데, 그 중요한 명령이 공격 명령이었다. 18절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셨다고 말씀하신 후 바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은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권세를 가지고 우리들을 지원할 테니 너희들은 그 힘을 가지고 세상 속으로 가서 제자를 삼으라는 것이다. 전쟁하라는 것이다. 예수님께 구원받은 우리의 숙명이 바로 이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많은 군사전략가들은 공격 위주냐 수비 위주냐에 따라, 뛰어난 병력도 승패가 결정된다고 말한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프랑스가 사용한 마지노선 전략을 예로 들 수 있다. 당시 세력이 너무 강했던 독일에게 1차 때 처참히 무너진 프랑스는 독일과의 국경에 350km가 되는 마지노선을 구축해 놓았었다. 그들은 독일군을 방어하기 위해 엄청난 돈과 사람을 들였는데 80만 대군을 이 마지노선에 깔아서 싸우게 했고 그곳에 구축한 시설의 내부에는 기차가 다닐 수도 있도록 공들여 설계했다고 한다. 방어에만 힘쓴 것이다.


프랑스 군은 수비에만 너무 공을 쏟아 기갑차나 비행기 같은 공격무기는 잘 준비하지 못했는데 바로 이것이 패배의 원인이 되었다. 독일은 프랑스의 방어계획을 모르지 않았다. 그들이 왜 몰랐겠는가?

독일은 먼저 폴란드를 유린한 뒤, 그림에서 보이는 것처럼 엄청난 공을 들인 80만 대군을 싹 우회해서 프랑스로 기갑부대와 비행기를 사용해 스피드 하게 치고 들어왔다. 프랑스의 80만 대군은 양쪽에서 공격해오는 독일군의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궤멸되었고 독일은 전쟁 발발 두 달 만에 파리를 점령하고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냈다. 


많은 군사학자들은 당시 프랑스가 충분히 독일군과 맞설 수 있는 80만 대군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 또 폴란드를 공격할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전력이 강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진 이유가 수비를 고집한 전략 때문이라고 본다. 만약 프랑스가 공격적으로 맞서 싸웠다면 아마 2차 대전의 양상은 전혀 다르게 흘렀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독일은 처음부터 수비를 생각하지 않았다. 둘의 전략은 처음부터 너무나도 달랐다. 독일은 항상 본인들이 중간에서 압박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먼저 전광석화처럼 폴란드를 쳐서 동유럽을 치고 다시 방향을 돌려 빠르게 네덜란드와 벨기에, 프랑스를 칠 공격전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프랑스는 독일과 비슷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방어전 전략만을 보았기 때문에 그 아까운 80만 대군을 다 희생시키고 난공불락의 요새가 아니라 무용지물의 요새를 가지게 된 것이다. 최선의 수비는 공격이라는 것이 여실히 입증된 사건이 바로 이 마지노선 전략이었다.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런 어리석은 우를 범하게 하지 않으신다. 옆에서 격려하고 인도해주신다. 처음부터 교회에게 마귀가 꽉 잡고 있는 로마제국 한가운데로 복음을 가지고 진격하라고 하셨었다. 그 당시 로마제국의 위세에 비해 초대교회는 돈도 없고 건물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정말 달걀로 바위 치기였는데, 시키는 대로 달걀로 바위를 쳤더니 하늘과 땅의 권세가 교회에 부어진 것이다. 300년 만에 로마는 기독교에 무릎을 꿇었다.


이제는 교회가 옛날에 비해 힘도 많아졌는데 세상의 공격으로부터 수비만 하여서 잘 살아남기만 하겠다는 전략은 프랑스의 마지노선 전략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교회는 세상에서 점점 힘을 잃을 수도 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교회가 위기라고 한다. 온라인이 끝나고 오프라인이 다시 오픈되었을 때 사람들이 다시 모이지 않으면 어떡하냐, 걱정한다. 왜 자꾸 사람들이 마지노선 같은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지금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상명령의 정신을 회복해야 할 때이다. 수비에서 공세로 전환하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끝남과 동시에 우리는 세상 한가운데로 더 적극적으로 복음을 들고 들어야 한다. 너무 따져보지 않고 그렇게 할 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힘주실 것이다. 


엡 6: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예수님은 함께 싸우길 원하셨다. 지금 바울이 말한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라는 말은 옛날 전쟁에서 수백수천의 군사가 방패를 들고 서로 붙어 서서 방어와 공격을 함께 했던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함께 뭉치는 길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모이기를 폐하지 말고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서로를 위해 중보 하는 것이다. 


마 18: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https://www.godpeople.com/?GO=tv_detail&tv_mv_no=17940

https://www.youtube.com/watch?v=AGZPUm_xDl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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